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은 정청래 말처럼 ‘최약체 후보’일까

고재석 기자 2023. 11. 24.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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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머니볼⑮] 4년 전 황교안과 같은 점 다른 점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11월 21일 대전시 한국어능력 등 사회통합프로그램 CBT 평가 대전센터 개소식에 참석하기 위해 차에서 내리자마자 지지자들로부터 환영 받고 있다. [김재명 동아일보 기자]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정치 뉴스의 한복판에 섰습니다. 11월 21일 대전시를 찾은 한 장관은 "여의도에서 300명만 쓰는 고유의 화법이나 문법이 있다면 그건 '여의도 사투리' 아니냐"라면서 "나는 나머지 5000만 명이 쓰는 문법을 쓰겠다"고 말했습니다. 2020년 8월 3일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신임 검사 신고식에서 꺼낸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쓴 독재와 전체주의 배격' 발언이 떠오릅니다. 정파성을 드러내지는 않되 방향성은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엿보입니다. 언론이 '사실상의 정치 참여 선언'이라 주석(註釋)을 달고 있는 점도 같고요.

야당은 '정치인 한동훈'의 잠재력을 평가 절하합니다. 이날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페이스북에서 한 장관을 두고 "최약체 후보"라고 했고, 이튿날 권칠승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윤비어천가'에 이어 '훈비어천가'를 부르는 국민의힘"이라고 했습니다. 박주민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도 같은 날 CBS 라디오에 나와 "(한 장관이) 중도 확장력에서 의구심이 든다"고 했고요. 최근 만난 민주당 인사도 다소 신중한 투이긴 했지만 "보수 지지층에만 소구력이 있어 보인다"고 표현하더군요.

‘한동훈 약체론'의 밑바탕에는 '황교안 학습효과'가 있습니다. 보수의 기대주로 꼽히던 황교안 전 국무총리는 2019년 1월 15일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에 입당했습니다. 입당 직후 리얼미터가 실시한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처음으로 전체 1위를 차지하기도 했고요. 같은 해 2월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황 전 총리는 과반 득표를 하며 당권을 거머쥐었죠. 신분이 '황교안 대표'로 바뀐 겁니다. 하지만 이듬해 총선 참패로 '황교안 대망론'은 한순간에 소멸했습니다. 장외투쟁 등 '집토끼'에 구애하다 '산토끼'를 놓쳤다는 비판이 많았고요.

2019년 11월의 黃 2023년 11월의 韓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11월 21일 대전시 유성구 한국과학기술원 국제교류센터를 방문해 간담회를 가진 후 시민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재명 동아일보 기자]
한 장관도 황교안의 길을 가게 될까요. 솔직히 말하면 이 글을 쓰는 저 역시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봤습니다. "최약체"라는 표현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한 장관이 중도층에 소구력이 약하다고 진단했습니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재선 의원 출신 여당 인사가 "한 장관이 국회에서 야당과 싸우려는 태도를 보이는 건 문제"라고 말한 점이 기억나기도 했고요. 여권 내에서도 우려하는데 중도층에게 지지를 얻겠느냐는 의문이 있던 거죠. 데이터를 구체적으로 뜯어본 뒤에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우선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기 위해 같은 조사(한국갤럽 '장래 정치 지도자 조사', 2022년 6월 이전까지의 명칭은 '차기 정치 지도자 조사')를 활용하겠습니다. 조사 시점 역시 총선 직전 해 11월 조사로 좁히겠습니다. 같은 시기 두 인물(한동훈, 황교안)이 마주한 조건과 환경을 객관적으로 비교해보기 위해서입니다.

한국갤럽이 11월 7~9일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남녀 1001명에게 차기 대통령감을 물은 결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 21%, 한동훈 법무부 장관 13%, 오세훈 서울시장과 홍준표 대구시장 각각 4%,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3%로 집계됐습니다.

