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예산 돋보기]㉒ 선진국들 극지로 가는데...예산 삭감에 극지 연구 얼어붙는다
해수부·과기정통부, 1058억→348억으로 삭감
연구자 “인건비부터 재료비, 야외 조사비까지 악영향”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2023년 국가연구개발 우수성과 100선에는 극지연구소의 연구 성과 2건이 선정됐다. 기후변화와 지구 온난화가 남극의 얼음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규명한 성과를 인정받은 것이다.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의 결과를 볼 수 있는 최전선인 극지에서 빙하가 사라지는 속도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초석을 닦았다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연구 성과와 달리 국내 극지 연구 예산에는 때아닌 찬 바람이 불고 있다. 극지연구에 일명 ‘카르텔’이라는 꼬리표가 달리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해양수산부는 내년도 극지 연구개발 예산의 70% 정도를 삭감했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국정감사 때 공개한 ‘극지 연구 중기재정 계획 및 2024년도 예산안’ 자료에 따르면, 당초 내년에 계획된 예산은 1058억원이었지만 부처 협의를 거쳐 348억원으로 줄었다. 처음 계획보다 67%가 삭감된 것이다. 박찬대 의원은 “‘카르텔’이라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연구 현장은 빙하처럼 녹아내리고 있다”고 밝혔다.
현장 연구자들은 극지 연구 예산이 삭감되는 과정에 물음표를 붙인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의사결정이 있었다는 것이다. 가장 황당한 건 ‘극지 유전자원 활용기술 연구개발’ 사업이다. 해수부가 맡고 있는 이 사업은 당초 61억원에서 4억원으로 예산이 줄었다. 사실상 사업을 접으라는 이야기다. 해수부가 예산을 삭감한 이유는 극지연구소가 사업에 단독으로 입찰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 사업은 2차 재공고까지 진행했는데도 극지에서 수행하는 연구개발 사업이라는 어려움 때문에 신청한 기관 자체가 없었다. 국내에서 극지 연구가 가능한 유일한 연구기관이 극지연구소여서 결국 단독으로 입찰을 진행했는데, 단독 입찰을 이유로 카르텔이 의심된다며 예산을 깎은 것이다. 이 사안이 논란이 되자 해수부는 극지연구소는 후보물질을 탐색하고, 유관 전문기관을 통해 전임상실험과 생산공정 확보 등 상용화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냈다. 하지만 어떤 전문기관이 극지 유전자원 상용화에 손을 들었는지는 묵묵부답이다.
R&D 주무부처인 과기정통부도 마찬가지다. 과기정통부 소관인 ‘해양극지 기초원천 기술개발’ 사업은 예산이 올해 75억원에서 내년 40억원으로 반토막났다. 이 사업은 극지의 해양생명체를 연구해 신약이나 신소재에 쓰일 물질을 찾는 사업이다. 국가연구개발사업 평가에서 ‘우수’를 받을 정도로 성과도 좋았고, 과기정통부 스스로도 2029년까지 사업 기간을 연장하며 꾸준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과기정통부가 기획재정부에 보낸 이 사업의 2024년 예산요구서를 보면 내년 예산으로 올해보다 많은 79억원을 요청했다. 과기정통부는 “북극 환경 변화 특성을 규명하고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필요한 사업”이라며 “북극이사회 옵서버 국가로서 한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국제 공동협력 연구를 지속하기 위해 79억원의 예산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결국 증액은 커녕 40억원으로 예산이 반토막난 것이다. 22일 국회에서 열린 ‘미래를 만드는 남극·북극의 극지연구, 성과와 전망을 말하다’ 정책토론회에 참석한 정민원 과기정통부 거대공공연구정책과장은 과기정통부의 증액 요구에도 최종적으로 예산이 삭감된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말을 아꼈다.
연구자들은 국회 논의 과정에서 극지 연구 예산이 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주한 극지연구소 미래기술개발부장은 “새로운 과학적 질문을 풀기 위해서는 첨단 기술이 필요하고, 역량 있는 파트너들과 협력 연구도 해야 한다”며 “장기적인 안목으로 기술 축적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서원상 극지연구소 전략기획부장도 “한국처럼 좁은 영토에 자원이 나지 않는 국가에게 극지는 반드시 진출해야 할 곳”이라며 “지금 극지에서 유일하게 보장된 활동이 과학연구인 만큼 성과를 낼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극지연구소와 함께 R&D 과제를 하고 있는 한 연구자는 정부가 극지 연구의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이 연구자는 “5억 규모의 연구에도 20~30명의 학생이 참여하는데, 예산이 줄면 학생들의 인건비는 물론이고 실험 재료비, 시베리아나 알래스카 야외 조사 등을 하는 데에도 영향받을 것 같다”며 “극지연구를 하는 플레이어가 대부분 규모가 작은데 정부 지원이 갑자기 줄어들면 연구를 이어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크리스마스에 네 식구 식사하면 80만원… 연말 대목에 가격 또 올린 호텔 뷔페들
- ‘가전 강국’ 일본에서도… 중국 브랜드, TV 시장 과반 장악
- “감동 바사삭”… 아기 껴안은 폼페이 화석, 알고 보니 남남
- “한복은 중국 전통의상” 중국 게임사… 차기작 한국 출시 예고
- [단독] 갈등 빚던 LIG·한화, 천궁Ⅱ 이라크 수출 본격 협의
- 암세포 저격수 돕는 스위스 ‘눈’…세계 두 번째로 한국에 설치
- 둔촌주공 ‘연 4.2% 농협 대출’ 완판…당국 주의에도 비집고 들어온 상호금융
- [르포] 역세권 입지에도 결국 미분양… “고분양가에 삼성전자 셧다운까지” [힐스테이트 평택
- 공정위, 4대 은행 ‘LTV 담합’ 13일 전원회의… ‘정보 교환’ 담합 첫 사례로 판단할까
- ‘성과급 더 줘’ 현대트랜시스 노조 파업에… 협력사 “우린 생계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