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그때…' 한 소년의 네 갈래 삶을 따라간 끝 [책과 세상]
신작 장편소설 '4 3 2 1'(전 2권)
1947년 뉴욕 출생 소년의 유년기~청년기
네 가지 버전의 삶 평행하게 그리며 전개
수많은 선택과 우연으로 갈라져도 결국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는 그렇게 합류한다"
'만약 그때…' 우리는 수많은 선택과 우연이 촘촘하게 새겨진 인생길을 걸어간다. 그래서 농담처럼, 간혹 진심으로 후회하며, 가정해본다. 그리고 상상한다. 그랬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미국 현대문학 대표 작가인 폴 오스터(76)의 신작 '4 3 2 1'은 누구나 던져봤을 만한 질문을 극한으로 밀어붙인 장편소설이다.
집필의 계기는 5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청소년 캠프에서 하이킹 중 폭풍우를 만나 친구가 벼락에 맞아 죽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본 경험은 열네 살 오스터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 언제 어디서든 벌어질 수 있음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작가는 평생 언제 닥쳐올지 모를 죽음을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렇게 삶 속에 항상 존재하는 죽음과 '만약'을 본격적으로 파고든 결과물이 이 소설이다.
오스터는 무려 1,500쪽(2권)에 달하는 분량을 3년간 거의 매일 수기(手記)로 완성했다. 작가 스스로 "바로 이 책을 쓰기 위해 평생을 기다려 온 것만 같다"고 고백했을 정도로 전력투구한 작품이다. 2017년 영문 원작 출간 당시 부커상 최종후보에 오르는 등 호평을 받았다.
소설 '4 3 2 1'은 1947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아치 퍼거슨'의 삶을 그린다. 유대인 이민자 가정 출신인 어머니 '로즈', 아버지 '스탠리'와 함께 소년은 뉴저지 교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동갑내기 '에이미'를 좋아한다. 소설은 1950~60년대 격동기 미국 사회를 배경으로 선택과 우연, 서로 다른 관계의 사건들이 얽히고설키면서 만들어진 네 개의 평행우주 같은 퍼거슨의 삶을 쫓아간다.
구성이 독특하다. 퍼거슨의 삶을 총 7장으로 나눠 시간순으로 전개하는데 네 가지 버전이 존재한다. '1.1 1.2 1.3 1.4 / 2.1 2.2 2.3 2.4…'와 같은 배열이다. 예컨대 5, 6살의 기억부터 초등학교 입학 시기쯤을 담은 1장을 보면 어린 퍼거슨의 병치레나 아버지와 그 형제들의 관계 설정 등으로 인해 상황이 달라진다. 38.7도까지 올랐던 열이 금방 떨어진 어린 퍼거슨(1)은 베이비시터를 따라 야구중계를 보면서 야구에 빠진다. 높은 열이 편도염 탓이었던 퍼거슨(2)은 병이 나은 후 뒷마당 참나무에 올랐다가 떨어져 깁스를 한다. 집에서 요양하는 동안 사촌 누나 '프랜시'가 들려준 핵전쟁과 냉전이란 세상 이야기에 충격을 받고 사회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초등학생이 된다. 한편 퍼거슨(3)은 젊은 시절부터 두 형의 뒤치다꺼리를 했던 아버지가 자신의 가게를 지키려다가 결국 형의 방화로 숨진 비운의 가계를 둔 소년이다. 결혼하면서 두 형과 거리를 두고 지내기로 결심한 아버지를 둔 퍼거슨(4)은 부유한 환경에서 자라지만 부모님과 정서적 교감을 하지 못하며 자라난다.
이런 작은 차이가 계기가 돼 세월이 흐르면서 취향도 꿈도 다른 네 명의 퍼거슨 캐릭터가 완성된다. 퍼거슨(2)은 여름방학을 맞아 떠난 캠프에서 열세 살의 나이로 일찍 죽음을 맞기도 한다.
복잡한 구조이지만 네 가지 삶을 유연하게 연결하는 대목에서 오스터의 노련미가 빛난다. 아빠, 삼촌, 친구 등 대상은 다르지만 어린 시절 죽음을 가까이서 경험하면서 삶을 다시 보게 되고 어른들의 배신과 모순을 목도하면서 성장통을 겪는 것은 공통점이다. 글쓰기를 좋아하고 에이미를 사랑하게 되는 점도 마찬가지다. 이런 공통점들 때문에 독자들은 어딘가 맞닿아 있는 듯한 네 명의 퍼거슨을 발견한다. 각기 다른 버전을 따라 읽어가다가도 중반부를 넘어서면 하나의 입체적 인물로서 퍼거슨을 상상할 수 있게 하는 솜씨는 거장 오스터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제목 '4 3 2 1'의 의미도 궁금증을 유발한다. 이는 '퍼거슨(4)'의 목소리를 통해 궁금증이 풀린다. 네 버전의 퍼거슨이 어느 틈에 한 명으로 보였던 이유도 메타픽션적 면모를 드러내는 후반부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만약'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 대서사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결국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는 삶의 진실로 귀결된다. "삶은 어디에나 있고, 죽음도 어디에나 있고,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는 그렇게 합류한다."
방대한 분량, 1950~60년대 미국 정치·문화사, 주인공의 문학과 저널리즘 활동을 세세하게 그린 대목 등을 인내할 수 있다면 색다른 방식으로 삶을 관조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소설 곳곳에 폴란드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명문 컬럼비아대에서 문학을 전공한 작가의 삶의 이력이 녹아난다. 인물의 감정선이 섬세하게 표현된 이유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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