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주권 흔드는 ‘유엔 없는 유엔사’

한겨레 2023. 11. 2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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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문장렬의 안보 다초점][한겨레S] 문장렬의 안보 다초점
유엔사의 진실
한국전 참전한 16개국 연합 성격
‘유엔 이름 도용’ 미 주도 군사조직
작통권 논의 과정 ‘재활성화’ 주장
일본 참여 지역통합사령부 ‘위험’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지난 14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열린 한국-유엔사회원국 국방장관회의에서 인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한반도 평화와 안보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 두 국제회의가 올해 11월에 열렸다. 하나는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SCM) 이튿날인 지난 14일에 열린 한국-유엔군사령부(유엔사) 회원국 국방장관회의(이하 ‘한-유엔사 회의’)다. 한국과 미국의 국방장관이 참석했고 나머지 16개 회원국은 주로 주한대사들이 대리 참석했다. 회의에서는 한국전쟁 후 정전체제 유지에 대한 유엔사의 기여를 평가하고 앞으로 역할과 기능을 더 강화할 것을 약속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또 하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를 계기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지난 15일 열린 미-중 정상회담이다. 양 정상은 수년간 경제와 안보 문제로 경색된 관계 속에서 단절됐던 군사대화 채널을 복원하기로 합의했다. 구체적으로 양국 국방 및 군 고위급 소통을 포함한 ‘군 대 군 대화’의 제도화에 합의한 것이다. 이로써 대만해협과 남중국해에서 긴장 고조, 수출통제와 무역 갈등, 핵무기 경쟁 등 어렵고 민감한 문제들에 대한 ‘관리’를 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생겼다.

일견 한-유엔사 회의와 미-중 정상회담은 군사안보적으로 상충적인 면이 있다. 유엔사 강화는 북한뿐 아니라 중국도 겨냥하는 것으로 여겨지므로 미-중 간의 긴장 완화라는 정상회담 취지와 어긋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은 한-유엔사 회의에 대해 외교부 대변인을 통해 “대결을 야기하고 긴장을 조성하며 한반도 형세에서 불에 기름을 붓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이런 모순적 행동은 외교 세계에서 흔히 일어난다. 따라서 미국과 중국이 어떻게 하는지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보가 그렇고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유엔사 ‘재활성화’(revitalization) 역시 그런 성격의 문제다.

작통권 전환되면 권한 충돌

일반 대중에게 ‘유엔사’(United Nations Command)는 ‘막연히 당연한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 듯하다. 애초부터 △유엔이라는 명칭이 ‘도용’(또는 오용)된 것이고 △유엔과 아무런 공식적 관계가 없는 미국의 군사조직이며 △이미 유엔총회에서 해체를 결의해 미국도 동의했으며 △유엔 규정에 따라 유엔기의 사용도 더는 합법적이지 않다는 ‘사실’들이 점차 많이 알려지고 있다. 일각에서 유엔사를 ‘유령사’라고 부르는 이유다.

유엔사는 1950년 7월7일 유엔안보리 결의안 84호에 따라 미군장성이 지휘하는 ‘통합사령부’(Unified Command)로 불러야 하지만 미군이 자의적으로 유엔의 이름을 붙여서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다. 정전협정 체결 이후 유엔사는 주한미군과 한국군을 휘하에 둔 작전사령부이면서 정전체제를 관리하는 최고 군사기구였다. 더욱이 정전협정을 체결한 그날 한국전쟁에 참가한 16개국이 워싱턴에 별도로 모여 한국에 또다시 전쟁 상황이 발생하면 재참전하겠다는 결의를 ‘워싱턴선언’으로 발표했으며, 이 선언이 오늘날 유엔사 회원국들의 모임에 근거가 되고 있다.

