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곤의 재밌는 화약이야기]<10> 세계사 물꼬를 바꾼 스페인 무적함대의 몰락
1450년 당시 유럽은 전 세계 15%만 지배했다. 그러나 1800년 유럽은 전 세계의 35%를 장악했고, 1914년에는 84%를 통제했다. 현재는 세계 거의 모든 나라가 서구화되고 있다. 이는 서구 열강이 과학과 기술을 성공적으로 이용한 대가이자, 특히 화약무기 활용에 큰 성과를 냈기 때문이다.
유럽 국가들이 세계로 진출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화약무기 때문이었다. 이미 17세기부터 중국과 인도, 오스만, 러시아, 일본 등 유라시아 강국들의 군사력은 유럽에 역전당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던 1492년까지 아메리카 대륙에는 화약과 화약무기가 없었다. 지금 멕시코 지역에 수백 년에 걸쳐 아스텍 문명을 꽃피웠던 아스텍 제국은 1519년 총과 대포로 무장한 병사 800명과 말 16마리를 10척의 배에 싣고 유카탄반도에 상륙한 스페인의 코르테스에게 3년 만에 멸망됐다.
그 후 1532년 피사로는 대포와 총으로 무장한 180명의 군사를 이끌고 청동 창과 돌화살이 전부였던 잉카제국을 2년만에 정복했다. 스페인이 앞장서서 화약무기를 사용한 결과 아메리카 대륙의 금, 은, 등 값진 귀금속을 채굴할 수 있었다. 또 합스부르크 왕가로 들어온 금은보화는 그들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고, 권력을 쟁취할 수 있게 해줬다. 그리고 몇 년 뒤에는 프랑스와 영국이 화약무기를 이용해 북아메리카 대륙까지 손쉽게 점령했다.
◇ 스페인 무적함대를 침몰시킨 영국 대포
1588년 발발한 스페인 무적함대와 영국과의 전투는 화약 혁명 영향을 더욱 극적으로 보여줬다. 영국의 헨리 8세(1492-1587)와 엘리자베스 1세는 쓰러져 가던 중세 잉글랜드 정부를 바로 세우고 현대 영국의 뿌리를 만들었다. 대영제국의 기반을 닦은 헨리 8세는 바다 건너 신대륙에 식민지를 개척하려면, 영국보다 한발 앞서 있는 스페인을 제압해야 한다고 확신했다. 그는 해상 제패라는 웅대한 꿈을 품고 장거리 화포로 무장한 현대적 해군을 창설하고, 이에 맞는 해상 전술 양식을 개발했다.
당시 스페인 해군이 세계 제일 무적함대인 것은 틀림없었지만 주력선은 3,4층의 갑판을 가진 갤리온(Gellyon) 선이었다. 한때 아메리카에서 수탈한 황금을 나르는 보물선으로 통했던 이 배는 떠 있는 요새로 명성을 떨쳤으나, 선상의 무장은 의외로 빈약했다.
스페인 함대의 전술 양식은 화포에 의한 원거리 포격전이 아니라, 적의 함선에 인접해 화승총으로 공격하는 것에 치중하고 있었다. 1588년 스페인 무적함대와 전투가 일어나기 전, 화약 혁명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100여 년 동안 대포를 장착한 함대가 개발됐다. 선상에 엄청나게 많은 대포를 달고 적의 배에 공격을 퍼붓는 기술로는 영국이 스페인보다 훨씬 앞섰다. 1547년 헨리 8세가 죽을 무렵, 영국 해군은 53척의 전함에 2,085문의 함포로 무장한 최신의 대함대로 급성장해 있었다.
1587년 스페인 필립 2세는 교황에 등을 돌리고 있는 영국을 응징한다는 명분 아래 세계 최강으로 자부하는 무적함대를 동원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스페인 무적함대는 화력과 기동력에 앞선 영국에 연이어 완패했고, 이는 헨리 8세와 딸 엘리자베스 1세의 업적이었다. 그로부터 영국은 강대국으로 부상해 100여년 동안 바다를 지배하며 ‘팍스 브리타니카’(Pax Britannica; 영국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해상 장악권을 가졌던 시기) 시대를 열었다.
◇ 화약 혁명으로 인한 지각 변동
18세기에 화약으로 인한 가장 큰 변화는 봉건적 군사 제도가 근대식 군대로 재편된 것과 통일된 복장(유니폼)을 한 군인의 등장, 즉 전투 기술과 지휘 방법을 연구하는 직업군인이 등장했다는 점이다. 또 기술적 측면에선 심지를 써서 점화하는 화승총을 넘어서 부싯돌의 원리로 발사되는 수발총이 등장했다. 그런데 수발총에는 명중률이 낮은 문제가 있어 이를 보완하기 위해선 거대 병력이 촘촘한 대열을 유지하는 것과 근접거리에서 싸우는 것이 중요했다. 18세기 전투의 사상자 비율은 20% 이상에 달했다. 때문에 효율적인 군대를 만들기 위해선 강렬한 규율과 반복 훈련이 필요했다.
이러한 군사 혁명으로 전투 방식은 중세 시대와 크게 달라졌고, 이는 다른 지역의 전쟁 방식에도 영향을 줬다. 예를 들어 1803년 인도 아사예 전투에서 인도 최대 강국인 마라타 제국은 인구가 4000만명, 대영제국은 1000만명 정도였지만 영국은 규율과 전술에서 앞선 군대로 인도를 정복했다. 이후 영국은 군사 기술 면에서 큰 격차로 뒤처져있던 중국도 위협했는데 중국은 제1차, 2차 아편전쟁에서 패배하며 유럽에 문호를 개방하게 됐다.
--------------------------------------------------------------
유지곤 대표 22세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유지곤폭죽연구소를 창업해 30대 시절 한국 대표 불꽃연출가로 활동했다. 독도 불꽃축제 추진 본부장을 맡아 활동 하면서 본인과 세 자녀의 본적을 독도로 옮긴 바 있으며, 한국인 최초로 미국 괌 불꽃축제, 하와이 불꽃축제 감독을 맡았다. 지금은 KAIST 미래전략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로봇 관련 스타트업을 운영하고 있다.
/대전=강일 기자(ki0051@inews24.com)Copyright © 아이뉴스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오늘의 운세] 12월 27일, 이 별자리는 마음 안 맞던 친구와 이야기 해보세요!
- 크리스마스에 안양 모텔서 '일산화탄소' 누출 2명 병원행
- 정용진, 트럼프·머스크 만난 후 '알리바바 합작' 승부수
- "한덕수 퇴진"…서울 곳곳 다시 응원봉 든 시민들
- 민테크, 환경부 등과 73억 1300만원 규모 공급계약 체결
- "케이크 사고 사기당한 기분"…올해 또 '실물 논란'
- 하나금융 부회장 삼각편대 재편…부행장도 영업맨 발탁
- "케이크 때문에 직원들 냉장고 속에서 일해"…빵집 안내문 '시끌'
- 달리는 고속철서 기관사가 투신해…성탄절 이브에 佛서 사고
- 정형권 G마켓 대표 "알리와 협업해 이커머스 선도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