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드와이드웹’으로 연결된 숲···‘생각하는 나무’가 인간을 구원할 수 있을까[책과 삶]
이를 찾아낸 생태학자 수잔 시마드 일대기
숲이 하나의 공동체라는 발견은 ‘아바타’ 모티브
어머니 나무를 찾아서
수잔 시마드 지음 | 김다히 옮김|사이언스북스|576쪽|2만5000원
나무가 뿌리의 진균을 통해 서로 연결되고, 그를 통해 소통하고 양분과 정보를 주고받는다는 것은 현재 생태학계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숲은 비유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살아 있는 생명체의 네트워크로서 살아 숨쉬며 상생하고 공존한다는 것은 ‘견고한 상식’이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1997년 이전에는 아니었다. 논에 벼를 심고 수확하듯 숲에 나무를 빽빽이 심으면 목재를 많이 얻을 수 있을 것이란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무분별한 벌목, 비료와 제초제의 남용, 단일수종 재배가 전 세계 임업계를 지배했다. 세월이 흘러 산업적 조림의 문제점이 드러나고, 그 영향이 기후변화와 맞물려 인간에게도 위협이 되면서 뒤늦게 숲을 자연상태로 되돌리려는 재야생화 등이 시도되고 있다.
이런 인식의 전환을 가능하게 한 것은 수잔 시마드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 삼림생태학 교수의 연구다. 1997년 네이처에 표제작으로 실린 시마드의 삼림 생명 다양성에 영향을 미치는 나무의 연결성과 소통에 관한 연구 논문은 숲에 대한 이해를 획기적으로 전환시킨 기념비적 논문이다. 네이처가 ‘우드 와이드 웹(The Wood-Wide-Web)’이라고 이름 붙인 이 연구는 나무와 나무, 나무와 숲 전체가 이끼나 곰팡이 같은 진균을 통해 연결되며 이를 통해 탄소나 질소 같은 영양물질에서부터 신경 전달물질까지 전달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숲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나무인 ‘어머니 나무’가 소통의 허브가 되어 숲 전체의 성장과 재생을 관리한다는 것이다. 시마드의 연구는 영화 <아바타>에 나오는 ‘영혼의 나무’의 모티프가 되기도 했다.
<어머니 나무를 찾아서>는 오랫동안 숲에서 나무와 더불어 살던 집안에서 자란 시마드가 숲과 생태에 대한 인식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가져온 생태학자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한 일종의 회고록이다. 임업회사에 취직해 일하고 싶었던 젊은 시마드가 현장에서 부딪힌 문제에 대한 의문을 포기하지 않고 답을 찾기 위해 집요하게 노력한 기록이자, 여성 학자로서 출산과 육아라는 이중 과제 속에서도 연구를 포기하지 않았던 이야기, 암 투병이라는 개인적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현재까지 미래를 위한 더 큰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대학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경외감과 두려움을 동시에 주는 울창한 삼림 속에서 회색곰에게 쫓기며 산속에 고립될 뻔한 사건 같은 모험이 가득한 이야기, 숲속의 온갖 생명과 소통하고 교류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야생으로부터 났다. 내 핏줄이 나무에 있는지, 아니면 내 핏줄에 나무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시마드의 집안은 캐나다에서 나무를 벌목해 먹고살았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큰 나무를 벌목해 강물에 띄워보내며 목숨을 걸고 일했고, 시마드는 자작나무 아래 부식토에서 초콜릿맛이 난다는 걸 알고, 나무뿌리에 노랑·하양·분홍빛 진균이 붙어 다채로운 빛을 띤다는 걸 아는 아이였다.
시마드는 벌목회사의 최초 여직원으로 취직하지만, 그곳에서 문제와 한계에 맞닥뜨린다. 벌목회사는 숲이 재생하는 데 필요한 나무를 남겨두지 않고 모조리 베어냈다. 나무들은 서로 생존하기 위해 경쟁한다고만 인식했기에, 관목 등의 식물은 제초제로 다 죽여버렸다. 하지만 인위적으로 심은 묘목은 땅의 수분과 영양분을 독차지하면서도 비실했고, 새 뿌리를 내지 않았다. 시마드는 오래된 숲에 있던 나무뿌리에 얽혀 있는 진균이 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벌목회사는 귀 기울이지 않았다. 시마드는 문제의식을 놓지 않았다. 스스로 버섯에 관한 학술서를 찾아보고 공부하며 균근균과 식물의 공생관계에 대해 알아간다. 이미 북아메리카의 선주민들이 땅속 진균과 나무 사이의 공생관계를 알고 있었음을 인식한 후 희열을 느끼기도 한다.
시마드는 대학원에 진학해 연구를 이어가면서 식물들 사이의 협력과, 그 연결을 가능하게 하는 진균의 존재를 밝혀나간다. 1997년 자작나무와 미송의 호혜성에 관한 논문을 네이처에 발표한 후에도 캐나다 산림청이 꿈쩍하지 않자, 포기하지 않고 이들을 설득할 수 있는 연구를 이어나간다. 제초제량을 절반으로 줄이도록 한 정책 수정 등은 시마드의 연구가 이끌어낸 변화다.
시마드의 연구는 숲이 영양분을 뿌리와 진균을 통해 나누고 공존한다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숲이 화학적 신호를 통해 서로 소통하고 정보를 전달한다는 점을 밝혀냈다. 마치 인간의 뇌처럼 숲은 뿌리와 진균의 막을 통해 정보를 주고받으며, 그 중심엔 가장 오래된 ‘어머니 나무’가 있다. “크고 오래된 나무들은 모든 이웃을 연결한다. 축삭, 시냅스, 마디 등으로 구성된 정글에서 중추적 연결 고리 역할을 한다. 늙은 나무와 젊은 나무가 화학적 신호를 보내며 서로를 인지하고, 서로 소통하고, 서로에게 반응한다.” 시마드가 들려주는 숲에 대한 이야기는 경이롭고 아름답다.
2015년 시마드는 다가올 300년 동안의 ‘어머니 나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9개 기후 지역에서 어머니 나무를 모두 절단하는 대신 보전하면 탄소 저장량, 생물 다양성, 삼림 재생력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아보는 연구다. 어머니 나무를 보호하면서 삼림을 관리하면 탄소를 저장할 수 있는 공간도 보호되고, 나무의 자연적 재생과 생물 다양성도 늘어난다. “숲은 목재 공급원으로서의 가치보다 탄소 흡수원으로서의 가치로 더 높은 평가를 받는 시기가 머지않아 올 것”이라며 “자연과 인간의 권리의 가치가 동등하게 법으로 보장받는 환경적, 사회적 정의에 기반한 경제로 진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시마드가 책 집필을 마친 2019년과 영어판이 출간된 2021년 이후 코로나19 팬데믹이 지구를 휩쓸고, 캐나다에선 더위와 가뭄으로 산불이 발생하는 등 지구환경은 점점 악화됐다. 시마드가 숲으로부터 얻은 지혜는 이제 인간을 위해 절실한 것이 됐다. “이 책은 어떻게 하면 인간이 나무를 살릴 수 있는가에 대한 책이 아니다. 나무가 어떻게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가에 대한 책이다.”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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