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전략적" 정유정 1심 무기징역…'사형 구형' 검찰 항소 검토(종합2보)
불우한 성장 과정이 사형 선고 막은 듯…반사회적 범죄에 '경고'
(부산=뉴스1) 노경민 기자 = 과외앱으로 일면식 없는 여성에게 접근해 흉기로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유기한 정유정(23)이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사형을 구형한 검찰은 항소 여부를 검토 중이다.
부산지법 형사6부(김태업 부장판사)는 24일 살인·사체손괴·사체유기·절도 혐의로 기소된 정유정에게 무기징역과 함께 3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명령을 내렸다.
검찰 공소사실에 따르면 정유정은 지난 5월26일 오후 5시41분께 부산 금정구 한 아파트에서 여성 B씨를 흉기로 살해한 뒤 경남 양산 한 풀숲에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는다.
정유정은 과외앱으로 54명에게 대화를 걸어 범행 대상을 물색했고 이중 혼자 사는 여성인 B씨에게 접근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성문 21차례 냈지만…판사 "진정성 의문"
정유정은 1심 재판 과정에서 계속해서 반성문을 써냈다. 어릴적 부모의 이혼, 조부모의 가정 폭력 등 불우한 성장 환경과 양극성 정동장애 등 심신미약 주장을 반성문에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 초반에는 판사가 반성문을 정말로 읽을지에 대한 의문도 내비쳤지만, 정유정은 "구체적으로 다 읽으니 어떤 형식으로든 써서 내길 바란다"의 판사 말에 총 21차례 반성문을 제출했다.
하지만 이날 재판부는 "정신의학과에서 양극성 정동장애 등 진단을 받은 사실은 인정되지만 범행 당시 정신질환 등으로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 결정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피고인은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한 동선까지 고려하는 등 범행을 치밀하게 계획하고 준비했다"며 "이 모습들은 심신 미약 상태의 사람이 보일 수 있는 행동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성문에 대해선 "자신의 불행했던 처지를 알아달라는 것이 반성문의 대부분 내용이었으나 죄를 뉘우치고 피해자와 유족에게 사죄한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면서도 "과연 진심으로 반성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남길 수밖에 없다"고 언급했다.
또 정유정이 체포 이후부터 법정에 이르기까지 보인 태도가 매우 전략적이고 작위적으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사형 선고에는 신중…"개인에게만 책임 묻기 어려워"
앞서 검찰은 지난 결심공판에서 "무기징역은 가석방이 가능하니 사형을 내려달라"고 요청했지만, 이날 내려진 형량은 무기징역이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불우한 성장 환경이 비정상적인 성격을 형성하게 하는 등 어느 정도 유리한 양형으로 참작했다. 정유정 개인에게만 범행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재판부는 "아직 20대의 어린 피고인이 남은 인생 중에 교화돼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할 가능성이 없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며 "사형 이외에 가장 무거운 형벌로서 무기징역을 선고해 사회로부터 온전히 격리된 상태에서 수감 생활을 통해 참회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도록 하는 게 타당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법 감정상 피고인에 대한 극형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고 해도 사형에 처하는 게 정당하다고 인정할 만큼 특별한 사정이 분명히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이유를 밝혔다.
◇"실패 무력감에 분노까지 쌓여 범행"
재판부는 이번 범행이 피고인의 성장 과정에서 가족에 대한 원망과 자신의 처지에 대한 분노, 계속된 실패에 따른 무력감 등이 내면에 쌓여 발현된 것으로 봤다. 여기에 더해 범죄 수사 프로그램에 평소 흥미가 많았던 정유정의 범죄 욕구까지 더해진 결과물로 판단했다.
실제로 정유정은 지난해부터 인터넷에 '가족에게 복수하는 방법' '존속살인' '살인 방법' 등을 검색해오다 '안 죽이면 분이 안 풀린다'는 메모를 남기는 등 차츰 가족이 아닌 사람을 살해해서라도 분노를 푸는 계획을 세워온 것으로 드러났다.
범행 동기 및 사전 계획 여부에 대해 계속해서 진술을 번복하는 점 등을 고려하면 재범 위험성도 높을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억울한 피해자에 대해선 "마지막 떠나는 순간까지 억울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며 "이제 막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하던 20대 젊은 청년이 꿈도 펼쳐보지도 못한 채 꽃다운 나이에 삶을 마감하고 말았다"고 말했다.
분노를 해소하기 위해 벌어지고 있는 반사회적 범죄에 대해서도 "우리 사회 구성원들에게 타인으로부터 아무런 원한을 사지 않더라도 언제 어디서든 범행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공포를 일으켜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고 강조했다.
◇호송차 오를 때까지 고개 숙인 정유정
정유정은 이날 법정에 들어설 때부터 고개를 푹 숙인 채 차분한 모습을 유지했다. 선고가 끝난 뒤에 법원을 나서면서도 줄곧 고개를 숙인 채 호송차에 올라 구치소로 떠났다.
피고인과 검찰의 항소 가능성도 있어 1심의 무기징역형이 확정된 판결은 아니다. 하지만 형량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최소 20년 후부터 가석방 신청을 할 수 있어 재범 우려도 커지는 상황이다.
출소 후 무기수의 재범을 방지하는 수단으로는 위치추적 전자장치가 유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항소 여부는 아직 나오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정유정 측 변호사 사무소 관계자는 "아직 항소를 검토하는 단계는 아니다"며 "검찰에서 항소하면 그때 가서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부산지검 관계자는 "판결문 검토를 마친 뒤 항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blackstamp@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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