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봄' 수경사령관은 결국 이등병으로 예편됐다
영화 '서울의 봄' 속 사실과 허구… 영화보다 비극적이었던 쿠데타에 맞선 군인들의 삶
[미디어오늘 금준경 기자]
12·12 사태를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이 지난 23일 개봉했다. 신군부가 일으킨 군사 쿠데타를 집중 조명한 이 영화는 사실을 바탕으로 하면서 허구적 요소를 가미했다. 영화 속 사실과 허구를 짚어본다.
*드라마 줄거리와 관련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극 중 사망한 군인은 김오랑 소령과 정선엽 병장
영화는 실존인물의 이름을 바꿔 각색된 내용임을 강조하지만 쿠데타 도중 사망자가 나올 때마다 이름과 계급, 소속을 자막으로 띄우며 '사실'이라는 점을 부각한다. 정해인 배우가 연기한 특전사령관 비서실장 역할의 오진호 소령은 특전사령관을 지키다 전사한 김오랑 소령을 모티브로 했다. 극 중에서 반란군(신군부)의 장교가 그와 '윗집 아랫집'에 사는 형 동생으로 부부 동반 모임을 자주한다는 설정은 실제 반란군으로 적대한 박종규 중령과의 관계와 같다. MBC 드라마 '제5공화국'에선 박종규 중령이 김오랑 소령의 시체를 끌어안고 절규하는 장면이 나온다.
극 중 국방부 B2벙커를 지키다 한 병장이 반란군의 총을 맞고 사망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 정선엽 병장이 사망했다. 극 중에선 집단적 총격전으로 묘사됐는데, 2022년 대통령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정선엽 병장이 지하벙커 초병 근무 도중 총을 넘겨달라는 공수부대(반란군)의 요구를 거절하자 몸싸움이 이어졌고 공수부대원들이 집단적 총격을 가했다. 정선엽 병장은 '순직'처리됐지만 지난해 12월, 사망 43년 만에 '전사자'로 인정 받았다.
전방 사단 빼돌린 노태우, 황당한 '신사협정'
“이번 작전의 성패는 서울로 누가 병력을 먼저 진입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극 중 정우성이 연기한 이태신 수도경비사령관(장태완 사령관)의 대사다. 12월12일 군 부대 이동 상황도 사실에 기반해 구현됐다. 신군부는 정승화 육군참모총장(계엄사령관) 체포와 대통령 재가를 동시에 하려 했으나 실패하면서 군 부대를 투입한다. 극 중에선 전방에 위치해 북한을 견제해야 할 노태건의 9사단 병력과 하나회가 장악하고 있는 2공수여단을 서울로 진입시키는 등 무리한 병력 동원과 이에 맞서기 위한 대응 병력 진입 상황을 보여준다. 실제 신군부가 노태우의 9사단과 박희도의 1공수여단을 무리하게 투입했다.
그러나 신군부만 서울로 병력을 진입시킬 수 있었다. 양측이 신사협정을 맺어 병력을 철수시키기로 하지만 신군부는 이를 지키지 않는다. 이 역시 영화와 실제 사건의 전개가 동일하다. 다만 극 중에선 이태신 수도경비사령관이 신군부의 한강 다리 진입을 저지하기 위해 교통을 마비시키고 혈혈단신으로 막아서는데, 실제 이 같은 작전은 없었다.
행방불명 국방부장관, 어디까지 가담했나
쿠데타 당일 국방장관 노재현과 극 중 국방장관 오국상(김의성)의 행보도 실제와 유사하다. 1994년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노재현 국방장관은 군을 지휘하지 않고 한미연합사로 피신했다가 뒤늦게 국방부에 합류한다. 13일 새벽 3시50분 신군부가 국방부청사 장악 후 지하 상황실 입구에서 발견해 연행한다. 이후 신군부의 요청대로 정승화 총장 체포 결재를 하면서 쿠데타가 성공 국면에 접어들게 된다. 그는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담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영화에선 신군부에 적극 가담한 것으로 묘사해 현실과 차이가 있다. 극 중에선 이태신 수경사령관을 현장에서 직위해제시키며 쿠데타를 성공시키는 것처럼 묘사되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경복궁 앞 대치 장면은 허구
영화의 클라이막스에 해당하는 경복궁 앞 대치 장면은 허구다. 영화에선 수도경비사령부 병력이 출동해 반란군 진압에 나서 대치하고, 이태신 사령관이 산하 포병부대에 경복궁 30경비단 포격을 요청해 병력의 열세를 이겨내려 한다.
