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징역 선고 받은 정유정, 반성문·정신질환 감형 요청 실패
"불우한 성장 환경 범행에 영향 미친 것으로 보여"
[부산=뉴시스]권태완 기자 = 부산에서 또래 여성을 무참히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유기한 정유정이 1심 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가운데 재판부가 형량을 결정한 이유 등에 대해 관심이 쏠린다.
부산지법 형사6부(부장판사 김태업)는 살인 및 사체손괴·유기, 절도 등의 혐의로 기소된 정유정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으며,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30년도 명령했다.
◇정유정, 심신미약 주장·반성문 제출 무용지물
정유정 측은 상세불명의 양극성 정동장애와 우울에피소드라는 질환을 앓고 있는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정유정 측은 지난 8월부터 정신과 약을 처방받아 복용했고, 지난달 18일 정신의학과에서 양극성 정동장애와 우을에피소드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 사건 범행 당시 정유정이 정신질환 등으로 인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 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정유정이 받은 진단은 최종판단이 아닌 피고인이 호소하는 증상에 기초한 임상적 추정 결과"라면서 "범행 당시에 정유정이 '상세불명의 양극성 정동장애와 우울 에피소드' 증상이 있었다고 볼 자료를 찾을 수 없을뿐더러, 그런 증상들로 곧바로 심신미약 상태가 발생되는지 여부도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또 "정유정이 이 사건 범행의 대상을 물색하고 범행도구를 준비했으며,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한 동선까지 고려하는 등의 모습은 사물을 변별한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의 사람이 보일 수 있는 사고와 행동들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아울러 정유정은 21차례에 걸쳐 재판부에 반성문을 제출했다. 반성문에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새할머니로부터 당한 가정폭력과 계속된 대학 진학과 취업 실패 등 자신의 불행한 처지를 알아달라는 내용 등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반성문에는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사죄한다는 말도 빼놓지 않고 있다. 하지만 체포 이후 법정에 이르기까지 정유정이 보인 모습은 마치 미리 대비를 해놓은 것처럼 너무나 작위적이고, 전략적이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정유정은 법정에서 피해자를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이유에 대해 '유가족들이 보고 극단적인 선택을 할까 봐'라고 말하거나, 피해자를 살해한 이유에 대해 '환생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고 말하는 등 모순되고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으로 일관했다.
재판부는 "정유정이 이 사건 판결이 선고되는 지금, 이 순간까지 피해자와 유족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고, 자신의 범행을 뉘우칠 준비가 돼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오락가락 진술…재판부가 본 정유정의 범행 동기는?
정유정은 수사 초기부터 법정에 이르기까지 범행 동기에 대해 수차례 번복했다.
수사 초기에는 30대 여성이 피해자를 흉기로 찔렀다고 부인하거나 피해자와 말다툼을 벌이다가 우발적으로 살해했다는 등 진술을 수차례 번복해왔다.
재판부는 정유정이 제6회 피의자 심문에서 아버지와 면담 이후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처음으로 밝혔던 범행 동기에 주목했다.
이전까지는 피해자와 말다툼을 벌이다가 우발적으로 살해했다고 주장했지만, 아버지와의 면담 이후 정유정은 "살인 범죄에 관심이 많았고, 그걸 보고 '내가 진짜 사람을 죽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실제 행동에 옮긴 것이다. 살인 충동을 억제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정유정은 과거 할아버지와 아버지, 새할머니 등으로부터 당한 가정폭력과 대학진학 및 취업 실패 등으로 가족에 대한 원망과 자신의 처지에 대한 분노를 쌓아왔다. 또 자신의 삶을 외면하고, 타인의 삶에 대한 동경과 소유의 욕구 등을 내면에 쌓았다고 재판부는 보고 있다.
재판부는 "정유정이 이같은 부정적인 감정과 욕구가 그동안 탐닉해 오던 살인, 사체유기 등의 범죄를 실현해 보고 싶은 욕구로 변환돼 타인의 생명을 단지 자신의 욕구 실현의 도구로 삼아 이 사건 범행을 저지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사형은 피한 정유정…왜?
검찰은 앞서 지난 6일 열린 결심 공판에서 정유정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이에 대한 재판부의 최종 판단은 '무기징역'이었다.
사형 선고 기준에 대해 재판부는 "사형은 인간의 생명 자체를 박탈하는 냉엄한 궁극의 형벌로, 법 제도가 내릴 수 있는 극히 예외적인 형벌이다. 사형의 선고는 범행에 대한 책임의 정도와 형벌의 목적에 비춰 그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누구라도 인정할 만한 객관적인 사정이 분명히 있는 경우에만 허용되야 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정우정의 불우한 성장환경이 범죄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순 없지만 비정상적인 성격을 형성하게 하고, 사회규범 체계를 내재화하지 못한 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며 "범행에 대한 책임을 피고인 개인에게만 전적으로 물을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이 외에도 재판부는 ▲정유정이 사건 범행 이전에는 어떠한 범죄도 저지른 전력이 없는 점 ▲정유정의 반사회적 행위들은 피고인의 일생에서 극히 일부분에 한정된 시간에 나타난 점 ▲어린 피고인이 남은 인생살이 중에 교화돼 피해자와 그 유족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할 가능성이 없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점 등과 같은 사정들을 들며 "누구라도 피고인의 생명을 박탈하는 양형으로서 사형에 처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인정할 수 있을 만큼 특별한 사정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kwon9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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