한 장관은 국민의힘 지지층에서 31%의 지지율을 얻었습니다. 세대로 보면 60대(24%), 70대 이상(22%), 50대(12%), 40대(9%), 20대(7%), 30대(6%) 순입니다. 직업의 경우 주부(21%), 무직‧은퇴‧기타(14%), 자영업(13%), 사무‧관리직(11%) 순이고요. 지역별로 보면 서울(18%), 대전‧세종‧충청(15%), 부산‧울산‧경남(15%), 대구‧경북(14%), 인천‧경기(12%) 순입니다. 대구‧경북의 의견유보층이 52%로 과반 이상이라는 점이 눈길을 끄네요. 서울에서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17%)를 제치고 1위였습니다. 정치 성향으로는 보수(26%), 중도(10%), 진보(3%) 순입니다.

4년 전으로 시계를 돌려보겠습니다. 한국갤럽이 2019년 11월 5~7일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남녀 1002명에게 차기 대통령감을 물은 결과 (당시 직함 기준으로) 이낙연 국무총리 29%,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12%, 안철수 전 의원 6%, 이재명 경기지사 6%로 집계됐습니다. 2023년 11월의 한동훈 장관과 2019년 11월의 황교안 대표가 흡사한 지지율을 얻은 점이 흥미롭습니다. 그런데, 진짜 흥미로운 포인트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황 대표가 얻은 세부지표를 한 장관이 얻은 그것과 비교해가며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황 대표는 국민의힘 지지층에서 43%의 지지율을 얻었습니다. 세대로 보면 60대 이상(25%), 50대(14%), 20대(6%), 30대(5%), 40대(4%) 순입니다. 직업의 경우 무직‧은퇴‧기타(23%), 주부(15%), 블루칼라(13%), 자영업(12%) 순이고요. 이때는 사무‧관리직이 화이트칼라로 표기됐는데, 황 대표가 얻은 지지율은 6%입니다. 지역별로 보면 대구‧경북(18%), 대전‧세종‧충청(15%), 부산‧울산‧경남(15%), 인천‧경기(12%), 서울(10%) 순입니다. 이때는 대구‧경북에서 의견유보층이 19%에 불과했습니다. 정치 성향으로는 보수(30%), 중도(7%), 진보(4%) 순입니다.

강남 우파‧강남 좌파에서 방점은 강남

2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 첫 번째)와 정청래 최고위원(오른쪽에서 세 번째) 등이 지나가는 가운데, 한동훈 법무부 장관(왼쪽)이 착석해 있다. [김재명 동아일보 기자]
차이점이 보이십니까. 2019년의 황교안은 TK에서 가장 높은 지지를 얻고 서울서 전체 평균을 밑도는 지지율을 기록했습니다. 2023년의 한동훈은 서울서 가장 높은 지지를 얻고 TK 성적표는 그보다 나빴습니다. 2019년 TK 유권자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불만 탓에 야당으로 결집했습니다. 자연히 야당 수장인 황 대표 쪽으로 지지세가 쏠렸죠. 그와 달리 2023년 TK 유권자들은 정중동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보수 정부 초기라 차기 주자에 대해서도 관망 중이고요. TK 내 의견유보층의 차이(2019년 19%, 2023년 52%)가 이를 방증합니다. 바꿔 말하면 한 장관은 아직 끌어 모을 보수 지지층이 남아있다는 뜻입니다.

2019년의 황교안과 2023년의 한동훈은 공히 노년층에서 인기를 끕니다. 다만 한 장관은 40대에서 황 대표에 비해 의미 있는 지지율(9%)을 얻었습니다. 화이트칼라에 해당하는 사무‧관리직의 경우, 한 장관은 11%고 황 대표는 6%입니다. 40대 화이트칼라. 무언가 그려지지 않습니까. 민주당의 핵심 지지층입니다. 한 장관은 황 대표에 비해 보수층에서 지지율은 낮았으나(韓 26% 黃 30%) 중도층에서는 높은(韓 10% 黃 7%) 성적을 거뒀습니다. 보수층 내에서 의견을 유보한 비율이 2023년(42%)과 2019년(16%) 사이에 격차가 크다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한 장관은 아직 보수 표를 다 끌어 모으지도 않은 상태라는 겁니다.

