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나의 상호작용을 써내는 글솜씨[신새벽의 문체 탐구]

기자 2023. 11. 24. 22:1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지 뷰티
클로이 쿠퍼 존스 지음|안진이 옮김
한겨레출판|496쪽

“좋은 소설은 불완전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 무지를 숨기지 않고 행하는 탐구의 기록처럼 보인다.” 출판편집자 김영준의 소설론이다. 나는 이 말을 책 자체에도 적용해본다. “좋은 책은 불완전한 저자가 무지를 숨기지 않고 변화해나간 기록이다.” 약간 고쳐 썼다.

이즈음 책을 읽거나 편집할 때 좋은 책이 나오려면 글쓴이가 변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모든 것을 아는 자가 세계를 내려다보는 책은 안 된다. 앎이란 지식이 전부가 아니니까. 무한한 지식에 빠져드는 책보다 세계를 바꾸려고 나서는 책이 좋다. 문제는 세계를 바꾸기에 앞서 자기 자신을 바꾸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좋은 책은 잘 없다.

최근 번역 출간된 <이지 뷰티>는 추천사가 책을 읽을 완벽한 동기를 제공한다. “삶을 사랑함에도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 바깥에서 관찰자로만 남기를 시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시기를 권하고 싶다.” 작가 김원영의 글은 삶을 관조하는 이방인들에게 바로 말을 걸며, 이 책의 저자는 어떻게 변화했을지 궁금함을 불러일으킨다.

싱어송라이터 ‘미츠키’의 추천사 또한 끌어들인다.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는 모든 이에게 추천하고 싶다. 적어도 나는 그런 사람 중 하나다.”

클로이 쿠퍼 존스는 철학 교수이자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다. 뉴욕 브루클린에서 남편과 아이와 살면서 ‘GQ’ ‘뉴욕 매거진’ 등에 기사를 기고한다. 선천성 희귀질환인 천골무형성증으로 다리의 무릎 아래와 두 발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았다. 그는 살면서 들어온 차별적인 말들과 그로부터 분리되어 내면으로 들어가는 ‘중립의 방’에 대해 쓴다. 아들 울프강을 가지면서 엄마가 된 그는 중립의 방에서 나와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가게 된다.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두 번이나 오른 이 책은 회고록이다. 회고록이라고 하면 정치인의 자서전 같은 게 떠오르지만 영미 출판계에서 회고록이란 특별한 경험이 있는 누구나 쓰는 것이다. 온갖 사람들이 쓰고 널리 읽힌다. 특히 미국적인 장르로 ‘이렇게까지 사생활을 밝히다니’ 싶을 정도다. <이지 뷰티> 또한 자기 노출의 재미와 부담스러움 사이에서 진실한 순간이 빛난다.

남들보다 키가 작고 비틀거리며 걷는 존스에게 정말 많은 행인이 욕하고 침해하고 낙인을 찍는다. 그는 자신을 보자마자 아름답지 않다고 판단하는 사람들로부터 물러나 세상을 관조하고만 싶어 한다. 지적이고 세상을 이론화하고 늘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꿈꾸는 삶. 이런 관조적 태도의 원천은 아빠다. 특이하고 멋진 아빠의 그늘 속에 있는 이야기. 아니나 다를까 같은 이야기를 쓴 베스트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룰루 밀러도 추천사를 보태고 있다.

철학책만 읽는 사람이 어떻게 삶에 뛰어들게 될까? 저자는 비행기를 타고 로마로 캄보디아로 마이애미로 여행한다. 비욘세 콘서트에 가고, 코모 호수를 산책하고, 페더러의 테니스 경기를 직관한다. 과거의 고통을 복기하는 데서 벗어나 현재에서 느끼는 단순한 아름다움이 존스를 바꾼다.

그가 본 모든 것이 아름다웠겠지만 진정 빛나는 것은 세상과 나의 상호작용을 써내는 글솜씨다. 존스가 평소 지향하던 어렵고 복잡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쉬운 아름다움’의 화신인 비욘세를 보러 간 동기는 바로 자신을 난쟁이라 부르며 폭언했던 샤론이라는 학생의 추천 때문이었다. 왜 그의 추천을 받아들였을까? 두 사람의 면담 장면을 보자.

“샤론은 내가 그녀와 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나누지 않으려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고, 그래서 내 곁에 앉아서 나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면서 혹시 내가 그 거절을 철회하고 대화에 참여할지를 알아보려고 했다. 시간이 흐르자 우리 사이에 조용한 어떤 감정이 자라났지만, 샤론은 그 순간을 서둘러 통과하려 하지 않았다. 나는 그걸 진정한 호의가 담긴 행동으로 받아들였다.”

선을 넘고 들어온 타인과의 미묘하고 결정적인 상호작용. 회고록의 성패는 이렇게 작은 변화의 순간을 포착하는 데 달려 있다. 자전적 글쓰기의 지침서인 <스스로의 회고록>에서 ‘작은 이야기’를 써야 한다고 강조하듯 말이다. 존스는 작은 대화들을 쓰면서 과거의 분노와 원망으로부터 해방된다. 해방의 시작은 대화를 이어가겠다는 선택이었다.

<이지 뷰티>는 자기 이야기로 미학 이론을 설명하는 좋은 책이다. 미국의 회고록은 한국에 건너와 ‘인문 에세이’로 출간되었다. 다만 한국에서는 잘 팔리지 않고 있다. 나는 노파심에 휩싸여 그 원인을 찾게 된다. 존스는 완벽한 남편과 현명한 엄마의 사랑 속에서 아빠로부터 독립했다. 이 ‘나의 해방일지’는 한국 독자에게 너무 먼 이야기일까? 저자의 변화를 어떻게 독자의 변화로 연결해야 하나? 이런 작은 책과 대화를 이어갈 방법이 별도의 탐구 주제로 남는다.

신새벽 민음사 편집자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