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삶
요즘 강의하러 가면 담당자가 묻는다. 오늘은 어떤 차를 타고 오셨나요, 성공하셨을까요. 내가 탁송을 타고 움직이는 것을 알아서다. 나는 타인의 차를 옮겨주면서 이동하는 때가 많다. 예를 들면, 오늘은 오후 2시에 인천에서 강의가 있는데, 나는 강릉에서 인천 송도의 유원지까지 중고차를 옮겨다 주고 10만원을 받고 근처의 학교로 갈 예정이다. 이렇게 움직인 지는 반년 정도 되었다.
나의 아내는 종종 말한다.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고. KTX를 타면 그 시간에 잠도 잘 수 있고 밀린 일도 할 수 있을 텐데 왜 그러느냐고. 나도 그것을 안다. 그러나 내가 옳다고 여기는 삶의 방식이 있다. 불과 몇년 전까지 나는 맥도날드에서 월 80시간을 일하고 50만원 남짓을 벌었다. 그렇지 않은 시간엔 대학에서 시간강의를 하거나 연구실에서 논문을 썼다. 그때의 나에게 돈을 내고 기차를 탈지 돈을 받고 운전을 할지 물으면 숨도 쉬지 않고 답했을 것이다. 돈을 받고 운전하겠다고. 지금은 그때보다는 형편이 나아졌으나, 어려울 때의 삶의 태도라는 것이 처지나 상황이 조금 바뀌었다고 해서 함께 바뀌면 안 된다. 좋은 차를 타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움직일 수도 있겠으나 그러한 삶에서는 무엇도 만들어지지 않을 것만 같다. 정해진 이야기를 채우며 살아가기보다는 스스로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살아가고프다.
얼마 전엔 이런 일이 있었다. 아내가 차가 한 대 필요하다고 말했다. 내가 지방으로 일하러 가면 종종 차를 가져가는데 그러면 자신이 강릉에서 차 없이 아이 둘을 돌보기가 힘들다는 것이었다. 경차를 한 대 사기 위해 중고차 가격을 알아보니 생각보다 많이 비쌌다. 신차급 경차는 1000만원, 탈 만해 보이는 것은 500만원, 그저 그런 것도 다 200만원이 넘었다. 아내는 그러면 됐다고 사지 않겠다고 했다. 그에게도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삶의 기준이 있을 것이다. 며칠 뒤 서울로 강의하러 갈 일이 있어서 수도권으로 가는 탁송콜을 잡았다. 출발지는 강릉이고 도착지는 수원의 폐차장이었다. 탁송기사는 중고차뿐 아니라 신차나 폐차와 같은 차의 처음과 마지막을 함께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운전하다 보니 버리기엔 아까울 만큼 잘 관리된 차였다. 게다가 아내가 원했던 경차. 차의 주인에게 전화해서 물었다. 차가 참 좋은데 버리는 이유가 있는지. 그는 스틱 차량을 강릉에서 중고로 팔기도 어렵고 해서 아쉽지만 35만원을 받고 폐차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에게 혹시 내가 인수해도 될지 물으니 그도 좋겠다고 했다. 아끼던 차를 버리는 것보다는 같은 강릉 사람에게 파는 게 자신도 좋다고. 그에게 돈을 보내고 집으로 갔다. 아내에게는 이 차 당신 거야, 라고 말하며 차키를 주었다. 그는 스틱 차량을 10년 넘게 몰던 사람이었다. 얼마나 비싸게 주고 사온 것이냐고 해서 35만원이라고 하니 잘했다고, 그간 받은 선물 중 가장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요즘 아내는 전화하면 밖에 조금 더 있는 듯하다. 그간 어디 가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니라 갈 수 없었던 모양이다. 이 차는 동네의 좁은 골목길을 갈 수 있고 어디든 주차할 수 있다고 한다. 얼마 전엔 초등학생 아이들이 우리 차는 왜 이렇게 작냐고 불평해서 한마디 하려 하자, 그는 이 차가 너희 휴대폰보다 싼 것이라고 하며 웃었다. 아이들은 그런 차가 어디 있느냐며 거짓말 말라고 함께 웃는다. 그래, 이러한 이야기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 이러한 삶의 방식에 동의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닮아가는 아이들을 보는 것. 괜찮은 삶이 아닌가.
좋은 차는 앞으로도 필요 없을 듯하다. 일과 삶이라는 것은, 그리고 돌봄과 교육이라는 것은 이처럼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이야기로도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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