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희생의 가치

2023. 11. 24.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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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최애 음식 ‘콩나물 무침’
직접 키워 씻고 다듬고 데치고
엄마의 수고로움을 먹고 자라
희생을 돈으로 사는 시대 ‘씁쓸’

오늘 아침 콩나물을 씻었다. 세 번 씻어나온 콩나물이라서 딴 것보다 비싸게 샀는데 콩 껍질이 여러 개 눈에 띄었다. 일일이 골라낼 정성이 부족해 대충 물에 뜬 것만 집어내고 데쳤다. 간혹 껍질이 씹혔다. 부드럽게 생겨서는 결단코 씹어지지 않겠다는 듯 질긴 녀석이 자꾸만 제 존재를 드러냈다. 엄마가 해준 콩나물무침이나 국에는 껍질이 단 하나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생각난다. 콩나물이라면 환장하는 나 때문에 우리 집 안방 윗목에는 겨우내 콩나물시루가 놓여 있었다. 완벽주의자 엄마는 잔뿌리가 생기는 게 싫어 자다가도 몇 번이나 고단한 몸을 일으켜 콩나물에 물을 주었다. 검은 천으로 완벽하게 덮은 덕에 엄마가 길러낸 콩나물은 갓 태어난 병아리처럼 샛노랬다. 콩나물이 적당한 길이로 자라면 엄마는 큰 쟁반에 콩나물 몇 줌을 뽑은 뒤 기나긴 겨울밤, 척추협착증으로 아픈 허리를 수백 번 폈다 굽혔다 하며 다듬었다. 아스파라긴산이 가장 많이 들어있다는 뿌리까지 야무지게 똑 따내면서.

시장까지 팔 킬로, 장날 외에는 시장 갈 일이 없으니 콩나물뿐 아니라 두부도 집에서 만들어 먹었다. 엄마가 막 만들어낸 따끈따끈한 두부를 언 땅을 파 어렵사리 캐낸 달래장에 찍어 먹으면 참으로 일품이었다. 그만큼 맛있는 두부는 두 번 다시 먹지 못했다.
정지아 소설가
엄마를 모시면서 엄마가 나를 먹이기 위해 얼마나 수고로웠는지 비로소 깨달았다. 나이 쉰 다 되어서야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다 손이 많이 가는 것들이다. 어린 열무 겉절이, 어린 상추 겉절이, 무 생채, 생김치. 조그만 게 입은 어찌나 까탈스러운지 남의 집 음식은 잘 먹지 못했다. 남의 집 열무나 상추 겉절이에서는 풋내가 났다. 우리 엄마처럼 꼼꼼하고 정성 들여 채소를 씻지 않았기 때문이다(다른 엄마들이 털털해서는 아니다. 우리 집은 땅도 없는 데다 엄마는 몸이 약해 일을 많이 하지 못했다. 게다가 식구도 단출했다. 식구 대여섯 뒷바라지에 농사일까지 우리 엄마의 서너 배는 너끈히 해내야 했던 다른 집 엄마들은 채소를 대여섯 번 씻을 시간도 힘도 부족했을 것이다). 냉장고도 없던 시절 엄마는 고기도 비린 것도 잘 먹지 못하는 나를 위해 하루 세 끼 나물을 솎고 다듬고 데치고 무쳐야 했다.

나는 엄마의 희생이 담긴 음식을 먹고 자랐다. 나뿐이겠는가? 우리 세대 대부분 부모의 희생을 자양분 삼아 어른으로 성장했다. 지금은 부모조차 그 정도의 희생을 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누군가의 희생을 돈으로 산다. 요즘은 시골 할매들 빼고 집에서 나물 다듬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다듬고 씻고 데치고 무치는 귀찮은 과정을 누구도 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나물이 귀한 세상이 됐다. 비싸지도 않은 주제에 손만 많이 가는 나물은 사 먹는 편이 더 싸게 먹힌다. 사 먹는 자들은 당당하다. 돈을 지불했기 때문이다. 양이 적네, 맛이 없네, 이물질이 나왔네, 자기 돈 주고 사는 것에 대해 우리는 가차 없이 당당하게 요구하고 판단하고 평가한다. 그게 돈의 힘이요, 잔인함이다.

진열대 위에 세련되게 진열된 반찬들은 누군가 하루 온종일 허리 한 번 펴지 못한 채 동동거리며 움직인 결과다. 음식, 특히 한국 음식을 만드는 과정은 참으로 번거롭고 힘겨운 노동을 필요로 한다. 그러니까 그만큼의 돈을 지불하는 것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그들 대부분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한다. 나더러 최저임금 받으면서 음식 만들라고 하면 당장 도망갈 테다. 그들이 받는 돈은 노동강도에 비하면 턱없이 적다. 누군가 내가 만든 음식을 먹고 힘을 낼 거라는, 저 엄마의 마음이 전혀 없다면 최저임금으로 버틸 노동의 강도가 아니다. 헌신과 희생은 돈으로 갚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엄마의 희생을 돈으로 갚을 수 없듯. 부자 자식이라 돈다발을 척척 안겨준다 한들 희생하며 보낸 부모의 청춘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니 그저 감사하고 죄스러워할 일이다.

정지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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