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관승의 리더의 소통] 단골식당과의 작별 인사
단골식당 잃게 되는 상실감
'카페 코레토' 한잔에 위로받다
영업 마지막 날 손님이 모두 떠난 뒤 그와 나는 시칠리아산 포도주 한 병을 땄다. 첫 번째 잔은 그동안 그가 나와 친구들에게 베풀어 준 후의에 감사를 표하고, 두 번째 잔은 6성급 호텔 레스토랑 수석셰프로 영전하는 그의 미래를 위하여, 세 번째 잔은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에 대한 그리움의 의미로 건배를 외쳤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미로 같은 골목길에 있었던 작은 식당 '에트나 퓨'는 나와 친구들에게는 보석 같은 곳으로 비싼 레스토랑이 아닌 '비스트로', 즉 간편하고 빠르며 가성비 높은 서민적 식당으로 주머니 부담도 작아서 동행한 이들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았다.
"본조르노~!" 작은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음악처럼 리드미컬하게 들리던 식당 주인이자 셰프인 이반의 이탈리아 인사말을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되었다. '하느님의 부엌'이라는 시칠리아 출신답게 식재료를 직접 만들어 서비스했다. 올리브기름과 함께 나오는 식전 빵 포카치아, 빵 조각 위에 싱싱한 토마토를 얹은 부르스게타, 대표 메뉴 라자냐, 그만의 비법이 담긴 리소토와 트러플 파스타, 피스타치오 피자가 담긴 접시가 나올 때면 유럽 경험이 많은 이들도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부오니시모'를 외쳤다. 이탈리아어로 맛있다는 뜻이다. 이반은 이탈리아 사람 특유의 손과 몸의 언어를 섞어 기쁘다는 화답의 인사를 표하곤 했다. 앨버트 머레이비언 UCLA 교수의 이론인 머레이비언의 법칙을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얼굴에 나타난 표정이나 몸동작 같은 비언어적 표현이 말과 글보다 의사소통에서 훨씬 더 공감과 신뢰를 준다는 이론으로, 보디랭귀지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말한다.
최고급 호텔의 수석셰프로 영전하는 것은 물론 큰 영광이겠지만, 열정을 기울이던 식당 문을 닫는 아쉬움은 없는지 그에게 물었다. 포도주 한 모금을 비우더니 그동안 말하고 싶었던 무언가를 조심스레 털어놓았다. "한국은 명함 사회인 것 같아. 그 사람의 진짜 실력을 보려고 하지 않고 겉으로 평가하려는 경향은 어디나 있겠지만, 한국에서는 그게 너무 심해. 내가 만든 음식, 내용으로 평가하는 게 아니라 어디에 소속돼 있는지 타이틀로 평가하려 하는 게 조금 아쉬웠어."
인기 TV 프로그램에 나와서 유명해진 그였지만, 그는 방송인이 아닌 음식으로 자기 자신을 보여주고자 했다. 요리가 그의 당당한 업(業)이며 정체성이었다. 그런데 서울에서 마주친 사람들은 그의 잘생긴 외모와 겉으로 보이는 타이틀 같은 것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데 대한 아쉬움이었다.
한국과 한국인을 사랑해서 서울에 왔지만, 어떤 한계를 느낀 것이다. 세계적 명성을 가진 직장에서 몇 년 경험을 쌓고 자기 식당을 다시 오픈하겠다는 결심이다. '와인 속에 진리가 있다(In vino veritas)'는 라틴어 격언이 있던가. 함께 와인글라스를 비우다 보면 마음속에 감춰둔 침묵의 언어를 공개한다는 것으로 소통에서 포도주의 역할을 강조한 말이다. 우리에게 식탁은 어떤 의미인가? 어떤 이에게 식탁은 단순히 위를 채우는 공간이겠지만, 또 어떤 이들에게는 소통에 훌륭한 플랫폼 역할도 한다. 이반처럼 지중해 문화권에서 살아온 이들에게는 일상에서 식탁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머리는 멀고 입은 가까운 법이어서 맛있는 음식을 나누고 포도주나 아끼는 술 한잔을 권하면 입이 즐겁다. 입이 즐거우면 마음이 열리며, 마음이 열려야 귀도 열리게 되니까. 식탁은 '문화생산자'로서 훌륭한 역할을 담당하는 셈이다.
'지혜로운 노인 한 명이 세상을 뜬다는 것은 도서관 한 개가 불에 타 없어지는 것과 같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고 한다. 내게는 단골 식당의 상실감이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헤어지기 직전에 그는 에스프레소에 리큐어를 넣은 '카페 코레토' 한 잔으로 나를 위로했다.
[손관승 리더십과 자기계발 전문 작가 ceonoma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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