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구급차도 아닌데…환자 탔으면 일반차량이라도 양보해야 한다고? [도통 모르겠으면]

문재용 기자(moon.jaeyong@mk.co.kr) 2023. 11. 24.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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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동 훈련 중인 119 구급차. [사진 출처=매경DB]
운전경험이 있는 독자분들이라면 꽉 막힌 길에서 앰뷸런스를 위해 길을 열어준 경험이 한 번씩은 있으실 겁니다.

앰뷸런스에게 길을 양보해줘야 한다는 것은 법에도 명시가 돼있는 내용인데요. 현행 도로교통법은 앰뷸런스 이외에도 경찰차나 각종 수사차량·호송차량 등을 ‘긴급자동차’로 분류하고, 이들 차량에게 교통법규를 일정부분은 어길 수 있거나 길을 양보받을 권리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위급한 환자를 호송하거나 공무를 수행하는 차량들이니 충분히 그럴만하다고 생각하실 텐데요. 하지만 교통규정을 무시한 탓에 사고가 난다면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요?

실생활에 도움되는 도로교통법 지식을 전하는 연재기사 ‘도통(도로교통법) 모르겠으면’ 이번 회차에서는 긴급자동차가 포함된 교통사고 판례를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신호 무시하고 중앙선 침범해도
“상대 일반차량 과실이 더 크다”
손해보험협회의 자동차사고 과실비율 인정기준에는 긴급자동차 사고의 과실비율 사례 7개가 소개돼있습니다.

앞서 소개해드린 것처럼 긴급자동차는 교통법규를 적용받지 않고, 길을 양보받을 권리가 있다는 규정이 과실비율에도 잘 반영돼있는데요.

손해보험협회 과실비율 기준
예를들어 교차로에 적색신호를 무시하고 진입한 앰뷸런스와 부딪힐 경우 설령 일반차량이 녹색신호에 진입했다고 하더라도 6:4로 더 큰 과실이 인정됩니다. 특히나 교차로에서는 긴급자동차에 더욱 주의를 기울이셔야 하는데요. 길을 양보해줘야 한다는 규정뿐 아니라 도로교통법에 별도 조항으로 ‘교차로나 그 부근에서 긴급자동차가 접근하는 경우에는 노면전차의 운전자는 교차로를 피하여 일시정지하여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기 때문이죠.
손해보험협회 과실비율 기준
손해보험협회 과실비율 기준
이외에 중앙선을 침범하거나, 중앙선 침범후 추월을 하려는 등 일반차량이라면 100% 과실을 받았을 상황이라도 긴급자동차라면 과실이 덜 나올 수 있습니다. 그만큼 상대 일반차량의 과실은 당연히 높아지구요.

긴급자동차가 이보다 경미한 법규위반을 했을때 사고가 난다면 어떨까요? 예상하신대로 일반차량에게 더욱 가혹하게 과실이 부과되는데요.

손해보험협회 과실비율 기준
손해보험협회 과실비율 기준
긴급자동차가 차선을 끼어들거나, 신호가 없는 교차로에서 대로를 무단으로 가로지르려다 사고가 나는 정도는 일반차량이 준법주행을 했더라도 70%, 90%의 과실이 인정될 수 있습니다.
겉보기엔 그냥 승용차였는데…
요건 갖추면 ‘긴급자동차’ 간주
이렇듯 긴급자동차에게 유리하게 짜여진 규정에 불만을 가진 독자분들은 많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사이렌을 울리며 접근하는 경찰차·앰뷸런스를 보고 길을 양보하는 건 어렵지도 않고, 심적 저항감도 없기 때문이죠.

그런데 일반 승용차가 전조등을 켜고 경적을 울려대며 접근한다면 어떨까요? 본능적으로 회피하시는 분들이 많겠지만, ‘저건 뭐지?’하며 비켜줘야할지 고민하는 분들도 꽤 있으실 것 같습니다. 얌체 운전자로 간주해 길을 막는 경우도 나올 수 있어 보이는데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런 차량을 발견하셔도 일단 피하고 보는 게 좋습니다. 일반차량도 위급환자를 호송하는 등의 상황에서는 긴급자동차로 간주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전기·가스·통신 등 국가기반시설에 문제가 생겨 긴급히 이를 복구하러 가거나, 긴급우편물을 운송하는 차량 등 다양한 차량이 긴급자동차가 될 수 있습니다.

겉보기에 다를 게 없는 승용차가 갑자기 교통법규를 무시하고 날뛰어도 괜찮은지 염려하실 수도 있는데요. 이런 경우 ‘사이렌을 울리거나 경광등을 켤 것’, ‘전조등 또는 비상표시등을 켜거나 그 밖의 적당한 방법으로 긴급한 목적으로 운행되고 있음을 표시하여야 한다’는 등의 준수사항이 있으니 조금은 안심하셔도 됩니다.

다만 사고를 당한 상대차량 입장에서는 억울할만한 일이기도 해서 대법원까지 소송이 이어진 사례들도 있는데요. 지난 1989년 한 대법원 판결(89도30)의 사건에서는 차에 탄 환자가 정말로 위급했던 것인지가 쟁점이 됐습니다. 당시 대법원은 “의학적 판단으로 생명이 위급한 부상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 하더라도 일반인의 처지에서 생명이 위급하다 판단될 정도”라면 “생명이 위급한 환자나 부상자를 운반중인 자동차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운송해야 할 사람이 보기에 위급해 보이면 긴급자동차의 요건이 갖춰진다고 본 것이죠.

1984년 또다른 대법원 판결(83도938)의 사건에서는 긴급자동차임을 알리는 행위를 어느정도까지 해야 긴급자동차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가 쟁점이었습니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전조등을 켜고 상병인을 운반중이던 피고인 택시를 긴급자동차로 본 조처는 정당하다”며 “경적을 계속해 취명하는 등의 방법까지 취해야 한다는 것은 독자적 견해여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신현범 변호사(법무법인 율우, 손해보험협회 과실비율분쟁심의위원회 심의위원)는 “긴급자동차를 도로에서 만날 경우에 의심을 하기 보다는, 누군가의 생명과 재산을 구조하기 위해 출동한다는 믿음을 갖고 양보, 일시정지를 해주는 것이 도로교통법에 따른 처벌 여부와 관계 없이 바람직한 운전자의 모습”이라고 전했습니다.

‘도로교통법 모르겠으면’은 손해보험협회의 자동차사고 과실비율 인정기준·분쟁심의 사례와 법원 판례를 바탕으로 흥미로우면서 전문적인 교통사고 해설을 전합니다. 과실비율을 명쾌히 내놓을 수는 없지만, 여러분의 운전생활에 도움이 될 지식을 담겠습니다. 구독자분들이 교통법규를 몰라서 위반하는 일이 사라질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아래의 기자페이지와 연재물 구독 버튼을 누르시면 손쉽게 건강한 운전습관을 기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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