이를테면 2023년의 한동훈은 세간의 해석과 달리 (아직까지는) 확장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지율을 지탱하는 지역 기반도 보수의 아성인 TK가 아니라 서울입니다. 2019년의 황교안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입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가 11월 21일 SBS 라디오 '정치쇼'에 나와 꺼낸 말이 수수께끼를 풀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핵심만 요약해 인용해보겠습니다.

"한동훈 장관을 제가 주목하는 것은 이분이 강남 우파잖아요. 압구정동, 현대고등학교 나오신 분이고. 강남 우파‧강남 좌파에서 방점은 좌파‧우파에 찍혀 있는 게 아니라 강남에 찍혀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부모님들이 애들한테 '네가 커서 조국(전 법무부 장관)처럼 강남 좌파를 해도 좋고 홍정욱(전 의원)이나 한동훈처럼 우파를 해도 좋은데 강남으로 하라'는 거죠. 학벌도 좋고 돈 잘 벌고. 그게 매력적인 거죠. 윤석열 대통령도 어떻게 보면 강북 우파 같은 느낌 아닙니까. 그런 것에 비하면 한동훈 장관은 강남 우파니까 젊은 엄마들한테 (소구력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韓, 서울 마포을 출마하면…

강남 우파. 황교안에게는 없던 이미지입니다. 외려 황 전 대표는 종교 우파의 이미지마저 풍겼죠. 박성민 대표의 말마따나 윤 대통령은 강북 우파에 가까워 보이고요. 말하자면 강남 우파는 '7막 7장'이라는 베스트셀러로 유명했던 홍정욱 전 의원 이후 처음 등장한 모델입니다. 이것은 '여의도 머니볼'을 연재하며 늘 강조하듯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닙니다. 유권자의 정서적 자기장의 문제에서 접근해야할 문제입니다.

물론 한 장관이 가진 한계도 명확합니다. 유력 대권후보가 되려면 권력과 투쟁하는 면모가 있어야 합니다. 검찰총장 시절 친문 주류와 맞선 윤 대통령이나, 김영삼 대통령과 맞서 국민적 영웅으로까지 떠오른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이에 해당합니다. 이런 서사를 갖추지 못한 고건 전 총리나 반기문 전 총장은 대권 가도에서 빠르게 낙마했죠. 현직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정권의 황태자'라고도 불리는 한 장관 처지에서는 윤석열‧이회창 모델을 따르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반대로 보면 정치인 한동훈에게는 '윤석열과의 차별화'라는 카드가 남아있다는 뜻도 됩니다. 별다른 지지 기반이 없으면 택하기 힘든 길이지만, 이른바 강남 우파 모델로서 독자적 생존이 가능하다고 판단하면 갈 수도 있는 길입니다. 윤 대통령이 용인하면 될 일입니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도 11월 20일 MBC 라디오 '시선집중'에 나와 이렇게 말했더군요.

"한동훈 장관도 윤석열 대통령의 황태자 또는 후계자 이미지로 선거에 진입하면 굉장히 어려울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오히려 한동훈 장관이 앞으로 차별화된 모습들을 많이 보일 거로 기대하고 (중략) (저와) 누가 더 그런 걸 잘하나 경쟁할 수 있는 사이가 될 수도 있다. (중략) 제 생각에는 한동훈 장관이 (정치에) 뛰어들기로 한 이상 저는 한동훈 장관이 감수했다고 봅니다. 어느 시점에 윤석열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해야 될 것이고 저는 그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오히려 정치적 감각이 있으시면 어느 정도 양해하셔야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심이건 전략이건 민주당발(發) '한동훈 최약체 후보론'은 안이한 판단입니다. 결론을 내놓고 상황을 끼워 맞춘 흔적마저 엿보이고요. 한 장관이 정청래 의원의 지역구(서울 마포을)에 출마해도 쉽게 패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한 장관이 '유명인'이나 '인기인'이어서가 아닙니다. '정치인 한동훈'에 대해 나오는 데이터에 근거해 내린 결론입니다.

(*이 기사에 나온 여론조사 관련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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