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럽이든 공공이든 ‘독서 열풍’ 계속 불어다오[책과 책 사이]
때아닌 ‘쇼펜하우어’ 열풍이다. 교보문고 이번주 종합 베스트셀러 1위는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였다. 예스24, 알라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쇼펜하우어’ 책은 연말연초 1등을 차지하던 트렌드 책을 눌렀으며, 부자가 되려는 마음을 가지라는 가르침을 담은 책도 눌렀다. 판다 푸바오에 관한 책도 쇼펜하우어를 당해내진 못했다. 서점가의 베스트셀러 10위 내에는 또 다른 쇼펜하우어 책도 보인다.
어디서 비롯된 걸까. 지난 9일 유튜버 자청은 쇼펜하우어의 생각을 정리하면서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를 추천했다. 이튿날 MBC 예능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한 배우 하석진의 일상에 이 책이 등장했다. ‘뇌섹남’ 하석진은 라면 맛집이 문을 열길 기다리는 잠깐 사이 차 안에서 쇼펜하우어 책을 읽는다. <나 혼자 산다> 패널인 전현무도 요새 쇼펜하우어에 빠졌다며 좋아한다. 9~10일을 기점으로 이 책의 판매는 일주일 전보다 30배가량 증가했다.
‘월 3000만원’을 버는 행복론을 설파하는 유튜버가 추천하고 예능 프로에 슬쩍 내비쳤다고 판매량이 급증하다니, 땅속에 묻힌 쇼펜하우어가 좋아할지 아닐지 가늠이 안 된다. ‘셀럽’의 힘에 도리질을 하던 차에 23일 올해 세종도서가 선정됐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은 1만2792종 중에서 940종의 추천도서를 선정했다. 딱 7.3%다. 출판사들이 웃고 울었다. 세종도서에 뽑히면 진흥원이 추천도서를 800만원 이내로 구입한 뒤 도서관 등에 보급한다. 책값이 대략 1만~2만원이라면 400~500권이 더 팔리는 셈이다. 셀럽의 힘에 기대기 어려운 출판사들이 공공의 힘을 빌려야 그나마 책을 팔고 업을 유지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쯤 되면 셀럽이든 공공이든 무엇에 기대든 책의 수명이 이어지기만 바라게 된다.
임지선 기자 vis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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