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여수산단] ① '불황의 늪' 석유화학…"공장 돌릴수록 손해"
석유화학 탈피, 이차 전지·친환경 고부가가치 사업 전환 안간힘
[※ 편집자 주 : 국내 최대 석유화학단지인 여수국가산업단지(여수산단)는 국가 기간 산업의 본산으로 우리나라 경제 성장을 이끌어왔습니다. 그러나 중국과 경쟁 격화, 원자재 가격 상승, 원료 수입 의존 심화 등 위기가 이어지면서 장기간 침체의 늪에 빠졌습니다. 대표적 탄소 배출 업종인 석유화학 업계는 수소로 대표되는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이라는 시대적 소명도 안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여수산단의 위기를 진단하고 탄소중립 시대와 함께 새로운 반세기를 준비해야 할 여수산단의 생존 방안을 제언하는 기사를 5회에 걸쳐 송고합니다.]
(여수=연합뉴스) 장덕종 기자 = "공장을 돌릴수록 손해를 보는 상황이 지속돼 수익성을 고려해 공장을 가동하지 못했습니다."
전남 국가여수산업단지 내 LG화학 NCC 2공장 관계자는 25일 정기 보수를 마쳤는데도 최근까지 재가동을 미뤄온 이유를 이같이 밝혔다.
재가동에 들어간 지 한 달 남짓인 이 공장은 오랜 기간 돌리지 못하고 멈춰있던 탓인지 아직은 조심스러운 분위기 속에 가동되고 있었다.
거대한 회색의 배관으로는 제품에 쓰일 각종 원료가 쉴 새 없이 옮겨졌고 탱크와 공장 건물에는 원료와 제품이 차곡차곡 쌓였다.
작업자들은 오랫동안 공장이 멈춰있었던 만큼 혹시 문제가 생겨 차질을 빚지는 않을지 긴장감 속에 공정 하나하나를 세심히 살폈다.
공장이 제자리를 찾았지만, 여전히 불투명한 이 공장의 미래를 생각하는 작업자들의 얼굴에는 복잡한 심경이 묻어났다.
NCC는 '석유화학의 쌀'로 불리는 에틸렌·프로필렌 등 기초유분을 생산하는 시설이다.
최근 몇 년간 중국의 공세와 글로벌 경기침체가 더해져 NCC 업계의 부진은 장기화하고 있다.
수익성 지표인 에틸렌 스프레드(이윤)가 보통 300달러를 손익분기점으로 보는데, 에틸렌 공급 과잉, 수요 부진 등으로 손익분기점에 못 미쳐 공장을 돌릴수록 손해라고 공장 관계자들은 전했다.
그렇다고 공장을 하염없이 세워 둘 수는 없기 때문에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생산라인을 돌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021년 준공한 이 공장에서는 연간 에틸렌 80만t, 프로필렌 48만t을 생산했다.
올해 3∼5월 정기보수를 마쳤지만 수익성 악화로 재가동을 미루다가 지난달 26일 5개월 만에 가동에 들어갔다.
가동이 미뤄지는 과정에서 공장 매각설이 나와 업계를 들썩이게 만들기도 했다.
LG화학은 경쟁력 강화, 사업 가치 제고를 위해 2공장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LG화학은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석유화학 사업에 대한 구조조정에 착수한 상태다. 이차전지 소재와 친환경 소재, 신약 사업 등 고부가가치 신산업으로의 사업 전환을 적극 추진 중이다.
LG화학뿐만 아니라 국내 석유화학 업계 전체에 이러한 혹독한 겨울이 찾아왔다.
한때 반도체와 정유에 이어 '수출 3대 효자'로 불렸지만, 지난해부터 기나긴 불황의 늪에 빠져들면서 기업들도 제 살길 찾기에 나서고 있다.
LG화학과 롯데케미칼, 한화솔루션 등 주요 업체들은 지난해 모두 석유화학 사업에서 손실을 냈다. 올해 상반기 역시 실적들이 대부분 부진하다.
올해 1분기 석유화학 영업이익률은 1.6%로 연평균 영업이익률(8.1%)을 크게 밑돌았다.
생산량은 2021년 월평균 194만t에서 지난해 184만t, 올해 1분기 180만t 수준으로 떨어졌다.
가동률은 70%대로 낮아졌고 수출액은 1분기 기준 지난해 155억달러에서 올해 120억달러까지 곤두박질쳤다.
업계가 타격을 받은 것은 수요 위축과 공급 과잉이 겹치면서다.
무엇보다 최대 고객이었던 중국이 경쟁 상대로 돌변하면서 위기가 더욱 커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플라스틱 수요가 많이 늘어나자 석유화학에 관심을 갖게 된 중국은 대규모 공장 신·증설을 통해 자국 내 석유화학 자급률을 크게 끌어올렸다.
이제 중국은 우리 석유화학의 최대 수출국이 아닌 가격 등에서 경쟁이 어려운 경쟁국이 됐다.
석유화학 업종은 국제 유가, 글로벌 경기와 연동돼 호황과 불황 사이클이 반복되는 게 특징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번 위기를 단순 침체가 아닌 장기 침체와 산업 전체의 격변기로 받아들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불황이 찾아와도 '다음 호황기'를 기대하고 투자를 이어가는 패턴이 반복됐다. 하지만 이번 위기는 끝나지 않는 불황의 시작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친환경 소재 등으로의 사업 구조 재편은 현재 상황에서 피할 수 없는 선택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cbebo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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