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역사가 꼭, 스포는 아니다"…정우성이 완성한 12.12
[Dispatch=정태윤기자] "부담은 배우의 숙명이죠." (이하 정우성)
영화 '서울의 봄'의 '이태신'은, 정우성 그 자체였다. 심지어 김성수 감독이 캐릭터를 만드는데 참고하라며 준 자료조차 정우성이었다.
"제가 유엔난민기구 친선 대사로 인터뷰하는 영상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감독님이 장난하시는 줄 알았어요. 나를 보고 뭘 찾으라는 거지? 했죠."
김성수는 정우성의 영상에서 이태신을 봤다. 흔들림 없이 꼿꼿한 자세로 자신의 의견을 밀고 나가는 모습. 그가 생각하는 '1212 사태' 때 가장 필요한 자세였다.
가장 닮은 모습인데도, 제일 어려웠다. 관객들에게 감정을 강요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 먹먹한 싸움 속에서 폭발하지 않았다. 누르고 죽이고 삭였다.
"부담은 배우의 숙명이니까요. 출연을 결심한 순간부터 의심하지 않고 확신을 가지고 연기했습니다. 그러나 관객들이 어떻게 봐주실지 불확실했죠.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김성수 브라보!"
◆ 이태신은 누구인가
이태신은 수도경비사령관. 군인의 의무와 신념이 1번이다. 전두광의 신군부 세력에 끝까지 항전한다. 실화에 가까이 있는 인물이지만, 캐릭터를 구축하는데 한참을 헤맸다.
"실제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다큐가 아니잖아요. 그 사람의 상황을 재현하는 것도 아니고요. 배우가 해석하고 표현해서 새롭게 만들어 내야 했습니다."
이태신은 영화 안에서 가장 많이 가공된 인물이다. 김 감독이 당시 사건에 필요하다고 생각한 바람직한 군상을 그렸다. 실제 사건 속 허구의 캐릭터. 어떻게 그려야 할지 막연했다.
심지어 김 감독이 이태신을 구축하는데 참고하라며 준 자료는 혼란을 줬다. 정우성이 유엔난민기구 친선 대사로 인터뷰한 영상을 보낸 것.
"제가 고민할 수 있게 밀어 넣으신 거죠. 스스로 이태신을 찾아갈 수 있게요. 그 후에, 장면마다 감독님의 생각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감독님을 많이 의지했어요."
◆ 이태신을 분석했다
김 감독은 전두광과 이태신의 싸움을 "불과 물의 대결처럼 보였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전두광이 목적을 향해 뜨겁게 달린다면, 이태신은 이성적으로 냉철히 판단한다.
"감정적 폭주는 명확합니다. 글만 읽어도 그 뜨거움이 느껴지잖아요. 그러나 물처럼 품는다는 건 너무 막연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전두광의 폭발에 물로 맞설 수 있을까 고민했죠."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캐릭터에 다가가기 위해 황정민(전두광 역)의 현장에 찾아가 관찰도 했다. 그렇게 하나하나 감을 잡았다.
자신한 순간도 있었다. 전두광과 복도에서 마주치는 장면. 연기를 끝내고 전두광을 보는 찰나. 전두광이 이태신을 느꼈다고 체감했다.
정우성은 "감독님과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눈 신이다. 자꾸 감정이 개입하려 했다. 김 감독님이 불필요한 것들을 계속해서 제거해 주셨다"고 털어놨다.
이태신을 정의로운 인물로 정의하고 싶지 않았다. 강요하는 언어로 전달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어려웠다. 감정을 덜고 차분하게 다가갔다.
"어떤 것이 정의롭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태신은 자신의 본분과 직무에 충실한 사람일 뿐이죠. 제가 아닌, 제3자가 봤을 때 평가되고 의미 부여되길 바랐습니다."
◆ "브라보, 김성수"
정우성과 김성수 감독의 인연은 각별하다. 영화 '비트'(1997년), '태양은 없다'(1999년), '무사'(2001년), '아수라'(2016년), 그리고 '서울의 봄'까지.
그는 "감독님은 저를, 배우를 넘어 영화인으로 만들어 주신 분"이라며 "동료로 대해주시고, 연기 이상의 작업에 참여할 수 있게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고 치켜세웠다.
이번 재회는 성공적. 개봉하자마자 호평 일색이다. '서울의 봄'은 실관람객들의 반응을 확인할 수 있는 에그지수 99%, 예매율 역시 50%를 유지하며 흥행 청신호를 알렸다.
결말을 아는 역사임에도 손에 땀을 쥐게 했다. 관객을 그 순간에 몰아넣고, 쥐고 흔들었다. 배우들도 빛났다. 주요 인물만 무려 70여 명. 그럼에도 산만하지 않게 각자의 위치에서 시너지를 냈다.
정우성 역시 왜 정우성이여야 했는지 입증했다. 곧고 우직한 자세로 자신의 신념을 밀고 나갔다. 관객들을 힘 있게 설득하며 이태신의 감정에 이입하게 했다.
"김성수여서 가능했어요. 집요하고 끝없는 에너지로 이끄셨습니다. 수많은 인간 군상을 다루면서 한명 한명 다 빛나게 하잖아요. 영화를 보고 '브라보. 이건 김성수만이 할 수 있다' 박수쳤죠."
◆ 30주년의, 봄
올해로 데뷔 30주년. 매년 쉬지 않고 달려왔다. 소회를 묻는 말에 '제가 30주년이에요?'라고 되묻더니 생각에 잠겼다.
그는 "젊은 시절엔 내 확신만 가지고 그걸 더 공고히 하려고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유연해졌다"며 "작업에 대한 이해와 깊이가 깊어진 것 같아 좋다"고 말했다.
'디스패치'가 만난 정우성은, 고민 많은 배우였다. 끝없이 되묻고, 고뇌하고, 노력했다. '연기를 잘하겠다'는 목표 하나에 매달렸다.
무엇보다, 즐길 줄 알았다. 그는 "살면서 24시간 감정의 요동 속에 있지 않나. 그러다 보니 사소한 감정은 못 느끼게 된다. 그런데 배우는 그 감정에 합리성을 부여하기 위해 계속해서 고민한다. 그 과정이 재미있다"고 털어놨다.
"배우로서의 본분은 너무도 명확합니다. 연기를 잘하는 것. 도전이 필수적이죠. 후배 배우들이 어떤 길을 나설 때 '나도 이렇게 했었어'라고 선례를 남길 수 있는 도전을 계속해서 하고 싶습니다."
<사진제공=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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