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일본은 '외국인 노동자' 차별 없나요?" 질문이 틀렸다

제희원 기자 2023. 11. 24.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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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손전쟁①] 한국 추월하는 일본…'선택 받는 나라'를 목표로

연속기획 <일손전쟁, 우리는 매력적입니까>는 '향후 17년 간 줄어들 생산가능 인구 886만 명, 출산율 0.78명'이라는 절망적인 숫자에 직면한 대한민국의 외국 인력 정책에 질문을 던지는 보도입니다. 한국은 외국인 노동자가 일하고 싶은 '매력적인 나라'인가에 대한 대답을 우리보다 앞선 외국 현지 취재를 통해 살펴보았습니다. 또 한국의 외국 인력 유입과 정착을 막는 장애물은 무엇인지, 더불어 진정한 이민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이웃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담긴 취재후기를 차례로 전합니다.

한국 '고용허가제' 배워 간 일본, 2019년부터 이민 정책 대폭 변화


일본은 외국인 정책에 있어서 우리와 닮은 점이 많은 나라입니다. 2004년 고용허가제를 도입한 한국은 일본보다 먼저 외국인의 '노동자성'을 인정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2000년대 초반 한국은 다문화 가족 정책 등 중앙정부 차원에서 '일하는 외국 인력'에 선제적으로 대응했습니다. 이때만 해도 한국의 이민 정책이 일본보다 앞섰다는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배타적이었던 일본이 확 바뀐 건 2019년 무렵입니다. 당시 아베 신조 총리가 "심각한 인력 부족"으로 "기존의 외국인 수용 제도 시급히 재검토"해야 한다고 선언할 정도로 일본은 생산연령인구 감소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습니다. 전후 일본의 고도 경제 성장을 이끈 단카이 세대(제 1차 베이비붐 1947-1949년 출생자)의 정년퇴직이 시작되던 때이기도 했죠. 전문직 종사자를 제외한 외국 인력 도입에 소극적이었던 일본은 이때부터 다양한 기능을 가진 외국 인력 도입을 천명했습니다. 그동안 기능실습생을 통해 노동력 수요를 충족해 왔지만 2019년 4월부터 '특정 기능 비자'를 신설해 일손 부족 문제가 심각한 건설, 간호, 농업 등 12개 업종에 대해 다양한 기능 수준을 가진 외국인 채용을 가능하도록 한 겁니다.
 

한국의 '고용허가제' vs 일본의 '특정기능제도', 당신이 외국인이라면 선택은?


일본의 특정기능 1호와 한국의 고용허가제 모두 약 5년의 기간이 끝나면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점, 특정기능 비자 1호의 경우 가족 동반이 불가능하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특정 기능 2호는 가족 동반 및 영주 가능) 입국 전에 한국어 및 일본어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점도 동일합니다. 외관상으로는 비슷해 보이지만, 차이는 '디테일'에 있었습니다. 일본에서 특정기능 자격으로 입국한 외국인은 일본인과 동등한 노동 조건을 보장해 주어야 하고, 각종 사회보장제도에 고용주는 의무 가입해야 합니다. 내국인과 동등한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는 건 당연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특정기능1호 자격 외국인을 고용하려는 사업주는 다음과 같은 지원 계획도 수립해야 합니다. ‣입국 전 생활오리엔테이션 제공 ‣입국 시 공항 마중 및 귀국 시 공항 배웅 ‣외국인의 주거 확보 ‣재류 중 생활에 필요한 오리엔테이션 실시 (은행계좌 개설, 휴대전화 개통 지원 등) ‣일본어 학습 지원 ‣각종 행정 절차에 관한 정보 제공 등입니다. 취재하면서도 이런 것들이 단순히 '형식적인 서류'에 그치지 않을까 의심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 의심은 실제 일본 기업 담당자들을 만나면서 처참히 부서졌습니다.

