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경찰 간부의 ‘향나무 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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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음이 들렸다.
승용차 한 대가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으며 인도를 향해 달려왔다.
지금은 서울 한 지구대에서 순찰팀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김 경감은 경찰 생활을 하며 "담벼락을 걷는 듯한 기분"이라고 말했다.
김 경감은 이전 근무지에서 후배 경찰 한 명이 주취자를 조처하다 생긴 일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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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음이 들렸다. 승용차 한 대가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으며 인도를 향해 달려왔다. 차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보였다. 당시 김포공항에서 근무했던 김모 경감은 보행자들을 향해 대피하라고 외치며 몸을 피했다. ‘쾅.’ 고개를 들고 상황을 살폈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길가에 심겨 있던 향나무 한 그루가 인도로 넘어갈 뻔한 차를 막아준 것이다.
나무가 두 동강 날 정도로 큰 충격이었지만 운전자와 보행자 모두 무사했다. 자칫 큰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었던 사고였다. 김 경감은 부러진 향나무의 심지 조각을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부적이라며 지갑에서 심지 조각을 보여줬다.
김 경감은 이전 근무지에서 후배 경찰 한 명이 주취자를 조처하다 생긴 일을 떠올렸다. 추운 겨울 술에 취해 길에 널브러져 있는 한 중년 남성을 부축해 따뜻한 파출소 안으로 데리고 왔다. 남성은 돌연 파출소 안에서 소리를 지르고 집기를 던지기 시작했다. 난동을 멈추려 후배가 제압하는 과정에서 남성이 바닥에 넘어졌다.
그는 경찰이 과잉진압을 했다며 독직폭행으로 후배를 고소하겠다고 했다. 김 경감은 “후배는 파면을 당하고 당시 순찰팀장이었던 나도 징계를 당할 뻔했지만 폐쇄회로(CC)TV 영상으로 당시 상황이 입증돼 다행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내년에 정년인 김 경감은 심장이 빨리 뛰면서 숨을 쉬기 힘든 순간을 간헐적으로 경험한다고 했다.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시작된 증상이다. 심장에 문제가 있나 싶어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지만 의사는 별 이상이 없다고 말할 뿐이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 그는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 정년이 다가올수록 언제든 담벼락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그의 심장을 더 빨리 뛰게 했다.
이태원 참사 이후 공무상과실치사혐의로 입건된 이태원파출소 순찰팀장이 ‘경찰은 초능력자가 아니다’라는 제목으로 올린 글을 읽고서도 그랬다. 그럴 때마다 김 경감은 품에서 꺼낸 향나무 심지에 코를 대고, 숨을 크게 쉬었다.
경찰이 지난 9월 내놓은 조직개편안이 반영된 인사가 다가오고 있다. 신림동 흉기난동 사건 이후엔 특별치안활동 기간이 끝나자마자 지구대·파출소 대규모 감사를 벌였다. 일각에선 이런 경찰의 대응이 이태원 참사 때처럼 또다시 일선에 책임을 전가하는 식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범죄 예방은 일선 경찰이 할 수밖에 없는데 이들이 주눅 들고 마비되면 결국 치안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다.
향나무 심지를 부적 삼아 경찰 생활을 버텨 온 김 경감은 얼마 안 남은 올해를 잘 마무리하고 무탈하게 퇴직하고 싶다며 웃었다. 후련한 듯하면서도 어딘가 씁쓸해 보이는 웃음이었다.
윤준호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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