이들 장면은 모두 사실이 아니다. 실제 13일 새벽 장태완 수경사령관이 수도경비사령부 병력을 소집해 출동을 준비하지만 신군부가 이미 육군본부 등을 장악한 데다 전차부대를 앞세워 장태완 사령관 사살 명령을 내리면서 출동 못한다. 시사저널이 2006년 공개한 장태완 사령관이 직접 쓴 수기에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사령관 검열에 앞서 전후 대열을 확인하고 있던 비서실장 김수탁 중령이 정신없이 헐레벌떡 뛰어와서 내 귀에다 대고 말했다. '30경비단에 있는 전차대대 본부로부터 사령관님을 사살하라는 무전이 계속 들어오고 있습니다. 빨리 이 자리를 피신하여 사령부로 돌아가셔야겠습니다.' (중략) '이제 수도경비사령부는 내 부대가 아니고, 내 부하들이 아니다. 취임한 지 불과 24일 만에 나의 부대라고 믿었던 내 생각부터가 착각이었다'고 마음 속으로 느끼면서 비서실장 건의대로 다시 사무실로 올라갔다. 그때가 12월 13일 오전 1시31분경이었다.”
영화보다 더 비참했던 쿠데타에 맞선 군인들의 삶
영화는 쿠데타에 맞선 군인들의 비참한 결말을 그린다. 이성민 배우가 연기한 정상호 총장(정승화 총장)은 보안사에 체포돼 고문을 받은 정황이 나오고 이태신 수경사령관도 체포된다. 부하로부터 총을 맞아 쓰러진 공수혁 특전사령관(정병주 특전사령관)은 병원에서 허망한 표정을 짓는다.
현실은 더욱 비참했다. 1993년 민주당 12·12쿠데타 진상조사위가 공개한 정승화 총장의 증언은 다음과 같다. “'아직도 총장인 줄 아나'”는 등 폭언을 하면서 강제로 옷을 벗긴 후 물고문, 통닭구이 고문까지 가하는 것을 보고 단순한 오해가 아니라 의도적인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수치심에서 '차라리 예편이나 시켜놓고 이런 모욕을 줘라'고 호통쳤더니 '이미 전역 조치됐으니 염려마라'고 했다.”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 정병주 특전사령관은 모두 강제 예편됐다. 정승화 총장은 18계급이나 강등된 이등병으로 예편당했고, 징역 10년형을 선고 받는다.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끝까지 노력했던 장태완 사령관도 이등병으로 강등돼 강제 예편됐다. 그는 '역적'이 됐고 실의에 빠진 그의 부친은 1980년 4월 세상을 떠났다. 2년 후엔 서울대에 합격한 외아들이 할아버지 산소 근처에서 시신으로 발견된다. 2010년 장태완 사령관은 별세했고 2년 후 그의 아내도 투신 자살했다.
정병주 사령관은 강제예편 후 우울증이 생겼고 노태우 전 대통령 당선 이듬해인 1989년 변사체로 발견된다. 경찰은 자살로 결론냈다. 1989년 3월6일 중앙일보는 고인이 유서를 남기지 않고 신군부 지지 인사들로부터 협박을 받은 사실 등을 전하며 “정확한 사인 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출세가도를 달린 신군부 인사들
영화에선 마지막 장면에 신군부 인사들의 단체사진을 띄우고 한 명씩 향후 이력을 나열하며 신군부가 출세 가도에 달린 점을 강조한다. 실제 이름이 아닌 가명을 넣었지만 이들의 향후 이력은 실제와 같다. 쿠데타를 일으키고 광주를 진압한 신군부 인사들은 군과 정치권 요직을 독차지했다.
윤성민, 정호용, 최세창 등은 국방부 장관이 된다. 이희성, 황영시, 정호용, 박희도, 김진영 등은 육군참모총장을 내리 맡는다. 특전사령관(정호용, 박희도, 최웅), 수도경비사령관(노태우, 최세창, 고명승, 김진영), 보안사령관(전두환, 박준병, 고명승) 등 군 요직을 신군부가 독식한다. 특히 광주진압을 주도한 정호용 특전사령관은 내무부 장관, 국방부장관에 이어 국회의원을 지낸다. 이희성 계엄사령관은 교통부 장관, 주택공사이사장, 국토통일원 고문 등을 지냈다. 전두환과 노태우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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