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원 뚫은 가짜 환자 실험의 충격
수재나 캐헐런 지음
장호연 옮김
북하우스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인 심리학자 데이비드 로젠한은 1973년 권위 있는 과학학술지 사이언스에 ‘정신병원에서 제정신으로 지내기’라는 논문을 게재했다. 실험 내용도, 결과도 충격적이었다.
실험은 로젠한을 포함한 다섯 남성과 세 여성이 실제로는 아무런 증상도, 문제도 없는데도 ‘환청’이 있다고 거짓 증상을 내세우며 정신병원에서 진단과 입원을 시도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 결과 이들은 미국 5개 주의 12군데 정신병원에서 모두 정신질환 진단을 받고 입원했다. 모든 정신병원이 가짜 환자에 뚫린 셈이다.
미국의 기자로 뇌염을 조현병으로 오진 받아 입원한 경험이 있는 지은이는 2012년 세상을 떠난 로젠한의 미출간 원고를 추적해 이를 바탕으로 연구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한다. 미출간 원고를 살핀 결과 여덟 명의 가짜 환자 가운데 일곱 명이 조현병으로, 한 사람은 조울증으로 진단받아 모두 열두 차례나 입원했다. 연이어 네 차례나 조현병 진단을 받아 입원한 사람도 있었고, 합쳐서 일곱 차례에 걸쳐 총 76일 동안 입원한 경우도 있었다. 여덟 명의 평균 입원 기간은 19일에 이르렀다. 일방적인 환청 주장만으로 모두 오진을 받고 정신병원에 상당 기간 입원한 셈이 됐다.
지은이는 50년 전 진행된 로젠한 실험의 자료를 새롭게 살피며 오늘날 정신의학계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한다. 이를 계기로 미국에선 숱한 정신질환자 수용시설이 폐쇄되고, 전기충격요법·뇌엽절제술 등 효과가 의심되고 인권 차원에서 문제가 많은 과격한 치료법들이 자취를 감췄기 때문이다.
로젠한 연구는 사회적으로도 연쇄 반응을 불렀다. 정신질환이 ‘사회적으로 일탈자를 분류하고 정형화하기 위한 시도일 뿐’이라는 주장에 힘을 실어줬기 때문이다. 일부 학자는 프랑스 철학자·역사학자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를 인용하며 ‘모든 광기는 사회적 구성물이며 애초부터 정신병원 시설은 감금을 지배의 도구로 활용한 증거일 뿐’이라는 논리를 전개했다.
헝가리계 미국 정신과 의사 토마스 사스는 정신질환이 사회적 골칫거리나 도덕적으로 편향된 사람을 통제하기 위한 억압의 도구라는 주장을 폈다. 스코틀랜드의 정신과 의사 R.D 랭은 정신이상이 ‘미친 세상에 대한 온전한 반응’이라는 반문화적 이론을 내세웠다. “광기라고 해서 반드시 ‘고장’은 아니며 오히려 삶의 돌파구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정신의학 치료법의 유효성에 의문을 나타내고 잠재적인 환자 위해를 주장해온 반정신의학(Anti-Psychiatry) 운동가들은 연구 결과에 반색했다.
지은이는 정신질환은 병변이 눈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처럼 다양한 논쟁과 생각의 확대는 필수적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정신의학 종사자들에겐 사회심리학 학습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정신의학의 지평을 더욱 넓히고 유효성을 강화하는 방안이라는 이유에서다. 아울러 마음의 환자를 위한 사회적 돌봄 시스템의 확대도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원제 The Great Pretender: The Undercover Mission That Changed Our Understanding of Madness.
채인택 전 중앙일보 전문기자 tzschaei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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