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모어 없는 작가로 살아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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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난 외국인이 이름을 물었다고 가정해 보자.
기자의 한글 이름 그대로(Jiyoon)와 영어식으로 변환한 이름(Jean), 어릴 적 방과후 교실에서 지은 영어 이름(Hillary) 중 무엇을 말해야 할까.
"이민 가정의 자식으로서 나라는 존재 자체가 아슬아슬한 지리적, 문화적 접목"이라며 트라우마를 겪던 저자는 이탈리아어로 쓴 본인의 저서 '내가 있는 곳'을 영어로 번역하면서 작품과 자의식의 약점을 발견하고 변화를 이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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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축복받은 집’으로 2000년 퓰리처상을 받은 저자가 작가이기 이전에 평생을 번역가로서 살며 끊임없이 ‘타협’한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집이다.
영국 런던의, 벵골 출신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다시 미국으로 이주한 저자는 “진정한 모어(母語)를 갖지 못한 언어 고아”로 자랐다. 소설을 쓸 때면 머릿속에서 벵골어로 대화하는 인물들을 영어로 옮기는 고충을 겪었다. 저자는 “영어와 벵골어를 동시에 구사하는 생활환경에서 자랐다는 건 나 자신과 타인에게 두 언어를 끊임없이 번역해 왔다는 의미”라고 했다.
유리된 두 세계를 연결하기 위해 저자는 이탈리아어라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접목한다. 이탈리아어로만 글을 쓰기로 결심한 2015년부터 번역에 관해 사유하고 써내려간 에세이 10편이 실렸다. 저자는 “자유로움을 느끼기 위해 선택한 이탈리아어는 내게 제2의 삶을 안겨줬다”고 말한다.
저자는 번역이 얼마나 정교하고 가치 있는 일인지 항변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중언어를 품고 자란 그의 삶에 번역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곱씹는 재미가 있다. 그가 자기 정체성이 유효함을 스스로 확인하는 과정에선 은근한 경이마저 느낄 수 있다. “이민 가정의 자식으로서 나라는 존재 자체가 아슬아슬한 지리적, 문화적 접목”이라며 트라우마를 겪던 저자는 이탈리아어로 쓴 본인의 저서 ‘내가 있는 곳’을 영어로 번역하면서 작품과 자의식의 약점을 발견하고 변화를 이뤄낸다. 그는 “글쓰기와 번역하기는 더 멀리, 더 깊이 헤엄쳐 가게 해주는 상호 보완적인 두 가지 영법”이라며 “나는 번역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말한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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