유엔사는 지금까지 두번의 ‘존폐 위기’를 겪었다. 첫번째는 1975년 11월18일 유엔총회에서 두개의 결의안(3390A/B)이 채택됐을 때다. 서방과 공산 쪽이 각각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대체와 외국군 철수 등을 포함해 유엔사의 해체를 촉구했다. 당시 미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는 유엔총회 연설에서 1976년 1월1일까지 유엔사를 해체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미국은 약속을 지키지 않고 1978년 11월 한미연합사령부를 창설해 작전 기능을 전담하도록 하고 유엔사는 존치하되 그 기능을 정전협정의 관리와 유사시 전력 제공으로 축소했다.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이하 작통권)은 형식적으로 유엔사령관으로부터 연합사령관에게 이양됐으나 두 직책을 동일인이 겸하므로 내용적인 변화는 없었다.

두번째 위기는 한국군의 작통권 환수 이후 유엔사의 위상과 기능에 대한 논란으로서 현재진행형이다. 한국군이 작통권을 행사하게 되면 유엔사령관의 권한은 주한미군과 전시 증원 다국적군에 대한 것으로 국한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전시에 한국군과 미군 최고사령관들 사이의 권한 관계가 모호해진다. 불행히도 노태우 정부부터 현재까지 작통권 환수 논의에서 이 중대한 문제가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작통권 ‘전환’을 현 연합사 체제를 유지한 채로 사령관만 한국군 장성으로 바꾸는 것으로 ‘재정의’하기로 미국과 합의했다. 그렇게 되면 연합사 부사령관인 미군 4성장군이 유엔사령관으로서의 권한을 행사할 때 지휘권의 ‘충돌’이 일어날 것은 불보듯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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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사, 해체하거나 통합하거나

미국(군)은 이 문제를 당연히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유엔사 재활성화 개념을 들고나왔다. 그 시작은 2000년대 초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본격적인 추진은 2014년부터다. 한국군의 작통권 환수 시한이 한차례 연기돼 2015년으로 정해진 만큼 대비가 필요했을 것이다. 목적은 유엔사를 존속시키는 것이고 핵심 내용은 참모 조직을 독립화하고 확대하면서 그에 따라 기능과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다. 주한미군이 겸직하던 유엔사 부사령관을 캐나다·영국 등의 장군급으로 임명하고 참모부 역시 다국적 인원을 늘려 현재 100명 가까이 된다.

유엔사의 ‘존재 이유’는 정전체제의 관리와 전시 증원전력 제공이기에 한반도 평화와 한국의 군사주권을 ‘희생’함으로써 유지된다. 비무장지대와 군사분계선 통과에 대한 자의적 통제로 남북교류협력에 제동을 걸고 일국의 대통령 후보(윤석열 후보의 2021년 12월 육군3사단 관측소 방문)까지 정전협정 위반으로 조사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던 유엔사다. 한국군에 대한 작통권은 군사 조직과 체계가 어떻게 변하든 거의 영구적으로 보유하겠다는 유엔사다.

유엔사가 전투사령부로 거듭날 것이라는 우려가 있지만 단시일 내에 그렇게 될 가능성은 낮다. 한·미 양국이 공식적으로 부인할 뿐 아니라 현행 작통권과 연합사 체계가 유지되는 한 그럴 필요성도 없다. 그러나 평택으로 ‘확장개업’한 유엔사령부가 일본에 위치하고 있는 7개의 유엔사 후방기지들을 더 긴밀히 통합하고 유엔사 회원국의 더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한반도에 견고한 지역 통합사령부를 구성할 가능성은 우려할 만하다. 더욱이 유엔사 회원국에 일본이 참여한다면 한·미·일 3국의 유사 동맹은 유엔사라는 외피를 한 겹 더 두른 정치군사적으로 ‘완전하고 돌이킬 수 없는’ 체계를 갖추게 될 것이다.

한반도 분단의 고착화와 군사적 긴장 고조, 그리고 대중국 대결 구도 속에서 한국의 군사주권도 ‘불완전하고 회복이 어려운’ 상태로 지속될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이 방향이 옳은 것으로 판단하고 앞장서서 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가야 한다. 한국이 군사주권과 정전체제 관할권을 평화와 주권 차원에서 가져오고 미국의 것 유엔사는 명실상부하게 주한미군 또는 주일미군과 통합하거나 해체돼야 한다.

전 국방대 교수

노무현 정부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기획실 국방담당, 문재인 정부의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다. ‘군사과학 기술의 이해’ 등의 저자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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