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사망자 4배가 자살...예방 인력은 교통사고의 1.7%
[편집자주] 코로나19(COVID-19) 팬데믹 3년 간 코로나로 숨진 이들보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이 더 많은 곳이 대한민국이다. 과거 자살로 악명이 높았던 일본은 국가가 직접 자살을 막기 위해 나서 자살률을 낮추는 데 성공했다. 인간이 자신에게 가하는 최악의 비극을 막기 위해 국가와 사회가 해야 할 일은 뭘까.
3만9453명 vs 3만2156명.
각각 지난 3년간(2020~2022년) 국내에서 자살한 사람과 코로나19 사망자의 수다. 대한민국에선 전 세계에 불어닥친 팬데믹(전염병 대유행)보다 '자살'이 더 해로웠던 셈이다. 같은 기간 교통사고 사망자(1만306명)과 비교하면 자살한 사람이 4배에 달한다. 합계출산율 0.78명의 초저출산 사회인 한국에서 자살로 3년 만에 경남 산청(인구 약 3만3800명) 규모의 군 단위 도시 하나가 소멸한 셈이다.
그럼에도 국가적 첨단 방역체계가 구축된 코로나, 각종 안전 시스템이 설치된 교통사고와 달리 자살에 대해선 국가적 예방 체계가 제대로 마련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국가가 자살 예방에 책임을 지고 자살 위험군을 선제적으로 관리해 자살률을 끌어내린 일본의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24일 정치권에 따르면 현재 국회에 계류된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이하 자살예방법) 개정안들은 대부분 자살예방 교육 강화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 자살시도자 응급구조 등 실질적인 자살 예방 체계 구축과 관련한 내용은 담고 있지 못하다.
현행 자살예방법은 총칙에서 국가의 책임을 '자살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책무'로, 법의 목표를 '국민의 소중한 생명을 보호하고 생명존중문화를 조성함'이라고 모호하게 표현하고 있다. 반면 자살률 하락에 성공한 일본은 자살대책기본법에 "아무도 자살에 몰릴 수 없는 사회의 실현을 목표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한국의 자살률은 지난해 10만명당 25.2명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 평균(10.7명)의 2.4배, 일본 자살률의 1.55배에 달한다. 2000년 10만명당 13.7명이었던 한국의 자살률은 2003년 22.7명으로 치솟았다. 정부는 2004년 제1차 자살예방기본계획을 시행하고 2011년 자살예방법을 제정하는 등 20년 간 노력을 기울였으나 효과는 미미했다. 일본의 경우 2000년대 초반 자살률이 10만명당 27명을 넘어섰다가 지난해 17.5명으로 줄었다. 자살 위험군을 선제적으로 발굴하는 서비스와 지방자치단체별 차별화된 정책이 효과를 봤단 평가다.
일본 자살 대책 NPO(비영리단체)인 본드프로젝트는 인터넷에 '죽고 싶다'고 글을 올린 사람들을 찾아가 상담한다. 라이프링크는 SNS(소셜미디어) 채팅으로 우울감과 좌절감에 빠진 이들을 상담한다. 이윤호 안실련 정책사업본부장은 "우리는 연락이 오거나 찾아오면 상담하는 시스템이고 일본은 선제적으로 검색해 접근한다"고 설명했다.
자살 예방의 가장 큰 어려움은 자살 위험군이 병원에 스스로 찾아오지 않는다는 데 있다.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자살은 '예방'이 핵심대책인데 문제는 우리나라는 복지, 의료시스템이 '신청주의'에 기반하듯이 자살 예방도 일단 핫라인(자살예방 상담전화)을 건 후에야 모든 서비스가 이뤄진다. 일본, 덴마크 등에서 찾아가는 서비스가 이뤄지는 것과 다르다"고 분석했다.
한국이 찾아가는 자살 예방 서비스를 구축하지 못하는 건 예산과 인력의 부족 때문이다. 일본의 2021년 자살 대책 관련 예산 규모는 중앙부처의 자살대책추진센터(600억원)와 지자체를 포함해 최대 83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의 20배 규모다.
국내 교통사고와 비교해도 자살 예방에 투입되는 자원은 턱없이 적다. 교통안전의 경우 한국교통안전공단, 도로교통공단에 4921명의 인력이 있다. 이처럼 막대한 자원을 투입한 결과 지난해 우리나라의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통계 작성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반면 자살 정책은 보건복지부 건강정책국 내 자살예방정책과 1곳과 복지부 산하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이 전담하고 있다. 희망재단의 인력은 83명으로 교통안전 관련 기관의 1.7%에 불과하다.
이 본부장은 "자살이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한 만큼 예산을 충분히 투입하고 기금 형태로도 운영할 필요가 있다"며 "예산이 수반되지 않고는 정책을 수행하기 어려운데 기획재정부는 경제 논리로 접근하며 반대하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정부는 내년도 자살예방사업 예산안을 지난해 대비 2억8200만원 증액한 491억2900만원으로 편성했고, 지난 1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559억2900만원으로 증액했다. 자살예방상담(1399) 운영 예산과 자살유족 원스톱 서비스 지원사업을 각각 26억6600만원, 18억3200만원 증액했다. 그러나 진행 중인 예결위에서 기재부 등의 반대로 삭감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아직 우리나라에서 자살이 국가의 책임이라는 사회적 인식과 공감대가 부족하단 점을 지적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자살예방법부터 개정해 국가의 책임을 더욱 분명하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백 교수는 "국민 누구든 자살 위기에 빠질 수 있고 국민을 자살 위기에서 구조해야 할 책임이 국가에 있다는 것을 법에 명시할 필요가 있다"며 "선진국도 모두 이런 인식의 변화를 거쳤다"고 했다.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학대학원 교수는 "자살 생각과 시도에 대한 응급적 개입과 더불어 여성에 대한 폭력과 성차별 개선, 노인 삶의 질 향상 등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며 "지난 20년간 제도와 조직, 예산 변화에도 자살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데 대한 근본적 점검이 필요한 때"라고 지적했다.
박소연 기자 soyunp@mt.co.kr 차현아 기자 chacha@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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