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피해자 日 상대 승소에…외교부 “2015 한일 합의 존중” 日은 “매우 유감”
‘국가면제’ 원칙 들어 각하했던 1심 뒤집은 판결…이용수 할머니는 만세 외치며 눈물
일본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 1인당 2억원씩 배상하라는 국내 법원의 판결에 외교부는 24일 “2015년 (한일간) 위안부 합의를 양국 간 공식 합의로서 존중한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판결 관련 상세 내용을 파악하고 있다”며 이 같은 원칙적인 입장을 냈다. 외교부의 입장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라는 외교 합의의 틀 내에서 이 문제를 다뤄 나가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앞서 서울고법 민사33부(구회근 황성미 허익수 부장판사)는 지난 23일 이용수 할머니를 비롯한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 등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주권 국가인 일본에 다른 나라의 재판권이 면제된다는 ‘국가면제(주권면제)’ 원칙을 들어 소송을 각하했던 1심을 뒤집고 “원고의 청구 금액을 전부 인정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소송 비용도 일본 정부가 부담한다고 밝혔다. ‘각하’는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 본안 심리 없이 내리는 결정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국제관습법상 피고 일본 정부에 대한 대한민국 법원의 재판권을 인정하는 게 타당하다”며 “당시 위안부 동원 과정에서 피고의 불법행위가 인정돼 합당한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어 “이 사건 피해자들은 최소한의 자유조차 억압당한 채 매일 수십 명의 일본 군인들과 원치 않는 성행위를 강요당했고 그 결과 무수한 상해를 입거나 임신·죽음의 위험까지 감수해야 했으며, 종전 이후에도 정상적인 범주의 사회생활에 적응할 수 없는 손해를 입었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피고의 행위는 대한민국 민법상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며 “피해자별 위자료는 원고들이 이 사건에서 주장하는 각 2억원은 초과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도 밝혔다.
법정에 휠체어를 타고 나온 이 할머니는 선고 후 법정을 나서면서 두 팔 벌린 채 만세를 외치며 눈물을 흘렸다. 이 할머니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 21명은 2016년 12월 “1인당 2억원을 배상하라”며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지만, 2021년 4월 서울중앙지법 1심 재판부는 주권 국가인 일본에 다른 나라의 재판권이 면제된다는 ‘국가면제’ 원칙이 적용된다는 이유로 소송을 각하했었다.
같은 날 윤덕민 주일 한국대사를 초치한 일본 정부는 ‘국가면제’ 원칙이 적용되지 않은 판결에 “매우 유감”이라면서 항의의 뜻을 전달했다.
일본 외무성은 가미카와 요코 일본 외무상 명의 담화문도 발표했다. 가미카와 외무상은 “이 판결은 국제법 및 한일 양국간 합의에 위배된다”며 “(한국에) 국가로서 스스로의 책임으로 즉시 국제법 위반 상태를 시정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강구하도록 재차 강하게 요구한다”고 밝혔다. 주권면제 원칙을 내세워 소송에 불응해온 일본 입장과 맞닿은 것으로 해석된다. 일본 정부는 ‘위안부에 대한 법적인 손해배상 책임이 없는 만큼 소송 자체도 인정할 수 없다’는 논리로 재판 무시 전략을 취해왔다.
2015년 12월28일 당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은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한국 정부가 위안부 지원 재단을 설립하면 정부 예산으로 약 10억엔을 출연하겠다고 밝혔었다. 한일 외교장관 회담 70분 만에 문제를 타결한 기시다 외무상은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하에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라며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내용의 위안부 합의에 “정부가 10억엔에 우리 혼을 팔아넘겼다”며 “굴욕적 협상 결과로 얻는 10억엔을 거부한다”고 강하게 정부를 비판한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자리에서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재단설립자금 100억원 국민모금운동을 제안하기도 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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