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팬은 필요없다”…개딸·대깨윤, 어디서부터 삐뚤어졌나 [Books]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3. 11. 25. 07:5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팬덤의 시대
마이클 본드 지음, 강동혁 옮김, 어크로스 펴냄
21시기 대표 키워드 ‘팬덤’
문화산업 이끄는 힘이지만…
정치 영역선 사실상 독버섯
내편이 아니면 적으로 간주
국회습격 트럼프 지지자처럼
反지성주의 행동으로 이어져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지지자들이 여의도 민주당 당사 앞에서 비명계 의원들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 출처=연합뉴스]
‘베이커가(街) 221b번지.’ 영국 런던의 저 주소가 영국 추리작가 아서 코난 도일이 창조한 주인공 ‘셜록 홈즈’의 집주소란 사실은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곳엔 수신인이 ‘셜록 홈즈’인 전 세계 팬들의 편지가 무려 50년간 끊이지 않았다. 이 주소지는 실제로 ‘애비로드’란 이름의 주택건설조합이 사용했는데, 가상의 탐정에게 도착한 편지가 너무 많이 오다 보니 조합은 ‘셜록 홈즈 편지를 관리하고 답장하는 비서’를 아예 따로 채용할 정도였다고 한다.

중국의 한 팬이 홈즈에게 보낸 편지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친애하는 홈즈, 모리어티(작품 속 홈즈의 숙적)가 베이징 근처 슈퍼마켓에서 누군가 통화하는 걸 봤어요. 긴급 상황입니다!”

소설 속 가상인물에게 팬레터를 보내며 스스로의 팬심을 확인하는 세상, 바야흐로 팬덤의 시대다. 스타도 정치인도 팬덤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해졌다. 미국 저널리스트 마이클 본드는 신작 ‘팬덤의 시대’에서 21세기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팬덤이라고 말한다. BTS, 테일러 스위프트는 하나의 가상 제국을 이뤘고, 극우부터 극좌까지 온 세계 정치 스팩트럼은 ‘팬덤 정치’로 가득해졌기 때문이다.

‘팬’이란 말은 단어 ‘광신자(fanatic)’에서 파생됐다고 책은 전한다.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인류가 팬덤을 한 자리에서 공유하는 장소는 기껏해야 야구경기장 정도였다. 좌석에 앉아 ‘나와 똑같은 사람’을 발견하기, 그리고 안도하기. 그럼에도 당시 팬들은 경기장을 제외하면 열정을 뜨겁게 발산할 통로가 적었고, 팬심을 공개적으로 표출할 길은 드물었다.

집단 소속감이 공적으로 드러나고 서로 공유되기 시작한 건 미디어의 발달과 함께였다. 미국 방송사 NBC가 ‘스타트렉’ 방영을 폐지하려 했던 1967년, ‘방영을 계속하라’는 항의 편지의 숫자는 상상을 능가했다. 이메일이나 온라인 게시판도 없던 시절이니 유일한 경로는 손편지였는데, 당시 발송된 서한 수는 ‘11만5893통’이었다. 제작사는 폐지를 번복했다. 팬들이 발행한 ‘스타트렉 잡지’는 1980년대 120종이었다. ‘스타트렉’ 잡지를 만든 이들도, 런던 베이커가에 편지를 보낸 사람들도 결국 ‘팬심’으로 귀결된다. 왜 그런가.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집단으로의 소속감이 나의 정체성까지 만든다고 생각한다. 김연아가 빙판에서 넘어질 때 ‘나’도 가슴이 쓰렸던 것이고, 손흥민이 골을 넣고 포효할 때 ‘나’의 아드레날린도 폭주하는 건 이 때문이다. 그것은 단지 한국이란 국가의 정체성을 넘어, 선수를 향한 깊은 애정을 가진 사람들의 연대감에 가깝다. K팝 공연장에서 떼창을 하고 비명을 지르고 길거리에서 스타의 춤동작을 따라하는 일도 자신의 원하는 정체성을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행위가 된다. 누군가의 팬이라는 것. 그것은 모든 ‘나’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이 된다.

팬덤은 소외된 사람들이 스스로를 구원하려는 일종의 제의적 행동이다. 또래 집단과 어울리는 데 어려움을 겪은 청소년들은 옆자리 아이들이 즐기는 대상을 함께 공유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이식’ 받는다. 해시태크(#)나 인증샷은 소속감의 강력한 증거다. 타인과 자신이 같은 대상을 향한 사랑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자아에 안정감을 허락해준다. 이는 곧 ‘나’ 개인이 아닌 ‘우리’라는 감각의 탄생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팬덤은 세상을 퇴보시키는 강력한 무기이기도 하다. 팬심이 깊어질수록 내집단을 향한 충성심은 강해지고, 외집단을 향한 증오심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유명인과 자신을 동일시할 때 외집단을 향한 증오는 더 짙어진다. 마이클 잭슨이 아동 성추행으로 기소됐을 때 사람들은 ‘사실’과 ‘사실이 아닌 것’을 분리하는 이성적 사고 대신, 잭슨에게 ‘무죄추정의 원칙’을 적용해 버스 옆면에 “사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란 문구를 광고했다고 책은 쓴다. 범죄 여부를 가리는 과정 자체가 결여된 것은 이성적 사고가 아니다.

그뿐인가. 2009년 타이거 우즈가 결국 불륜을 인정했을 때에도, 그보다 앞서 2003년 코비 브라이언트가 성폭행 혐의로 기소된 후에도, 많은 사람들은 비난보다는 지지하는 마음을 보냈다. 팬덤은 가치 판단의 시간이 필요한 사건에도 유명인이 저지른 잘못과 그들이 성취한 업적을 분리했고, 끝내 그들이 이룬 성취에 초점을 맞춰 행동한다. 팬덤이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은 내집단의 시각에서 볼 때, 그들 밖에 존재하는 외집단은 일종의 적이다.

지난 2021년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에 불복한 트럼프 당시 후보의 지지자들이 미국 국회의사당에 난입해 행패를 부리고 있다. [사진 출처=연합뉴스]
팬덤이 정치와 만나면 비이성은 독버섯처럼 자란다. 자신이 사랑했던 정치인의 불행에 취약한 이들은 ‘나의 세계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에 불안과 혼란을 느낀다. 쉬운 해결 방안은 충성심을 접는 대신 충성심을 오히려 증폭하고 과열시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 패배 후 그의 지지자들이 국회의사당을 점거한 사실은 하나의 비극이다. 패배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상황 자체를 ‘소통 불능의 지옥’으로 몰고갔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국내외 가릴 것 없이, 전 세계 좌우(左右)가 공히 비슷하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의 포효에 함께 웃고, 내가 애정하는 정치인의 몰락에 눈물짓는 세상. 그건 과연 희망적이기만 한 세상일까. 책은 바로 그 점을 묻는다. 원제 ‘FANS.’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