시대·장르 초월한 ‘송암미술관’...도심 속 ‘유물 보물창고’ [인천 박물관은 살아있다③]
2층엔 조선 후기부터 근대 회화·서예 전시
야외전시장에 ‘광개토대왕릉비’ 재현 눈길
미래의 주역들 눈높이 ‘교육프로그램’ 운영
“제물포 시대를 중심으로 외적의 침략에 대한 진실을 과학적으로 진열하는 것, 이것이 참으로 인천 박물관의 나아가야 할 방향이고, 근본 사명이라 믿습니다.” 인천시립박물관의 초대 관장인 고(故) 이경성 관장. 그는 인천의 박물관은 향토사 연구의 중심이라고 명명했다. 그는 직접 편찬한 박물관보를 통해 박물관이 지역사회에서 해야 할 역할과 정체성을 거듭 강조했다. 이는 ‘한강의 기적’ 이후 제조업 중심의 압축성장을 경험한 인천과 서울을 배후로 둔 덕에 개발 담론의 소용돌이에 휩싸여야만 한 인천의 문화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현재 인천에는 28곳의 박물관이 있다. 국·공립이 16곳, 사립이 11곳, 대학이 운영하는 박물관이 1곳이다. 인천은 지금 300만 도시에서 나아가 750만의 재외동포까지 품은 ‘1천만 글로벌도시’로 거듭났다. 선원의 도시, 산업인의 도시, 중소상인의 도시로 자리 잡은 인천은 이제 문화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를 이어가야 할 때이다. 이에 따라 경기일보는 모두 4차례에 걸쳐 인천의 박물관의 현주소와 함께 박물관의 특징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③ ‘근대~현대’ 시대·장르 초월 송암미술관
인천 미추홀구 학익동, 소나무로 둘러싸인 한적한 미술관이 눈에 띈다. 모두 1만1천139점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송암미술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회화, 조각, 서예, 도자기 등 전 장르와 시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유물들이다. 이 중 가치가 높은 유물 등을 선별, 상설전시·특별전시로 시민들과 역사를 공유한다. 전시 유물은 정기적으로 교체하며 현재 총 488점의 유물을 만날 수 있다.
송암미술관의 역사는 1989년 고(故) 이회림(1917~2007) 동양제철화학 회장의 손길로부터 탄생한다. ‘이 시대 마지막 개성상인’이라 불리는 이 회장은 삶의 절반을 그림, 도자기, 공예품 등 우리의 문화재를 수집했다. 첫 시작은 서울 종로구 수송동에 있는 이 회장의 사저를 개조하여 송암미술관을 설립, 이후 1992년 10월31일 미추홀구 학익동으로 이전하면서 생긴 것이 현재의 송암미술관이다. 이 회장은 2005년 송암미술관에 1만여점에 이르는 고미술품 등을 인천시에 무상 기증했다. 이로 인해 송암미술관은 인천에서 현재까지 높은 역사적 가치를 지닌 미술관으로 평가 받고 있다.
■ 근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시간여행의 장소’…1만1천여점에 이르는 다양한 유물 보관
송암미술관 1층에는 도기와 조각 등을 중심으로 볼 수 있다. 거대한 옹관을 비롯해 시대순으로 전시해있는 삼국시대의 토기, 고려청자, 조선의 청화백자 등으로 한국 도자사의 흐름을 살필 수 있다. 한켠에 있는 목조아미타여래좌상과 목조보살좌상은 각각 인천시 유형문화제 제68호, 제69호로 지정받았다. 엷은 미소를 머금고 시선을 아래로 내린 채 가부좌를 틀고 있는 모습에서 자비가 느껴진다.
2층에는 조선 후기부터 근대의 대표 회화 및 서예 작품 등이 전시해 있다. 정선의 노송여지도, 김규진·이도영·안종원의 합작도와 함께 호작도, 모란도, 연화도 등 다양한 민화들로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2층의 대표적인 유물로는 보물 제1997호 평양성도 병풍이 꼽힌다. 장대한 화면을 통해 상단에는 평양성 둘레의 산을, 하단에는 대동강을 배치하는 등 조선 후기 번성했던 평양의 자연적이고 인문적이 경관이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이 밖에도 화승 철현이 그린 시유형문화재 제67호 제6변성대왕도가 미술관의 엄중한 분위기를 더한다. 변성대왕은 망자가 죽은 지 42일째 되는 날 만나는 왕으로, 앞선 재판의 여죄를 심판한다. 우측 하단에 죄인이 날카로운 칼에 꽂혀 산으로 끌려가는 모습이 보인다.
