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도예가가 빚은 '통일백자'
◀ 김필국 앵커 ▶
조선시대 백자가 시작된 곳이라는 강원도 양구에서 이른바 '통일백자'를 꿈꾸는 노력을 지난해에 전해드린 적이 있었는데요.
그 일부가 실현됐다고 합니다.
◀ 차미연 앵커 ▶
네, 남한의 흙, 양구 지역의 백토를 원료로 탈북 도예가가 북한 방식으로 빚어낸 도자기들이 전시되고 있다는데요.
그 현장을 이상현 기자가 찾아가봤습니다.
◀ 리포트 ▶
북한과 지척인 남북접경지역, 강원도 양구에 들어서면 보기 힘든 광경이 하나 펼쳐집니다.
두 손이 받쳐들고 있는 고운 자태의 백자부터, 조선백자의 원료로 쓰인 양구 지역의 하얀 흙, 양구 백토로 빚어낸 다양한 백자의 조형물이 사람들 왕래가 많은 곳마다 설치돼 있고요.
군청같은 관공서에서도 출입문부터 사무실까지 양구백토, 양구백자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서흥원/양구군수] "양구 백토의 우수성을 많이 알리고 깊이 있게 우리가 연구도 좀 해야될 것 같아요. 그런 부분을 보존하고 알리는데 또 연구하는데 많은 지원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최근에는 저희가 북한에 있는 백토를 좀 활용해서 통일백자를 만들어야 되겠다 이런 고민도 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처럼 전국의 좋은 흙, 남북의 대표 흙을 배합해 남북의 도예가가 함께 빚어낸다는 '통일백자'의 꿈.
지난해 저희 통일전망대 방송을 통해서도 그 '통일백자'의 꿈을 전해드렸는데요.
이 방송을 계기로 양구와 한 탈북도예가가 연결됐고, 그 인연이 최근 조그마한 성과를 하나 이뤄냈습니다.
[이상현 기자/ 통일전망대] "이 백자박물관에 특별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고 해서 찾아왔습니다. 이곳 양구, 남한의 백토로 북한 출신 도예가가 빚어낸 이른바 통일백자를 만나볼 수 있다는데요. 저와 함께 들어가보실까요?"
남한, 그리고 북한 지역 백자까지 가득했던 박물관 수장고에서 만난 중년의 탈북민.
도자기로 유명한 북한 회령에서 도자기를 전공하고 20년 간 도자기 회사에 근무하다 부푼 꿈을 안고 2004년 탈북했지만, 꿈은 접어야만 했다고 합니다.
[리상철/탈북 도예가] "여기서 작품을 진짜 제대로 좀 해보자 이런 생각 가지고 사실 (북한을) 떠났었는데, 생계 때문에 20년 간 도자기를 놓고 있다가 바늘 끝과 바늘 끝이 마주하는 일이 있다고 하더니만 그런 식으로 오늘 연결이 돼서 작품을 하게 됐어요."
20년 만에 다시 물레질에 도전하는 터라 처음엔 어색하고 기억도 가물가물했지만, 다행히 자신의 손은 금세 모든 걸 기억해냈고, 수개월 노력 끝에 양구백토, 남한의 흙으로 처음 만들어본, 그리고 통일의 염원을 담아낸 작은 의미의 '통일백자'를 세상에 내놓게 됐습니다.
물을 저장하는 용도여서 물고기를 그려넣었다는 옹기들.
밥과 국을 담아내는 주방용기부터, 여러 모양의 꽃병과 술병, 찻잔까지.
[리상철/탈북 도예가] "'차 마시는 사람도 분위기가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에서 다 고향에서 그려봤고 해봤던 것들을 재현해 본 거에요."
특히 동물 한 쌍을 그려넣은 작품들이 많았는데요.
남북의 모습을 상직적으로 묘사하며 통일을 바라는 마음을 간접적으로나마 표현해봤다고 합니다.
[리상철/탈북 도예가] "하나는 북이고 하나는 남이고, 등 지고 있는 거잖아요? 계속 대결하면서. 그런 의미에서 용이 등 지고 있고, 화병이니까 꽃을 피워야 되는데 피우질 못하고 있는 거에요. 남북이 갈라져가지고. 앞으로 만약 통일이 된다면 용을 돌려서 서로 마주보는 걸로 하고 여기에 꽃을 꽂으면.."
추운 지방인 고향, 함경북도 회령의 도자기마냥 물건을 차갑게 하지 않으려고 입구는 좁게, 몸통은 부풀게 했고요.
볏짚 재를 사용한 유약을 두텁게 발라 눈물처럼 흘러내리게 했는데요.
이런 북한의 제작 방식이 성형도와 백색도가 높다는 원료, 남한의 양구백토를 만나서일까요?
남쪽 도자기 모습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연출됐습니다.
[이정우/양구 도예가] "한국의 작가들에 비해서는 좀 선 자체가 거칠고 그런데 그 거친 형태나 모양을 화려한 청화의 느낌으로 완성도 높여서 작업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영미/재미교포 도예가] "이 분 작품들은 어떻게 보면 세련되진 않은데 오히려 마음에 와 닿고 옛날 50년대, 30년대로 돌아가는 그런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저한테는 참 좋은 작품으로 느껴지고 있습니다."
온전하진 않지만 '통일백자'을 향해 내딛은 소중한 첫 걸음.
[정두섭/양구백자박물관장] "북한 사람이 남한의 흙으로 작업을 했다는 것에 일단 큰 의미를 두고요, 실제로 우리가 생각했던 진짜로, 북한의 좋은 원료와 남한의 좋은 원료를 합토해서 정말 좋은 최상의 원료를 만들고 남북의 도예가가 성심을 다해서 아주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그 순간까지 노력을 해봐야 될 것 같습니다."
그 작지만 진정어린 노력들로 만들어진 뜻깊은 백자들은 유난히 하얗고 밝은 빛을 뿜어내며 남북접경지의 늦가을을 따스하게 빛내고 있었습니다.
통일전망대 이상현입니다.
이상현 기자(shon@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replay/unity/6547094_2911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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