'외국인이 영주하고 싶은 마음'을 회사가 알아차려야


일본 취재를 위해 섭외한 기업과 현장은 그동안 한국 언론은 물론 일본 주류 언론에서도 다뤄지지 않았던 곳으로 선정했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외국인 정책을 짚어볼 때 '명과 암'을 다 살펴보려면 주류 언론을 타지 않은 곳이 더 좋겠다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도쿄에서 약 130km 떨어진 작은 도시 도치기현의 후지센 기공을 찾아간 이유도 그랬습니다. 1983년에 설립된 반도체 관련 중소기업인 후지센 기공에는 전체 직원 120명 중 20명 정도가 외국인이었습니다. 모두 기능실습생이 아닌 정규직으로 고용된 직원이었습니다.
외국인이 제조업 공장에서 일하는 풍경은 한국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지만, 외국인 직원을 대하는 자세는 우리와 많이 달랐습니다. 최근 매출이 30% 정도 줄어들 정도로 반도체 경기가 부진한 상황임에도 외국인 고용을 당분간 유지하는 게 회사로서는 중요한 과제라고 했습니다. 반도체 경기가 다시 좋아질 때를 대비해 외국인 직원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과 훈련을 이어가는 게 결국 회사의 경쟁력이 될 거라는 판단 때문입니다. 최근의 엔저 상황도 회사로선 고민이었습니다. 외국인 직원 입장에서는 본국으로 보내는 액수가 줄어드는 만큼 환차 등을 보전하기 위해 회사가 추가 수당을 줄 고민도 하고 있었습니다.

외국인의 육아휴직, 내국인 직원과 동일하게 보장


놀라운 건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이 회사에는 외국인 사내 부부가 세 쌍 있었는데, 육아휴직도 내국인과 똑같이 적용받고 있었습니다. 외국인도 역시 산전 4주, 산후 8주의 출산휴가는 물론 1년의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회 보장 제도'에 의무가입하고 '일본인과 동일한 노동조건을 보장해 준다'는 것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육아휴직 중인 스리랑카 출신 아힌사 니루마니 씨는 10개월 된 아들 시온을 안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회사 동료들이 임신했을 때도 가벼운 일만 시키는 등 많은 배려를 해줬어요. 죽을 때까지 일본에 살고 싶어요." 한국과 비교해 일본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도 물었는데, "일본은 여자가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나라고, 스리랑카에서는 한국은 위험한 일을 시킨다는 인식이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현재 아힌사의 남편도 이 회사로 이직해 근무하고 있습니다.

"1년만 쓰고 버릴 건가? '외국인에게 위험한 일 시킨다'는 인식 없다"


사실 취재하는 내내 놀라움과 부끄러움의 연속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위험한 일을 시킨다는 인식이 있는데 일본은 어떤가요?"라는 기자 질문에 대해 사토 이쿠요 후지센기공 경영전략실장은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며 "1년만 쓰고 버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위험한 일을 외국인에게만 시키는 일은 전혀 없다"고 답했습니다. 기자가 직접 들어가 살펴본 공장 내부는 깨끗했고, 안전 수칙 준수도 철저했습니다. 그래서 처음 만난 한국 취재진에게도 공장 안팎을 거리낌 없이 공개할 수 있었겠지요. 공장을 둘러보는 내내 산재를 당하고 신고조차 못하고 쫓겨나는 한국의 외국인 노동자 얼굴이 겹쳐 보이기도 했습니다.

외국인의 '더 나은 정착'을 돕기 위한 기업의 노력은 또 있었습니다. 가령 일주일에 두 번, 3시간씩 인근의 전문학교와 연계된 온라인 일본어 교육을 하는데 이를 근무시간으로 인정해 줍니다. 일본어 자격시험을 레벨 업하면 한 달 약 1만 엔 상당의 월급도 올려줍니다. 굳이 회사가 왜 이렇게 까지 하나 궁금해서 물어봤습니다. 후지센 기공 인사담당자는 "문화 차이가 있지만 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외국인 직원의 일본어 능력이 좋아지면 내국인과 잘 소통할 수 있고, 결국 회사 경쟁력이 강화되는 일이다. 서로 윈윈 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같은 제조업 공장 안에서도 외국인과 내국인 사이 '장벽'이 있을 것이라는 저의 선입견이 완전히 잘못된 것임을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

제희원 기자 jessy@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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