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마' 이상훈 "LG 우승 원동력은 위기극복 능력... 이제 새로운 애인과 멋진 사랑 나누길"
올해 우승 승부처는 한국시리즈 2차전
"FA 임찬규·함덕주·김민성 모두 잡아야"
최원태·김윤식 등 후배들에게도 응원 메시지
“후련합니다.”
1994년 LG 통합우승의 주역인 이상훈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이 친정팀의 정상 등극에 짧지만 굵은 소감을 전했다. 이 위원은 29년 전 장발을 휘날리며 정규시즌 18승(8패)을 달성했고, 한국시리즈에서도 1·4차전 선발투수로 나서 팀의 두 번째 우승을 이끌었다. 비교적 짧은 현역 생활이었지만 '야생마'라는 애칭으로 그 누구보다 강렬한 인상을 남긴 LG의 리빙 레전드다.
지난 21일 한국일보 본사를 찾은 그는 “강산이 세 번 변한 만큼 팬층도 10년 단위로 나뉘어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각 세대마다 가지고 있는 감정과 기억이 다 다를 텐데, 매번 94년 우승 당시 모습만 소환돼 답답함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이어 “만약 LG가 내년에 또 한국시리즈에 올라간다면, 이제는 94년도가 아닌 올해 우승 모습이 소환될 것”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답답함에서 해방되는) 후련함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이 위원이 꼽은 올 시즌 LG의 우승 원동력은 위기극복 능력이다. 그는 “암흑기를 거친 뒤 (우승이) 될까 말까 한 기회가 몇 차례 있었는데, 매번 위기가 닥치면 그 상황에서 헤어 나오지를 못했다”며 “그런데 올 시즌에는 위기가 찾아와도 자연스럽게 이겨냈다. 팀이 슬럼프에 빠지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LG가 굉장히 강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한국시리즈 2차전이 축약판이다. LG는 선발투수 최원태가 0.1이닝 4실점으로 흔들렸지만, 불펜의 무실점 역투와 오스틴 딘·오지환·박동원 등 타자들의 맹활약으로 5-4 대역전극을 연출했다. 이 위원 역시 2차전을 승부처로 꼽았다. 그는 “만약 시리즈 전적 0-2로 끌려갔다면 3차전에서 KT 선발투수 웨스 벤자민에게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며 “결과적으로 모두 훌륭하게 제 역할을 수행해 위기를 극복해냈다”고 평가했다.
오랜만에 정상에 선 LG 구성원들은 이제 ‘2연패’ ‘왕조건설’ 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94년 우승 이듬해의 이야기가 나왔다. 이 위원은 당시 KBO리그 최초로 ‘좌완 정규시즌 20승’을 달성하며 2년 연속 다승왕에 올랐고, LG 역시 시즌 막판까지 정규시즌 1위를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OB(현 두산)에 반 게임차로 밀리며 정규시즌 2위로 내려앉았고, 플레이오프에서 롯데에 시리즈 전적 2-4로 지며 2연패 달성에 실패했다.
이 위원은 당시를 떠올리며 “선발 20승이라는 게 하나도 의미가 없더라. 15승을 하더라도 팀이 우승을 하는 게 훨씬 나았다”며 “아마 당시 우승을 했다면 29년간 정상에 못 서는 팀은 안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전했다. 다만 큰 교훈도 얻었다. 그는 “1승 1승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깨달았다”며 “물론 전체 시즌을 운영하는 데 어려움이 있겠지만, 내년 LG는 이런 마음을 꼭 가졌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2연패’를 위해 LG가 해결해야 할 현실적인 과제도 있다. 임찬규 함덕주 김민성이 자유계약선수(FA)로 시장에 나와 있다. 이 위원은 이에 대해 “다 잡아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FA는 여태까지의 공헌도와 미래의 기대를 종합해 평가하는 것”이라며 “임찬규는 마운드의 한 축이고, 함덕주도 한국시리즈에서 마무리급의 활약을 펼쳤다. 김민성 역시 오지환의 빈자리를 메운 후 1·3루 수비를 봤다. 29년의 숙원을 이루게 해준 장본인들”이라고 칭했다. 이어 “발등에 불이 꺼졌다고 해서 신발을 갈아 신으면 안 된다”고 재차 강조했다.
후배들에 대한 애정이 묻어난 말이었다. 이는 다른 선수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올 시즌 중 키움에서 이적해 온 최원태에 대해서는 “(한국시리즈에서 흔들리기는 했지만) 투수는 맞을 때도 있는 것”이라며 “올해는 스프링캠프, 시범경기 등 LG와 함께 시즌을 시작하는 만큼 더욱 강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들지 못한 박명근도 “그만큼 던지는 사이드암 투수는 없다”고 치켜세웠고, 이재원에게는 “여러 가지 생각하지 말고 단순하게, 좀 더 이기적으로 야구를 하면 훨씬 더 발전할 것”이라는 조언을 건넸다.
자신의 현역시절 등번호 47번을 달고 있는 김윤식과도 훈훈한 일화가 있다. 김윤식은 올 시즌을 앞두고 이 위원에게 직접 찾아와 47번을 달아도 되는지 허락을 구했다. 이 위원은 “나한테 왜 허락을 받는지는 모르겠지만, 김윤식에게 ‘네가 달면 네 번호다. 다른 생각하지 말고 열심히 던져라’라고 말을 해줬다”며 “김윤식이 우승 후에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보냈길래 다시 한번 ‘네 번호고, 언제 한번 만나서 밥이라도 먹자’고 답했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영구결번에 대한 아쉬움은 없는지 물었다. LG의 영구결번은 김용수(41번) 이병규(9번) 박용택(33번)뿐이다. 이 위원은 “영구결번은 구단이 선택하는 것”이라며 “아쉬움은 없다. 괜찮다”고 담담하게 답했다. 오히려 그는 “늘 얘기하지만, 팬들이 이제 옛사랑(94년 LG)은 잊고 새로운 애인(23년 LG)과 연애하고 싸우면서 멋진 사랑을 나누면 좋겠다”며 웃었다.
박주희 기자 jxp93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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