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가장 무거운 동물?…‘페루세투스’가 알려주는 것
지구상에 나타났던 가장 큰 동물은 뭘까. 긴 목을 휘두르는 용각류 공룡? 바다괴물 ‘크라켄’을 닮은 대왕오징어? 정답은 대왕고래(흰긴수염고래)다.
현재까지 측정된 최대 기록은 길이 27.6m에 체중 약 190t(톤). 45억 년 기나긴 지구의 역사 속에서 지금껏 출현한 가장 거대한 동물과 동시대를 살 수 있다니 영광스럽지 않은가. 그런데 지난 8월 가장 무거운 동물의 지위를 바꿀지도 모르는 연구가 발표됐다. 주인공은 약 3900만 년 전 바다에 살았던 고대 고래다.
● 몸무게만 340t, 페루에서 발견된 고대 고래
약 3900만 년 전 신생대 에오세기의 페루. 이곳을 채웠던 얕은 바다 바닥을 헤엄치다 보면 여러분 위로 지나가는 거대한 그림자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지구에서 살았던 가장 무거운 동물 고대 고래 ‘페루세투스 콜로서스(Perucetus colossus)’의 그림자 말이다.
엘리 암슨 독일 슈투트가르트 주립 자연사박물관 큐레이터의 국제 공동연구팀이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한 추정치에 따르면 페루세투스는 길이 17~20.1m, 체중 85~340t(톤)으로 흰긴수염고래의 체중을 뛰어넘을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하다. (doi : 10.1038/s41586-023-06381-1)
연구팀은 이 화석에 ‘페루의 거인’이라는 의미를 담아 학명을 붙였다. 발견된 곳이 페루 이카주의 사막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아주 멋진 이야기예요. 13년 전, 저희 논문의 공저자이기도 한 페루 고생물학자 마리오 우르비나가 사막 퇴적층에서 뭔가 튀어나와 있는 걸 발견했죠. 처음에는 엄청난 크기 때문에 다른 팀원들에게 자신이 발견한 것이 화석이 맞다고 설득해야 했어요.”
암슨 큐레이터는 과학동아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화석 발견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는 네이처에 발표한 페루세투스 논문의 교신저자다.
처음에 우르비나의 말이 의심받았던 이유는 그가 발견한 화석이 그저 100kg 정도 무게의 거대한 바위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발굴 작업은 얇은 화석 절편을 채취해 실제 뼈 구조를 확인한 후에야 진행됐다.
“지층이 단단해서 화석 발굴에 말그대로 10년이 걸렸습니다.”
인고의 과정을 거쳤지만 여기저기 조각난 13개의 척추뼈, 4개의 갈비뼈, 골반 일부만 발견됐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주인공의 거대함을 유추하긴 어렵지 않았다. 이렇게 사막에 잠들었던 거인이 깨어났다.
● 대왕고래보다 작지만 무거운 이유 묵직한 뼈
페루세투스는 ‘바실로사우루스’라 불리는 초기 고래 종류에 속한다. 원래 육상 포유류였던 고래의 선조는 신생대 에오세 초기부터 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에오세 후기가 되어 나타난 바실로사우루스는 최초로 완전히 수중 생활에 적응해 바다를 누볐다. 작게 퇴화했지만 완벽한 모습의 뒷다리를 가진 채 말이다.
연구팀은 에오세 후기의 다른 근연종 바실로사우루스 화석과 비교해 페루세투스의 신상 명세를 알아냈다. 비교하는 근연종의 척추뼈 수에 따라 페루세투스의 길이는 17~20.1m로 추정했다. 체중은 고래나 매너티 등 현생 해양 포유류의 골격 대 체질량 비율로 추정했다.
그렇게 구한 수치에서 특기할 만한 점은 페루세투스가 대왕고래보다 덩치는 작은데 체중은 더 나간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페루세투스의 뼈가 다른 고래들보다 훨씬 두껍고 조밀하기 때문이다. 페루세투스의 뼈는 대왕고래는 물론 지금까지 알려진 어느 고래의 뼈보다도 무거운 수준이다.
왜 이렇게 무거운 뼈를 가지고 있을까. 해양 포유류의 뼈 무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하나는 부력 조절이다. 몸에 지방이 많다면 물 위로 떠오르려는 지방의 부력을 상쇄하는 무게추가 필요하다. 뼈가 무거우면 상대적으로 부력의 균형을 맞추기 수월하다.
“퇴적물 분석 결과, 페루세투스는 아마도 기후 냉각기에 살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차가운 바닷물을 견디기 위해 두꺼운 지방이 필요했다면 그 부력을 상쇄하기 위해 무거운 뼈도 필요했을 수 있죠.” 암슨 큐레이터가 설명했다.
●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동물’이란 환상
다른 수치들이 그렇듯 동물의 ‘거대함’과 ‘무거움’을 나타내는 수치는 정확하지 않은 관찰과 모호한 추정치에 기반하는 경우가 많다.
기네스북의 ‘가장 큰 동물’ 항목에 등록된 대왕고래의 길이와 무게 수치는 1947년 3월 20일 남극해에서 잡힌 개체에서 나왔다. 체중이 측정되지 않은 33.6m 길이의 암컷도 관찰된 바 있는데 당연히 체중은 훨씬 더 무거울 것이다.
체중 측정(추정)은 고생물의 영역으로 가면 훨씬 어렵다. 우선 얻을 수 있는 자료가 부족하다. 페루세투스처럼 겨우 몇 조각 남은 뼈에서 체중을 추정해야 하고 그 추정치도 자주 뒤집히기 일쑤다. 대표적인 예가 가장 거대한 육상 동물 후보로 항상 언급되는 용각류 공룡(목긴공룡)이다.
1987년 인도에서 발견된 ‘브루하트카요사우루스’의 체중이 대왕고래와 비슷하거나 무거울 것이라 추정한 연구가 있었다. (doi : 10.18261/let.56.2.5)
그러나 발견된 화석이 부서져버려 현재는 연구할 수 있는 모식 표본조차 남지 않았다. 아르젠티노사우루스, 마라푸니사우루스 등 다른 몇몇 공룡이 가장 무거운 공룡 목록에 이름을 올리고 있지만 정확한 1등을 가리기는 여전히 쉽지 않다.
논문에 실린 대부분의 체중 추정치는 후속 연구에서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아마도 가장 거대한 공룡을 발견하고 싶은 연구자들의 마음이 반영된 경향 아닐까.
마찬가지의 불확실성이 페루세투스에게도 그림자를 드리운다. ‘85~340t’이라는 체중 추정치는 대왕고래 무게의 0.5~1.8배에 달할 정도로 넓은 범위다. 불확실한 추정치는 우리가 페루세투스에 관해서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예를 들어 아무도 페루세투스가 뭘 먹고 살았는지 모른다. “머리 화석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암슨 큐레이터의 대답이다. 초식이었을 가능성은 희박하고 엄청난 체중을 고려했을 때 빠르게 움직이는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제가 좋아하는 가설은 페루세투스가 다른 대형 동물의 사체를 먹는 청소부였다는 겁니다. 화석이 없으니 더 정확하게 추정할 수는 없지만요.”
‘가장 거대한 동물’은 우리 모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신비로운 표현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거대한 동물을 가려내는 일은 애매한 목표이자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어쩌면 페루세투스 연구의 진정한 결론은 페루세투스 체중 수치가 아니라 이 고대 고래의 특이하게 무거운 뼈를 통해 우리가 초식 고래, 청소부 고래 등 한번도 본 적 없는 다양한 고대 고래의 가능성을 상상해 볼 수 있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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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욱 기자 changwook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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