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임수]150년 기술기업 도시바의 쓸쓸한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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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바 하면 한국의 60, 70대는 1970년대 안방에서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했던 미닫이문 흑백TV를 떠올릴 것이다.
영문 알파벳 로고가 선명한 노트북이 기억난다면 그 이후 세대라 할 수 있다.
도시바가 가진 최초 기록들만 열거해도 왜 '일본의 자존심'으로 불렸는지 알 만하다.
일본 최초의 냉장고, 세탁기, 컬러TV부터 세계 최초의 노트북PC, 낸드플래시 반도체까지 수많은 1호 제품을 양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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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년 역사의 일본 대표 기업 도시바가 다음 달 20일이면 도쿄 증시를 떠난다. 도시바는 22일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대주주 변경과 함께 자진 상장폐지를 확정했다. 1949년 상장해 시가총액 상위 자리를 지켜온 일본 테크산업의 상징이 74년 만에 증시에서 퇴장하는 것이다. 2조 엔(약 18조 원)을 들여 지분 전량을 확보한 현지 사모펀드 컨소시엄은 도시바의 새 주인이 됐다. 컨소시엄은 도시바의 기업 가치를 끌어올린 뒤 재상장하겠다지만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다.
▷도시바는 ‘일본의 에디슨’으로 불리는 다나카 히사시게가 1875년 설립한 다나카제작소에서 출발했다. 재벌기업 미쓰이에 인수돼 시바우라제작소로 바뀌고 일본 최초로 백열전구를 만든 도쿄전기와 합병하면서 도쿄의 도(東), 시바우라의 시바(芝)를 따 도시바가 됐다. 전자회사로 출발했지만 방산·철도·의료기기·중공업까지 손을 뻗치며 80개가 넘는 계열사를 거느리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 재계의 거인이자 150년 기술기업이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한국과 중국 업체의 거센 추격에도 변화에 느렸다. 특히 반도체 사업에선 세계 1위 자리를 지키던 낸드플래시에 추가 투자를 할지 말지 망설이는 사이 기술을 전수해준 삼성전자에 완전히 밀렸다. 2001년 도시바의 합작사업 제안을 거절한 삼성전자는 과감한 투자로 1년 반 만에 도시바를 앞질렀다. 경쟁사들이 미래가 불투명하다며 인수를 포기한 미국 원전회사 웨스팅하우스를 무리하게 사들인 건 결정적 패착이었다. 동일본 대지진 여파로 천문학적 손실을 떠안으면서 인수 11년 만에 웨스팅하우스의 파산을 선언했다.
▷소니, 파나소닉 등이 적자에 허덕일 때도 도시바는 흑자를 이어갔지만 가짜였다. 5년간 2200억 엔의 이익을 부풀린 분식회계가 2015년 들통나 가파르게 몰락의 길을 걸었다. 이 여파로 돈 되는 사업을 모조리 팔아야 했다. 상폐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행동주의 펀드들에서 자금 수혈을 받았지만 경영 정상화는 더 꼬였다. 2017년 발간된 일본 경영서 ‘도시바의 비극’은 경영진의 파벌주의, 연공서열의 경직된 조직 문화, 시장 변화를 읽지 못한 폐쇄적 경영 등을 실패 원인으로 짚었다. 혁신 않고 한눈 팔다가는 어느 기업이라도 도시바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
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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