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수첩] 23년 뛴 스타 욕보인 SSG
개운치 않은 이적 과정 도마 올라
2001년 프로 데뷔 때부터 올해까지 23년간 한 팀(SSG와 전신 SK)에서만 뛴 외야수 김강민(41)이 결국 한화 유니폼을 입는다. 한화는 24일 “김강민이 구단 사무실을 방문해 선수 생활 연장의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김강민은 “23년 동안 ‘원 클럽 맨’으로 야구하며 많이 행복했다”며 “신세만 지고 떠나는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다. 보내주신 조건 없는 사랑과 소중한 추억들을 잘 간직하며 새로운 팀에서 다시 힘을 내보려 한다”고 했다.
지난 22일 열린 프로야구 2차 드래프트에서 SSG는 김강민을 보호 선수 명단에 넣지 않았고, 한화는 그를 지명했다. 김강민이 누군가. SK와 SSG에서 한국시리즈 우승 5회를 경험했고 작년 40세 나이로 한국시리즈 MVP(최우수 선수)에 뽑힌 공신이다. 영구 결번 가능성까지 거론되던 ‘프랜차이즈 스타’. 그런데 이번에 그가 평생 헌신한 팀에서 쫓겨나 떠밀리듯 팀을 옮기거나 싫으면 은퇴해야 할 처지에 내몰렸다. SSG 팬들은 “김성용 단장 물러나라” “오늘부터 야구 보지 않겠다” “트럭 시위를 하겠다” 등 격한 반응이 쏟아졌다.
SSG는 왜 김강민을 보호 선수 35인 명단에 넣지 않았을까. 노장 대신 젊은 선수들부터 지켜야 한다는 의도였을 것이다. 관건은 김강민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 보호 조치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각 구단은 이번 2차 드래프트 때 선수 명단을 공유하면서 은퇴 예정이거나 논의 중인 선수, 군 입대를 앞둔 선수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선수들은 별도 표기했다고 한다. 그러나 SSG는 김강민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고 한다.
다른 팀들에게 ‘데려가고 싶으면 데려가세요’라는 메시지를 준 셈이고, 바꿔 말하면 ‘데려가도 우린 아쉬울 게 없다’고 입장을 정리한 셈이다. 김성용 SSG 단장은 “김강민을 지명할 줄 어떻게 예상했겠느냐”고 변명했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김강민이 새 둥지를 틀게 될 한화에도 동병상련 선수가 있다. 베테랑 투수 정우람(38)이다. 한화는 2차 드래프트가 열리기 전 지난 14일 “정우람이 내년 시즌 플레잉 코치를 맡는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보호 선수에 포함시키지 않아도 그를 지명하지 말라는 뜻을 알린 것이다. SSG도 같은 방법을 쓸 수 있었다. 좁은 프로야구 바닥인데 단장이 타 구단 단장들에게 김강민 상황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SSG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23년 세월은 무시하면 안 된다. 오늘 진짜 춥다”(김광현), “이게 맞는 건가요?”(한유섬) 동료 후배 선수들은 불편한 심경을 숨기지 않고 있다.
SSG는 지난해 한국시리즈 우승을 일궜던 류선규 단장을 우승 직후 갈아치우더니, 올해는 김원형 감독마저 우승한 지 1년만에 경질했다. 야구계에선 “SK 시절 뿌리를 두고 있는 세력을 정리하려 한다”는 소문도 돈다. 김강민 연봉(1억6000만원)이 기여도에 비해 너무 비싸서 그랬다는 분석도 있다. 뭐가 진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23년간 산전수전 다 겪으며 영욕을 함께한 노장 선수에 대한 예우가 너무 야박했다는 것만은 변하지 않는다. 프로 선수인 이상 가치에 따라 평가 받는 건 어쩌면 당연하겠지만 그 가치란 단지 성적과 연봉만으로 환산되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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