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혁신안 거부하고 버티는 與 지도부, 이것은 윤 대통령 뜻인가
김기현 대표 등 국민의힘 지도부가 당 혁신위의 ‘불출마 또는 험지 출마’ 요구를 사실상 거부하자 혁신위원 일부가 “이대로라면 더 이상 못 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당 주변에선 혁신위 조기 해체론까지 나온다고 한다. 혁신위 출범으로 여당의 변화를 기대했던 국민들은 지도부의 희생 거부 모습을 보며 ‘혹시 했더니 역시’라는 느낌일 것이다.
혁신위가 지금까지 내놓은 5개 혁신안 중 당 지도부가 수용한 것은 이준석 전 대표와 홍준표 대구시장 등의 징계 취소 1건밖에 없다.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당 지도부·중진·친윤 의원에 대한 희생 요구는 대상자 대부분이 거부했다. 김 대표부터 “당대표 처신은 당대표가 알아서 할 것”이라고 하더니, 24일에는 “울산은 내 지역구인데, 울산 가는 게 왜 화제냐”고 했다. 희생할 생각이 없다는 것으로 들린다.
김 대표는 오히려 당 장악력을 강화하고 있다. 자신과 가까운 사람을 새 최고위원에 들여 당 안팎에서 거론되던 비상대책위원회 전환 가능성을 사실상 봉쇄했다. 본인 주도하에 총선을 치르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친윤 의원들은 그런 김 대표를 옹호하고 나섰다. 23일 의총에서 윤석열 대통령 수행실장을 지낸 이용 의원은 “역대 정권을 보면 지금의 대통령과 당대표 관계가 가장 좋은 것 같다”며 “비대위는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고 했다. 다른 친윤 의원들도 박수로 호응했다고 한다. 혁신위는 지도부 희생을 요구했지만, 친윤들은 반대로 옹위에 나선 것이다.
당 지도부나 친윤들이 희생해야 선거에 이긴다는 법은 없다. 출마할지 말지, 어디에 할지도 개인의 자유다. 다만 지금 많은 국민은 현재 집권당의 모습과 주요 인물들에게 실망하고 있다. 일부에 대해선 혐오감까지 느낀다고 한다. 억울하더라도 국민의 이 정서를 받아들여 희생하는 것이 여당 의원들, 특히 대통령과 가까운 의원들이 갈 길이다. 혁신위가 주문하는 것이 바로 이런 변화다. 이를 위해 책임 있는 사람들이 앞장서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달라는 것이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이후 윤 대통령은 낮은 자세로 국민과 소통하겠다고 했다. 그런 뜻을 구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혁신위다. 하지만 혁신위가 희생과 변화를 요구하자 당 지도부가 먼저 이를 거부하고 친윤들은 그런 지도부를 감싸고 있다. 그러니 혁신위 내부에서 “혁신위는 시간 끌기용에 불과하다”는 말이 나온다고 한다. 이런 일이 대통령의 뜻과 상관없이 벌어질 수 있는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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