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예산 돋보기]㉑ 초전도에 ‘올인’한 양자컴퓨팅 R&D …‘선택과 집중’일까 ‘위험한 도박’일까
후발주자 한국 투자 늘려 선도국 추격
다양한 양자컴 플랫폼 경쟁
한국은 1조 규모 초전도 집중
내년도 R&D 예산안은 전년대비 16.6% 삭감된 25조9000억원이다. R&D 예산이 정부 총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9%에서 3.9%로 줄었다. 33년 만의 예산 감축에 과학기술계가 큰 혼란에 빠졌지만, 수십 조원에 달하는 방대한 예산안 앞에서 정작 어디에서, 어떻게, 누구를 위한 예산이 삭감됐고, 이 와중에 어떤 예산은 왜 늘었는지 제대로 아는 국민은 없다. 조선비즈는 국회 예산안 심의 시즌을 맞아 내년도 R&D 예산안에서 꼭 필요한 예산이 삭감된 건 어떤 부분인지, 늘어난 예산 중에 낭비성 예산은 없는지 찾아보기로 했다. [편집자 주]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월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를 찾아 양자과학기술 분야의 석학들과 만났다. 원래는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 참석하는 일정이었지만 별도로 시간을 내 과학자들과의 만남을 가진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올해를 ‘양자과학기술 도약의 원년’으로 삼고, 보다 많은 연구자를 양성하고 연구교류를 적극 추진하라”고 말했다. 이 자리에 배석했던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도 귀국 후 “양자기술은 미래 산업뿐 아니라 국가안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정부의 연구개발(R&D)의 주요 지표로 선정하고 지원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양자기술은 양자컴퓨터, 양자통신, 양자센서처럼 양자역학적의 특성을 바탕으로 하는 기술이다. 아주 작은 크기의 물질에서만 적용되는 물리 법칙인 양자역학을 활용하면 이전에는 도저히 달성하기 어려운 성능의 장치를 만드는 일이 가능하다. 가령 양자의 ‘얽힘’ ‘중첩’ 특성을 적용한 양자컴퓨터는 0과 1로만 정보를 표현하는 기존 컴퓨터 시스템을 대체해 현존하는 최고 성능의 슈퍼컴퓨터보다 30조배 이상 빠른 연산도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까지 나오고 있다.
그래서인지 윤석열 정부의 양자과학기술에 대한 사랑은 열렬했다. 윤 대통령은 스위스에서 돌아온 직후 1조원 규모의 양자기술 투자 계획도 마련했다. 3월에는 양자과학기술 선점을 위해 1조원 규모의 ‘양자과학기술 플래그십 프로젝트’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도 신청했다. 그 덕분에 기초 수준에 머무르던 국내 양자기술 연구도 탄력을 받고 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남은 임기 내내 탄력을 받을 것 같던 양자과학기술 R&D는 최근 새로운 숙제에 직면했다. 정부가 막대한 투자를 약속했지만 조금은 우려스러운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연구자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의 말을 종합하면 윤석열 정부의 양자 사랑은 ‘편애’에 가깝다. 이는 다른 분야의 연구자들이 하는 그저그런 얘기가 아니라 양자 연구자들 사이에서 나오는 얘기라는 점에서 더 귀에 쏙쏙 들어온다.
한 출연연구기관에서 양자기술을 연구하는 연구자는 “정부의 양자컴퓨터 육성 계획을 보면 ‘초전도’ 기반 양자컴퓨터에만 집중 투자하고 있는 모습”이라며 “아직 양자컴퓨터가 어떤 기반기술(플랫폼)으로 상용화될지 확실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한 분야에 ‘올인’하는 모양새를 띠고 있다”고 지적했다.
양자컴퓨터는 큐비트(양자비트)라는 연산단위를 쓴다. 큐비트는 양자(quantum)와 비트(bit)의 합성어로, 기존 컴퓨터가 비트로 불리는 0과 1을 사용하는 것과 달리 0과 1 두 개의 상태를 동시에 가질 수 있다. 이른바 입자가 동시에 여러 개 상태를 가지는 중첩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양자컴퓨터는 이런 큐비트를 구현하는 방식에 따라 나뉘는데 대표적으로 초전도, 이온트랩, 광자, 중성원자, 고체점결함, 반도체양자점 방식이 현재 집중적으로 연구되고 있다. 이들 기술은 제각각 장단점이 있다 보니 좀더 안정적이고 오류가 적은 방식을 개발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그런데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예산안에 따르면 올해 처음 시작한 ‘양자기술연구개발선도(양자컴퓨팅)’ 사업에서는 초전도 방식에만 예산 지원이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초전도를 제외한 이온트랩, 광자, 고체점결함, 반도체양자점 플랫폼의 연구 예산은 과제당 12억원 수준에 그친다. 4개의 과제가 내년 시작될 예정인 만큼 최첨단 기술인 양자컴퓨터에 단 48억원의 예산이 지원된다는 의미다. 알고리즘, 활용분야 연구 과제를 더해도 83억원 수준이다.
반면 초전도 양자컴퓨터 개발에는 150억원의 예산을 투자한다. 하나의 플랫폼에 다른 플랫폼 지원 연구비 총합의 2~3배를 투입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1조원 규모의 초전도 양자컴퓨터 육성 사업의 예타가 통과되면 그 격차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진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초전도 기반 양자컴퓨터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하다보니 예산에 차이가 있어 보인다”면서도 “초전도 방식은 이미 구글, IBM에서 시스템을 구현했고 한국에서도 초전도 양자컴퓨터 연구가 비교적 앞서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상당수 양자기술 연구자들은 정부가 ‘범용 양자컴퓨터’ 개발을 목표로 한다면서 초전도에만 집중 투자하는 것은 다소 의아하다고 입을 모은다. 초전도 양자컴퓨터는 현재로선 영하 273도의 아주 낮은 온도를 유지해야 구현이 가능한데 과연 범용 양자컴퓨터의 모델로 적절하냐는 것이다. 일부 연구자들은 초전도보다 좀더 현실적인 기술로 상용화해야 더 유리하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다케다 슌타로 일본 도쿄대 교수는 최근 인터뷰에서 “초전도 양자컴퓨터는 성능을 높이기 쉽지만 엄청난 설비와 공간이 필요한 방식”이라며 “이에 비해 실리콘이나 광자 양자컴퓨터는 상온에서도 작동하고 다양한 형태로 응용이 가능한 장점이 있어 아직 기술마다 장단점이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기초 연구 단계에서 특정 분야에 ‘올인’하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기초 단계에선 작은 규모라도 다양한 연구자와 방식에 예산을 배정해야 혁신적이고 독창적인 기술과 지식을 발굴할 수 있다는 과학계의 오래된 정석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초전도 양자컴퓨터에만 올인하는 전략은 위험성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만에 하나 다른 방식의 양자컴퓨터가 먼저 상용화될 수 있다는 근거가 나오면 그때까지 연구가 모두 물거품이 될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다.
양자기술을 연구하는 한 대학 교수는 “과기정통부가 초전도 양자컴퓨터 개발에 1조원 투자한다고 한 예타 계획이 나왔을 때도 학계에서는 논란이 있었다”며 “실제 상용화보다는 성과를 보여주기 쉬운 길을 택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도 “실제로 지난해보다 다른 플랫폼에 대한 절대 규모의 예산을 줄인 것은 사실”이라며 “다만 더 다양한 플랫폼을 지원하게 됐고, 내년 과제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확장해 다양한 가능성에 투자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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