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들만 ‘행복한’ 대한민국 [김민아의 훅hook]

김민아 기자 2023. 11. 24.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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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21일 대전을 방문해 시민들과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법무부는 이 사진을 공식 보도자료에 첨부해 홈페이지에 올렸다. 법무부 제공

법무부 홈페이지에 가면 법무뉴스 메뉴 아래 보도자료 코너가 있다. 5149번 ‘법무부장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외국인 과학기술 연구자와 간담회 개최’ 보도자료가 흥미롭다. 지난 21일 한동훈 장관의 대전 카이스트 방문을 다룬 자료에는 사진 27장이 첨부돼 있다. 모두 한 장관이 돋보이도록 찍었는데, 마지막 사진은 한 장관이 시민들에게 둘러싸여 사진 촬영하는 모습이다. 흡사 팬미팅을 연상케 한다.

법무부 홈페이지는 법무부의 정책과 행정을 언론과 시민에게 알리기 위해 운영된다. 이 사진은 어떤 정책·행정을 알리고자 게시한 건가. ‘장관님 덕질’하는 여권 지지층을 위한 서비스인가.

한 장관은 최근 대구(17일)-대전(21일)-울산(24일)을 찍는 ‘전국 투어’에 나섰다. 대구에선 기차표를 취소하면서까지 3시간여 동안 시민들과 사진 촬영을 했다. “여의도 국회의원 300명의 사투리가 아닌, 나머지 5000만명이 쓰는 언어를 쓰겠다”며 사실상의 ‘총선 출사표’도 던졌다. “우리 부모님은 춘천 사람, 어릴 적 산 곳은 청주”라며 강남 엘리트 이미지를 희석하려는 제스처까지 곁들였다.

국가공무원법 65조는 공무원의 정치운동 금지를, 공직선거법 9조는 공무원의 선거중립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장관의 지역 방문에도, 부처 홈페이지 운영에도 국민 세금이 들어간다. 한 장관이 세금으로 ‘사실상의 사전선거운동’을 하는 동안,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이 검증한 합참의장 후보자는 근무 중 주식 거래, 북한 미사일 발사날 골프, 자녀 학교폭력 등 의혹으로 국민적 지탄을 받고 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알렉스 버가트 영국 내각부 디지털정부 담당 장관이 22일(현지시간) 런던 내각부 청사에서 ‘한-영 디지털정부 협력 양해각서’ 체결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행안부 제공

사상 초유의 행정전산망 마비 사태 이후 정부 전산망 사고가 속출하고 있다. 조달청 국가종합조달전산망 ‘나라장터’ 사이트는 23일 1시간가량 불통됐다. 전날(22일)에는 주민등록정보 시스템에 이상이 생겨 전국 주민센터의 민원서류 발급이 20여분간 중단됐다. 지난 17일 행정전산망 먹통을 시작으로 엿새 사이 세 번의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주무 장관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사고가 날 때마다 국내에 없었다. 17일 행정전산망 마비 사고 당시엔 ‘디지털 정부’를 홍보하겠다며 미국 출장 중이었다. 중도 귀국한 이 장관은 20일 “서비스가 완전히 정상화될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겠다”고 밝혔다.

말뿐이었다. 바로 다음날(21일) 윤석열 대통령을 따라 영국으로 떠났다. 장관 대신 국회에 불려나온 고기동 차관은 “송구하다”면서도 “재난으로 판단하진 않는다”고 했다.

이 장관은 22일(현지시간) 영국 내각부 장관과 ‘한·영 디지털정부협력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행안부는 이번 MOU 체결이 영국 공공조달 시장에 한국 기업의 진출 기회를 넓힐 수 있을 것이라고 홍보했다. 정작 국내 공공조달 전산망은 MOU 체결 후 몇 시간도 안 지나 먹통이 됐다. 이 장관은 24일 새벽에야 귀국길에 올랐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내년 총선에서 이른바 ‘험지’에 출마할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국민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면 어떠한 도전과 희생도 마다하지 않겠다”(지난 21일). 국민의힘 내에선 “눈물나게 고마운 얘기. 혁신의 시작”(인요한 혁신위원장)이라며 찬사를 받고 있다.

정치인 출신 원 장관이 총선에 나서겠다면 알아서 할 일이다. 다만 “도전과 희생”보다 본업이 우선이다. 원 장관은 서울~양평 고속도로 건설사업을 일방적으로 백지화하겠다고 선언해 지역 주민들의 고통을 가중시켰다. 이후 명확한 입장 표명도 없이 사업 관련 예산안을 슬그머니 국회에 내밀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가운데)이 지난해 11월 2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화물연대 총파업 사태와 관련해 정부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오른쪽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다. 이준헌 기자

윤석열 정부의 ‘스타 장관’들은 K-직장인의 ‘워너비’다. 어떤 과오를 저질러도 ‘잘리지’ 않는다. 책임지거나 사과할 필요도 없다.

한 장관은 수많은 인사검증 실패에도 당당하다. 법무부는 “기계적으로 자료 수집만 맡을 뿐 판단 주체는 대통령실”이라며 책임을 회피해왔다.

이 장관은 이태원 참사·새만금 잼버리 실패·정부 전산망 마비 사태에 모두 책임이 있다. 그러나 멀쩡하다. 과거 정권에서 이 중 한 가지라도 발생했다면 장관직을 유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원 장관은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극단적 선택이 잇따르는데도 “(전세사기가) 사회적 재난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며 정부 책임론을 부인하고 있다.

유엔 산하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는 해마다 ‘세계행복보고서’를 공개한다. 2023년 보고서에서 한국의 행복도는 조사 대상 137개국 중 57위에 머물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선 35위로 최하위권을 기록했다. 한국보다 행복도가 낮은 나라는 그리스·콜롬비아·튀르키예 뿐이다.

국민들은 행복하지 않은데 장관들만 행복한 나라. 대한민국이다.

김민아 칼럼니스트 ma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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