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수의 책과 미래] 독서의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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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흔히 독서의 목적이 지식과 정보의 습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책이 지식의 전달을 위한 도구라면 우린 이제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독서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독서의 진짜 목적은 지성과 감성의 체험에 놓여 있다.
로타리오의 컴퓨터 독서법은 요약본이나 동영상을 감상함으로써 어떤 책에 담긴 핵심 정보만 쏙 뽑아먹으려는 현대인의 독서법을 은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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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흔히 독서의 목적이 지식과 정보의 습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책이 지식의 전달을 위한 도구라면 우린 이제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독서할 이유가 없다. 언제 어디서든 인터넷을 통해 필요한 정보에 접근하는 수단이 존재하고, 온갖 지식을 요약해 알려주는 동영상 등도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서의 진짜 목적은 지성과 감성의 체험에 놓여 있다.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민음사 펴냄)에서 이탈리아 작가 이탈로 칼비노는 루드밀라와 로타리오라는 쌍둥이 자매를 통해서 독서에 관해 이야기한다. 언니인 로타리오에게 독서는 분석과 추출이다. 그녀는 책을 한번 훑음으로써 빠르게 그 핵심 문제를 뽑아내려 한다. "스무 차례 이상 반복되는 단어를 살펴보라고 하고 싶어요. 탄띠, 사령관, 피, 보초, 총격…. 이건 전쟁 소설이 틀림없어요."
그녀는 컴퓨터를 통해 책 속에서 반복되는 단어를 추출하고, 이를 이용해 그 주제를 파악한다. 아마 이것만으로도 내용 파악에는 큰 지장이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이 독서의 전부는 아니다. 로타리오의 컴퓨터 독서법은 요약본이나 동영상을 감상함으로써 어떤 책에 담긴 핵심 정보만 쏙 뽑아먹으려는 현대인의 독서법을 은유한다. 칼비노는 1970년대 후반에 이미 이를 예감했다.
루드밀라에게 독서란 연애와 같다. 언어를 던져 독자를 유혹하고 애정을 갈구하는 작가 마음에 접근하는 일이다. 연인의 겉말과 속마음이 다름을 모르면 연애를 잘하기 어렵다. 때로는 연인이 미처 몰랐던 마음마저 읽어내야 사랑에 성공할 수 있다.
독서 역시 인쇄된 언어 뒤에 있는 진실, 작가조차 몰랐던 진실을 읽어내는 일과 같다. 사랑에 빠진 눈이 만날 때마다 연인의 새 면모를 발견하듯, 루드밀라에게 독서는 행간 너머 진실을 향해 가는 여행이고, 그 끝에서 선입견을 버리고 눈에 비늘이 떨어지는 체험을 얻는 일이다. 요약된 내용을 파악하는 것으로는 독서라 할 수 없다. 이는 차라리 독서의 실패에 가깝다. 진실은 언어 뒤쪽에, 아직 말하지 않은 것에 놓인 까닭이다.
독서는 진실에 이르기 위한 수양 행위에 가깝다. 우리는 책을 통해서 지식과 정보를 얻을 뿐 아니라 사고를 훈련하고 감수성을 단련함으로써 진실을 찾아가는 내적 여행을 한다. 사물과 사건을 깊이 생각하고 넓은 맥락에서 바라보는 법을 배우고, 인간과 자연을 온전히 느끼고 넉넉히 대하는 법을 학습한다. 독서의 기쁨은 대부분 내용의 파악이 아니라 우리를 성숙한 인간으로 이끄는 내적 성장의 체험에 달려 있다. 이러한 체험 없이 어떤 책을 읽었다고 말할 수 없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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