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와 슬픔의 4일…가자 주민들 “잠시나마 영혼 회복할 시간”
라파국경서 구호물자 반입 시작
폐허된 집·가족 주검 보며 ‘절망’
금지구역 북부 가려다 총에 맞기도
이스라엘에선 피랍 가족 맞이 분주
“석방 과정은 우리에게 큰 희망 줘”
48일간 세차게 몰아치던 폭격이 잦아든 24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는 잠시나마 되찾은 평화 속에서 안도와 슬픔이 교차했다. 단 하루라도 굉음 없이 잠을 청하고 싶었다는 주민들은 기쁨을 표하면서도, 폐허가 된 집과 수습도 못한 가족의 시신을 보며 절망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에 납치된 인질들을 안전하게 데려오기 위해 철저한 준비에 돌입했다.
가자지구 주민 칼레드 로즈는 이날 알자지라에 “계속되는 폭격에 지쳤다”면서 “나흘간의 휴전으로 우리는 영혼을 조금이라도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잠을 자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스라엘의 폭격을 피해 남부 칸유니스의 유엔 학교와 병원에 머물던 주민들은 공습이 멈추자 당나귀가 끄는 수레 등을 타고 집으로 향했다. 한 남성은 “집이 파괴돼 있더라도 그곳에서 죽고 싶다”고 말했다. 다만 이스라엘이 휴전 기간에도 남부에서 북부로의 이동은 금지해 북부 주민들은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 가자시티의 집에서 쫓겨난 무사타프 알자말란은 “일시 휴전 소식을 접하고 감정이 복잡했다”며 “당장 집으로 갈 수 없어 슬프다”고 밝혔다.
전쟁 중 가족과 친지를 잃은 이들에게 짧은 휴전 기간은 애도와 절망의 시간이 되고 있다. 일부 북부 주민들은 숨진 가족과 친지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려다가 이를 저지하는 이스라엘군의 총에 맞아 2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쳤다고 알자지라가 전했다. 35세 지아드는 가디언에 “무너진 집은 마치 거대한 레고 조각 더미처럼 보인다”며 “저 집에 살던 사람은 살았을까, 아니면 죽었을까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날 가자지구에는 구호물자도 반입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봉쇄하고 식량과 식수, 의약품, 연료의 반입을 막은 지 46일 만이다.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휴전이 개시된 이날 하루 연료 및 구호품을 실은 트럭 230대가 라파 국경검문소를 통해 가자지구에 투입될 예정이다. 이집트 당국은 “하마스에 군사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이유로 반입이 금지됐던 디젤유가 이날부터 하루 14만ℓ씩 가자지구에 전달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세계식량계획(WFP)에 따르면 오는 28일까지 1300t 규모의 식량이 가자지구에 지원될 예정이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에 납치됐던 사람들을 맞을 준비로 분주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인질 가족당 또는 어린이 인질 1명당 전담 군인 1명을 배치한다. 부모 중 한쪽 또는 모두를 잃은 어린이가 “엄마는 어디 있어요”라고 물으면 알더라도 모르는 척하라는 구체적인 행동 주문도 떨어졌다. 첫날 송환자 모두 여성과 아동이라는 점을 고려해 여성 의사와 간호사를 대거 투입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날 1차 석방 명단에 포함된 13인 가족 외의 피랍자 가족에게 “명단에 들지 못했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아버지가 하마스에 붙잡힌 리오르 페리는 BBC와 인터뷰하면서 “아버지가 오늘 나오든, 내일 나오든 상관없다. 인질 석방 모든 과정은 우리에게 큰 희망을 준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송환되는 인질의 입단속 준비에도 나섰다. 이스라엘 매체 채널12는 전날 “이스라엘 정부와 군이 석방된 인질들의 메시지를 통제하자고 의견을 조율했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24일 풀려난 이스라엘인 요체베드 리프시츠(85)가 당시 기자회견에서 “하마스는 인질에게 식량을 제공하고, 의사의 진료도 받게 해줬다”는 등 하마스에 우호적인 발언을 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알자지라는 “기자회견을 주선했던 병원 대변인은 최근 사임했다”고 전했다. 이에 이스라엘로 돌아온 인질들이 언론에 제한적으로 노출되거나 정부 선전에 활용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스라엘 감옥에 갇혔다가 이번 합의로 풀려날 가능성이 생긴 팔레스타인 수감자 가족들도 간절함을 드러냈다. 이스라엘이 앞서 발표한 석방 후보 300명에 여동생이 포함됐다는 니스린 알티티는 “행복하지만 불안하다”며 “동생이 돌아오면 내 인생이 크게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사회는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일시 휴전이 합의대로 이뤄지자 환영의 메시지를 내놨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휴전을 끌어낸 카타르와 이집트 등 관련 국가에 감사함을 표한다”며 “인질이 모두 무사히 송환될 때까지 지원을 멈추지 않겠다”고 밝혔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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