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잘 나갈때 한국은 뒤처져…‘인재 전쟁’ 발목잡는 규제 또 규제
녹지 확장 日최고 마천루 개발
글로벌 핵심 인재 끌어들이려
고층빌딩에 2천억 고가주택
병원·학교까지 다 갖춰 화제
용산·세운상가 등 국내도 추진
국토계획법 등 관련 법개정 필요
‘옥상옥’ 문화재 규제도 걸림돌
새로운 명소는 도쿄의 손꼽히는 부촌 미나토구에 속한다. 대사관과 호텔 등이 밀집해 있고 주변에 값비싼 음식점도 즐비하다. 이곳 내부는 사무실과 주거 공간인 레지던스, 상업용 시설 등으로 구성된다. 사무실 대지 면적은 21만4500㎡로 약 2만명이 근무할 수 있다. 전 세계에서 핵심 인재들을 끌어모을 야심이 엿보인다. 특히 이곳은 영국계 국제학교인 브리티시스쿨인도쿄(BSIT)와 게이오대학병원이 함께 들어섰다. 모리는 지난달 완공한 도라노몬힐스에도 병원을 유치했지만 이번처럼 대학병원이 대규모로 입점한 건 처음이다. 또 BSIT는 유치원부터 6학년까지 초등학교 중심으로 운영되는데 지난 여름 개교해 이미 정원이 꽉 찼다.
현재 1400여 개 레지던스 중 절반은 매각하고 나머지 절반은 모리가 소유해 임대용으로 운영한다. 3개 건물 중에 레지던스 전용 A·B동이 있고 상업시설과 섞인 가든플라자에도 레지던스 31실이 있다. 핵심은 330m 높이의 일본 최고 마천루인 모리JP타워의 54~64층에 들어선 ‘아만 레지던스 도쿄’다.
이곳은 스위스에 본사를 둔 럭셔리 리조트 호텔 체인인 아만이 처음 시작한 주거공간이다. 최상층 펜트하우스 3채 가운데 1채인 1500㎡ 레지던스가 200억엔 이상에 팔렸다는 소식에 화제가 됐다.
또 레지던스 B동의 200㎡ 규모 레지던스 시세는 20억엔선으로 알려졌다. 주변 고급 아파트 시세의 3배가 넘는 수준이다. 공용 서비스도 특급이다. 24시간 발레 서비스는 기본이고 일본 내 최대인 4000㎡ 규모 헬스장과 수영장을 갖춘 웰니스 시설도 갖췄다. 대형 평수에는 전용 엘리베이터가 있고 프라이빗 다이닝룸도 갖춰져 있다.
이뿐 아니다. 지상 상업 공간에는 에르메스·구찌·페라가모 등 명품 브랜드가 개점을 준비 중이다. 지하 전체를 지하로 연결한 상업시설도 훌륭하다. 일본에 처음 선보이는 식당도 많고 모리JP타워와 인접한 타워 플라자는 작은 백화점을 연상시킬 정도로 쇼핑 시설과 서점 등이 꽉 들어찼다. 곳곳에 예술로 가득 찼다. 세계적 미디어아트그룹 ‘팀랩 보더리스’ 전시장이 이곳에 둥지를 튼다. 또 지하 1층 갤러리에서는 물과 빛을 활용한 덴마크 출신 설치미술가 올라퍼 엘리아슨 전시를 내년 3월 말까지 진행한다. 만화 잡지 전문 출판사 슈에이사가 만든 ‘원피스:재생’ 전시회도 이곳에서 열리니 지루할 틈이 없다.
이곳을 개발한 모리빌딩컴퍼니는 이미 인근 롯폰기힐스와 도라노몬힐스를 성공적으로 재개발했고 오모테산도힐스와 긴자식스도 만들었다. 일본은 토지주의 3분의2만 동의하면 재개발이 가능하지만 모리는 300여 명의 토지주를 일대일로 만나 설득해 개발했다. 결국 1989년 시작한 재개발 사업은 2017년에야 도시 계획이 확정됐고 6년간 건설사업으로 공식 완공했다.
서울에서도 이 같은 입체·복합개발 계획이 속속 세워지고 있다. 용산정비창 부지를 국제업무지구로 개발하는 계획과 종로구 세운상가 일대 재개발 계획이 대표적이다. 서울시는 다음달 용산국제업무지구에 대한 구체적인 개발 계획을 발표할 방침이다.
용산국제업무지구 면적은 약 49만3000㎡로 아자부다이힐스 6개는 들어설 정도로 넓다. 서울시는 이곳의 모든 획지를 ‘복합용지’로 계획하고 용적률도 1500%까지 높여줄 계획이다. 업무·주거·상업·교육·판매시설을 모두 갖춘 초고층 빌딩 도시를 만들겠다는 취지다. 지하·지상·공중에 각각 보행로를 만드는 3중 입체 도시가 목표다. 글로벌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외국인 친화적인 시설도 조성한다.
박희윤 HDC현대산업개발 전무는 “국제업무지구가 되려면 외국인 1명만 데려와선 안 된다. 가족들이 정착해서 살만한 환경 자체를 만들어야 하니 교육과 의료, 주거가 뒷받침돼야 한다”며 “아자부다이힐스가 학교·병원을 품은 복합개발을 한 이유”라고 말했다.
서울시도 용산국제업무지구에 국제학교와 병원시설을 짓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하지만 이는 구상일 뿐 실제 구현하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현행법상 건물 안에 학교를 짓는 게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그나마 최근 서울시교육청이 건물 저층부에 분교와 같은 도시형 캠퍼스를 짓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분교에 한정되고 법(대도시 지역의 도시형캠퍼스 설립·운영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1월 기존 규제에 적용받지 않고 자유롭게 개발 밑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도시혁신 구역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엔 용산국제업무지구가 도시혁신 구역으로 지정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됐다. 하지만 이 역시 국토계획법 개정이 필요하다. 현재 해당 법안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1기 신도시 특별법 등 현안 법안이 워낙 많아 해당 법안이 언제 심사될지도 미지수다. 내년 4월 국회의원 선거 전까지 통과되지 않으면 또다시 기약이 없다.
세운상가 일대 재개발(세운재정비촉진지구)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종묘가 가깝다는 이유로 문화재 규제를 받기 때문이다. 문화재보호법 등에 따르면 종묘에서 100m 안은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이라 높이 규제를 받는다. 세운상가 일대는 100m 바깥이라 규제 지역이 아님에도 문화재청 판단 때문에 규제가 확대 적용되는 실정이다. 세운2구역은 최고 높이 55m를 넘는 건물을 지으려면 문화재청 심의를 받아야 한다. 세운 재개발이 본격화하더라도 일본 도쿄 도심에 들어서는 랜드마크 같은 건물은 탄생하기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한 부동산 시행사 대표는 “한국의 도시 개발 규제는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런 점에서 서울과 도쿄의 도시 경쟁력 차이가 생기는 듯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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