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은의 미술과 시선] 명화의 수난과 인류사
이 그림은 언제까지 우리의 눈길을 잡아끌까? 바로크 시대 벨라스케스가 그린 비너스의 모습이 고혹적인 자태로 욕망을 자극한다. 다만 화가의 의도는 시선이 단순히 거기 머무르게 하지만은 않았다. 화면 속에 거울을 두어 투영의 공간, 탐구할 자리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림을 보는 시선의 방향은 거울로 이동하고 반사되어 이곳을 비춘다. 응시하던 자가 역으로 입장을 관찰당하는 쪽에 놓이게 된다.
한때는 금기를 어기고 그려져 한 스페인 귀족이 몰래 소장하던 작품인데, 산업혁명 즈음 국경을 넘어 영국의 저택에 걸렸다가 1906년부터는 내셔널 갤러리에서 대중에게 공개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1914년, 어느 여성이 이 그림을 난도질한 사건이 있었다. 여성 참정권 운동가였던 그녀의 행위는 명백한 반달리즘이었지만, 그로부터 4년 뒤 영국이 여성의 정치 참여를 인정하기까지 얼마나 다양한 역경이 있었는가를 예증하는 일화라고도 하겠다.
복원을 거쳐 전시됐던 이 회화는 이달 초 환경운동가들에게 액자를 훼손당해 또다시 주목을 받았다. 에코 테러리스트란 오욕과 법적 처분을 감수하며 그 운동가들이 비판한 것은 기업의 유전 개발 사업권을 허가한 최근 영국 정부의 조치였다. 이전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몇몇 국립미술관에서 소란을 피웠던 기후활동가들은 위기로 치닫는 인류를 보호하는 데 당장 무엇이 더 중요하겠느냐고 외치며, 동원할 수 있는 모든 항의 수단 끝에 이런 극단적 방법을 취하게 됐다고 말한다. 이들은 목적대로 이목은 끌었지만 여론의 회의적인 질타도 받고 있다.
현재 유럽에서 일고 있는 이런 소동과 난제는 우리라고 예외가 될 사정이 아니다. 얼마 전 우리 정부가 일회용품 사용 규제를 철회하며 국민에게 혼란을 준 것도 사실상 정책의 빈약한 의지를 입증한 셈이 되었으니 더 그렇다. 국제사회의 시선은 물론 우리에게도 와 있다. 동시대가 비쳐보는 거울에 우리는 어떤 얼굴인가.
오정은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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