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터 前 미 대통령, 아내 임종 직전까지 둘이서만 손잡고 30분 보내”
“아버지는 기도하셨을 것” “어머니가 숨진 뒤에도, ‘둘만 있고 싶다’ 하셨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99)은 77년 간 함께 산 아내 로절린 카터의 사망을 하루 앞두고 온 가족이 조지아주 플레인스에 있는 카터 부부의 고향집에 모였던 18일 토요일 밤에 “어머니와 단 둘이만 있고 싶다”며 “방에서 30분간 두 분만 손을 잡고 시간을 보냈다”고, 장남인 제임스 얼 “칩” 카터가 밝혔다. 흔히 “칩(Chip)”이라고 불렸던 카터의 장남은 22일 워싱턴포스트에 아버지가 어머니와 보낸 마지막 순간을 공개했다.
아내 로절린 여사는 불과 1주일 전까지만 해도 보행기에 의지하며, 남편 곁을 떠나지 않았다. 카터 부부는 지난 7월 결혼 77주년을 맞았고, 미 역대 대통령 부부 중에서 최장의 결혼 생활을 유지한 부부가 됐다.
그러나 로절린은 두 달 전부터 요로감염을 앓고 있었고, 항생제 처방이 듣지 않자 그 전날부터 집에서 호스피스 완화치료에 들어갔다.
18일 밤, 휠체어를 탄 카터는 아내 병상 옆에 앉아, 주위에 모인 자녀들과 가족에게 그가 얼마나 아내를 사랑했는지와 아내가 이룬 모든 멋진 일들에 대한 고마움을 말했다. 그리고 “아내와 단 둘이만 있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30분 간 아내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칩 카터는 “아버지는 분명히 기도하고 계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로절린은 수개월 전에 노인성치매(dementia) 판정을 받았다. 카터 전 대통령은 수 차례 병원에서 단기 입원치료를 받다가, 지난 2월부터 고향집에서 휠체어 생활을 하며 호스피스 치료를 받고 있었다. 장남 칩 카터는 “아버지는 (호스피스 치료에 들어간) 지난 9개월 동안 ‘늘 아내보다 더 살아서 아내가 세상을 뜨기까지 보호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그게 불확실해졌다’며 슬퍼하셨다”고 말했다.
카터 부부는 평생 손을 잡고 다닌 것으로 유명했다. 지난 8월에도 손자인 조시 카터는 피플 잡지에 “두 분은 아직도 손을 잡고 다닌다”고 밝혔다.
토요일 밤, 가족은 카터의 병상을 로절린의 병상 맞은 편에 놓아, 부부가 서로 등을 세우고 마주 보고 얘기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그날 밤 로절린은 계속 악화됐고, 다음날인 19일 동이 틀 무렵엔 더 이상 말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플레인스의 농장집에서 시작해서 백악관의 퍼스트레이디가 됐다가 다시 돌아온, 그 고향집에서 19일 오후2시10분쯤 온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졌다.
칩 카터는 “아버지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고, 사망이 확인된 뒤 아버지는 다시 한 번 가족들에게 두 사람만 시간을 보낼 수 있게 자리를 비켜달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이후 카터 센터를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카터 전 대통령은 “로절린은 내가 이룬 모든 것에서 나의 동등한 파트너였다. 내가 필요로 할 때, 현명한 가이드와 격려를 제공했다. 로절린이 세상이 있는 동안, 나는 한 사람이 나를 사랑하고 지원하는 것을 늘 알았다”고 밝혔다.
카터는 플레인스에서 세 살 때, 갓 태어난 로절린을 처음 봤다. 간호사였던 카터의 어머니가 로절린의 출산을 도왔다. 로절린은 이후 카터의 여동생 루스의 친구가 됐고, 루스는 1945년 해군사관학교 생도인 카터를 루스에게 정식으로 소개했다.
첫 데이트에서 두 사람은 영화를 보러 갔지만, 로절린 뒤에 앉은 카터는 화면은 보지 못하고, 로절린의 머리카락 뒤로 이미지가 깜빡거리는 것만 봤다고, 나중에 말했다. 카터는 집에 돌아와 어머니에게 “내가 결혼하고 싶은 여성”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로절린에게도, 카터는 “플레인스에서 본 가장 멋진 남성”이었다.
그러나 카터가 수 개월 뒤 청혼했을 때, 로절린은 거부했다. 2년제 대학에 다니던 로절린은 당시 병상에 있던 아버지에게 “대학 졸업 때까지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이듬해 로절린은 졸업을 앞두고 카터의 청혼을 받아들였고, 플레인스의 한 감리교회에서 1946년 7월7일 결혼했다. 카터의 나이 20세, 로절린은 18세였다.
결혼반지에 새긴 글씨는 ILYTG. ‘나는 당신을 가장 사랑합니다(I Love You The Goodest)의 약자였다. 카터는 2015년 피플 지 인터뷰에서 “로절린과 결혼한 것은 내가 이룬 최고의 업적”이라며 ‘인생의 정점(頂點)’으로 표현했다. 그는 또 “우리 애들도 문자나 이메일에 모두 ILYTG를 쓴다”고 말했다.
백악관을 떠난 두 사람은 전세계에서 인도주의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둘이서 지금까지 모두 4300채의 주택을 짓거나 수리했다.
로절린의 장례식은 29일 고향집에서, 추모행사는 27~29일 사흘 동안 조지아 주 애틀란타의 카터 센터에서 열린다. 장남은 “병상에 누운 이래 아버지의 체형도 계속 변해, 예전 옷이 제대로 맞지 않아 새로 양복을 맞췄다”며 “아버지가 추모행사에 참석할 수 있을지는 건강 상태에 달렸다”고 말했다.
장례식에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아 트럼프를 포함해, 전(前) 퍼스트레이디들도 초청됐다. 로절린은 자신의 장례식에 참석할 인사들을 직접 선정했다고 한다.
민주당원인 카터와 공화당원인 트럼프는 결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카터는 트럼프의 대선 부정 주장과 미 의회 난입 사건과 관련해, 작년 1월 뉴욕타임스에 “우리 전직 대통령 4명은 모두 이를 규탄한다”며 의회 난입 폭도들은 “사악한 정치인들의 사주를 받았다”고 썼다. 트럼프는 로절린의 호스피스 치료 사실이 발표된 뒤인 18일 아이오와 주의 한 집회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을 공격하며 “지금 이 나라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지미 카터다. 이 광대들(바이든 행정부)에 비하면, 지미 카터는 아주 뛰어난 대통령이었다”고 비꼬았다.
장남은 “어머니는 품위(grace)있는 분이었고, 전 퍼스트레이디를 포함해서 모든 사람을 존중했다”며 “어머니는 우리에게 품위를 물려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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