■ 소나무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야외전시장’…원형 재현한 광개토대왕릉비 등 170점 유물 관람
9천㎡(2천722평)의 조경 공간으로 이루어진 야외전시장에서는 사시사철 푸르른 소나무와 꽃들이 피어나는 정원을 한바퀴 둘러보면 170점의 유물들을 감상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높이 6.34m 너비 1.90m 두께 1.53m에 달하는 광개토대왕릉비의 웅장한 모습은 고구려인민들의 전투적이며 담대한 기상을 일깨우기도 한다. 이곳에 있는 광개토대왕릉비는 1990년대 초 이회림 회장이 중국에 있는 광개토대왕릉비의 탁본을 구해 원형 그대로 재현한 것으로, 실물과 똑같은 모습에서 관람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준다. 광개토대왕릉비를 중심으로 늘어져 있는 석등, 부도, 문인석 등 다양한 석조 유물들이 미술관의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도록 한다.
■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맞춤형 기획특별전, ‘서예를 감상하다’…다양한 교육프로그램도 함께
미술관에서는 해마다 기획특별전을 열고 있다. 지난 9월26일부터 내년 3월까지의 박물관 주제는 ‘서예를 감상하다’. 이를 통해 현대인이 느낄 수 있는 서예 자체에서의 의미와 미감을 찾을 수 있도록 한다. 서예의 오서라고 불리는 전서·예서·해서·행서·초서 등 서예의 발전사를 순차적으로 보여준면서 서예의 아름다움을 살피고 함께 체험해본다. 작품 전체의 구성과 글자의 짜임, 점 획의 형태 등 서예를 감상하는 여러가지의 방법을 소개하고, 이를 통한 즐거움을 제공하기도 한다.
송암미술관은 다양한 연령층을 위한 교육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올해 신설한 유아 교육인 ‘호랑이가 들려주는 민화 이야기’를 통해 민화가 무엇인지에 대해 배운다. 또 민화마다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 각종 체험 활동을 통해 알아볼 수 있다. ‘백투더 조선’은 초등학생을 위한 교육으로 조선시대의 선비문화와 선비들이 사랑했던 사군자에 대해 학습할 수 있다. 학예연구사라는 직업을 경험할 수 있는 ‘꿈을 그리는 미술관’도 함께 추진 중이다.
■ 인천시립박물관·인천시교육청과 업무협약…고교학점제 프로그램 ‘꿈이음대학’과 연계
인천시립박물관과 인천시교육청은 지난 10월27일 고교학점제 프로그램인 ‘꿈이음대학’과 연계, 청소년들의 박물관 교육을 위한 업무협약을 했다. 이를 통해 내년부터는 송암미술관에서 인천 지역의 1·2학년 고등학생 등을 대상으로 ‘나전기법의 이론과 실기’, ‘유물 3D복원의 이해와 탐구’ 등의 교육이 이뤄질 계획이다.
나전기법의 이론과 실기를 통해서 학생들은 전통공예인 옻칠에 대해 이해한다. 또 한국의 고유 기술인 나전기법의 다양한 종류 등을 직접 체험하고, 배울 수 있다. 유물 3D복원의 이해와 탐구에서는 4차산업의 핵심 기술인 3D프린터 등을 통해 문화재의 보존 복원 등에 대해 이론 및 실습한다. 현재 3D를 활용한 복원의 가장 큰 장점은 손상 부분의 재생산이 가능하다는 점과, 훼손을 미리 예상해 설계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인터뷰 김명석 송암미술관장 “시민과 함께하는 공간으로”
“시민들의 곁에서 늘 함께할 수 있는 미술관을 만들겠습니다.”
김명석 송암미술관장은 “깊은 역사를 지닌 송암미술관의 유일한 단점이 접근성”이라며 “이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적극적인 유인책 마련에 힘을 쏟고 있다”고 밝혔다.
김 관장은 “소장 유물들의 변천사를 비롯해 중요한 역사적·문화재적 가치를 평가하고, 발굴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소장 중인 1만1천139점의 유물들의 감정평가 결과 300억원 내외 값이 나온다”며 “이 유물들에 대한 정확한 가치평가는 아직까지도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가치 높은 유물을 발굴하고 지정문화재로 추진하는 한편, 인천시민에게 공개해 그 가치를 더욱 높일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에 김 관장은 박물관을 홍보하기 위한 현재 연령별 교육프로그램 등을 추진하고, 해마다 특별전을 열어 송암미술관 활성화에 집중하고 있다. 그는 “주말을 활용해 유치원·초등학생들을 위한 교육 및 체험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또 미술관의 방향에 맞춰, 그리고 관람객들에게 새로움을 주기 위한 전시 물품의 재배치도 함께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관장은 “앞으로 송암미술관이 시민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시설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홍보는 물론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에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박귀빈 기자 pgb0285@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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