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프레소] 전근대인 ‘최강욱’의 세계관
단군 이래 가장 축복받은 세대여… 부디 투쟁 끝내고 정책 정치를
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학생 시절을 보낸 세대는 5000년 역사에서 가장 복 많은 사람들이다. 전두환 정권의 과외 금지 조치 덕분에 사교육 지옥을 모르고 중고교를 다녔다. 대학에서 전공 공부 소홀히 했어도 스펙이라는 말 자체가 없던 시절에 대기업 문턱을 수월하게 넘어 취업했다. 피 끓는 청춘이던 학생 시절엔 군사 독재 정권이라는 거악을 때려부수자고 외치는 것만으로 정의감이 충족되었고 해소되었고 자존감이 드높았다.
70년대부터 시작된 고도 압축 성장은 90년대까지 이어졌다. 86세대는 경제 발전으로 중산층이 두껍게 형성되던 이 시기에 사회에 진출했다. 군부 독재 종식을 외치며 민주화 투쟁에 참여했던 이들은 학생 운동을 하지 않았던 이들과 별다른 차이 없이 무사히 중산층으로 진입했다. 80년대 주사파 이론가 민경우가 ‘86세대 민주주의’(인문공간)에서 말한 것처럼 “2000년대라면 잠깐의 실수는 물론 약간의 안주도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왔지만 90년대는 달랐다. 20대의 몇 년을 ‘운동권’으로 보낸 “심각한 지체를 만회할 기회가 폭넓게 주어”진 시기였다.
이 시기에 언론인, 판검사, 변호사, 국회의원 등 엘리트가 된 어제의 용사들 중 지금도 독재라는 거악을 때려 부수는 역할로 정의감을 과시하고 싶은 이들이 민주당 주류 세력이다. ‘윤석열 검찰 독재를 막아낼 우리들’이라는 기괴한 선민 의식과 나르시시즘은 정치뿐만 아니라 문학, 종교, 예술계에서도 현 정권의 낮은 지지율을 이끌어내는 문화적 헤게모니를 휘두른다.
의원직 상실형을 받은 최강욱은 지난 19일 민형배 민주당 의원 북콘서트에 참석한 자리에서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며 “(조지 오웰의 책) 동물농장에도 암컷들이 나와 설치고 이러는 건 잘 없다” 고 말한 후에 부랴부랴 “제가 암컷을 비하하는 말씀은 아니고, 설치는 암컷을 암컷이라고 부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나는 ‘암컷을 비하할 의도가 없다’는 최강욱의 진심을 한 치의 의구심 없이 믿는다. 최강욱은 여성 비하가 아니고 단지 김건희를 비하하고 싶었을 뿐이다. ‘페미니스트 대통령’ 문재인 청와대의 고위 공직자였던 최강욱은 아마도 페미니스트일 것이다. 그에게 있어 김건희 여사는 여성이 아니라 ‘독재자의 배우자’이기에 아무런 갈등 없이 조롱하고 혐오해도 되는 대상이다. 그는 어떤 이념보다 인권이 앞선다는 근대 정신을 습득하지 못한 전근대인일 따름이며, 80년대 당시 대통령 부인의 외모를 비웃는 것이 항거라고 여겼던 유년기적 세계관에 멈춰 있을 뿐이다.
80년대가 지난 지 40년이 돼 가건만 독재에 항거하는 민주화 세력이라는 그때 그 시절,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자긍심이 아직도 메인 스트림이다. 부패 비리 혐의로 매주일 재판 받는 전직 지자체장이 당대표가 되어도, 야당 정치인들이 아무리 독한 노인 비하, 여성 혐오 막말을 해도, ‘검찰 독재를 막는다’는 슬로건 하나면 만사 오케이, 넘어가주는 지지층이 건재하다. 이런 곳에서 홍범도 논란 등으로 이념 공세를 일으켜, ‘독재가 돌아왔다고 우리가 말했어, 안 했어?’라고 야당이 기세등등하도록 빌미를 제공한 건 현 정부의 치명적인 실수였다.
존재하지도 않는 독재라는 허상을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 같은 야당도, 그걸 상대한답시고 독립운동가 전력을 문제 삼은 현 정권도 이제 그만 80년대식 ‘투쟁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저성장과 저출산, 고령화 사회라는 암울한 미래를 앞둔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위한 정책 경쟁으로 승부하는 정치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큰 특혜를 누리고 살았던 부모 세대가 갚아야 할 최소한의 의무이고 지켜야 할 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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