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레터] 애도 에세이
“새 책의 첫 페이지들을 넘길 때 따라오는 일종의 미신이 있다. 그 안에 담긴 미지의 것이 나를 바꿀 거라는 믿음. 그것은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서, 정체성이 고정되고 새로운 것에 대한 회의가 강해지면서 희미해지는 환상이다. 하지만 바흐의 가장 위대한 건반 작품의 속표지를 펼치면서 나는 순간적으로 그 달콤하고 오래된 가능성이 떠올랐고 이 신비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새로이 단련되고 정화되고 속죄하여 반대편으로 나올 수 있을 것이라는 익숙한 희망을 느꼈다”
필립 케니콧의 책 ‘피아노로 돌아가다’(위고)에서 읽었습니다. 미국의 미술·건축 평론가인 케니콧은 2013년 퓰리처상 비평 부문 수상자. 어머니의 죽음 후 상실감을 달래기 위해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마스터에 도전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이번 주 신간 중에선 상실과 애도를 주제로 하는 서구 에세이가 유독 많습니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웅진지식하우스)의 저자 패트릭 브링리는 ‘뉴요커’ 직원이었어요. 형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계기로 직장을 그만두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경비원으로 취직합니다. 예술품에서 위안을 얻는 10년간의 ‘애도 여정’을 그렸습니다. “많은 경우 예술은 우리가 세상이 그대로 멈춰 섰으면 하는 순간에서 비롯한다. 너무도 아름답거나, 진실되거나, 장엄하거나, 슬픈 나머지 삶을 계속하면서는 그냥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런 순간 말이다.”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나 아닌 다른 존재가 되길 꿈꿉니다. 그렇지만 애도란 회피를 멈추고 ‘지금 여기’와 ‘나’를 긍정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종료되지요. 또 다른 시작을 위해 미술관을 그만두면서 브링리는 씁니다. “삶은 군말없이 살아가면서 고군분투하고, 성장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것이기도 하다.” 곽아람 Books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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