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수술 다음날도 펑고는 이어졌다
김성근 지음
다산북스
“주머니에 10원 한 장만 있어도 이길 방법이 있다.” “인생이란 ‘어차피’란 단어를 ‘혹시’로 만들고, 그것들을 ‘반드시’로 바꾸는 것이다.” 몇 페이지 넘긴 책에서 이런 글귀를 만나면 “말로는 누가 못해”란 반응이 먼저 나오는 게 사람 마음이다. 내뱉은 말을 실천하지 못하는 이가 많음은 초등생들도 잘 아는 ‘진리’다.
그런데 그 ‘누가’가 한국의 최장수 감독 김성근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야구에 미처 20대에 혈혈단신 한국에 온 재일교포. 갑자기 찾아온 부상에 짧디짧은 전성기로 선수 생활을 마감한 ‘불운의 아이콘’. 감독이 돼서도 우승의 기쁨을 맛보기 위해 25년이란 긴 시간을 가슴앓이하며 기다려야 했던 그는 ‘인간승리’란 말이 딱 들어맞는 표본이다.
이 책은 ‘인간 김성근’이 삶이란 타석에서 평생 지켜온 철학을 한 권으로 정리한 결과물이다. 귀신같은 야구 전략에 ‘야신(野神)’으로 통하는 그이지만, 정작 가장 좋아하는 별명은 ‘잠자리 눈깔’. 야구에서도 인생에서도 ‘지금 이 순간’을 보는 눈이 중요하다. 팟 하고 오는 직감과 깨달음은 스스로를 납득시킬 만큼 훈련하고 연습한 선수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이다. “내 야구는 소질이 아니라 전부 관찰에서 나온 것”이란 설명까지 듣고 나면, 야구장에서 늘 미간을 찌푸리는 표정이라 인상이 나쁘다는 오해까지 받은 그의 속사정이 이해가 된다.
프로야구 팬이라면 응당 품었을 궁금증에도 답을 준다. ‘진지의 대명사’ 김성근은 왜 JTBC ‘최강야구’의 감독직을 수락했을까. 그는 은퇴 선수든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한 선수든 노력으로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는 것과 그런 노력이 인생까지 충분히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82세 현역’ 김성근은 가족에게도 숨기고 세 번의 암수술을 했다. 수술 다음 날에도 어김없이 펑고는 이어졌다. ‘우리에겐 내일이 있다’는 위로와 격려는 ‘내일이 있으니 오늘은 어떻게 되든 괜찮다’는 말이 아니다. ‘잠자리 눈깔’ 김성근의 삶이 보여준 ‘내일’은 ‘오늘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어느새 와 있는 그런 내일’이었다.
김형진 기자 khym.h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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