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IT 바다 누린다” 전자 부품 제조회사, 인팩코리아
◇운명처럼 조선에서 IT로 직종 전환
이승현 대표는 해남 땅끝마을 건너 아름다운 섬 어룡도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 거북선을 만들겠다는 꿈을 키우며 자랐다.
또래 집단에서는 검을 허리에 찬 이순신 장군이나 이억기 장군과 같은 군인의 인생을 꿈꾸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군인들을 호령하는 장군보다 바다 위를 나아가는 거북선을 만들고 싶었다. 기술이나 공업 과목을 좋아했고, 기계를 만지고 기계의 원리를 배우는 수업 시간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군인이 되기보다는 거북선과 같은 훌륭한 전선(戰船)을 만드는 기술자가 되는 편이 적성에 맞다고 판단했다.
소년 이승현은 나중에 공대를 졸업한 후 대우조선에 취업해 설계를 맡으며 그 꿈에 한발 더 다가선다. 이즈음 기업 현장에서는 실무경험만이 아니라 학교에서 배우는 이론이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적으로 직장에서 깨달았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쓴 회고록 성격의 <세계 1등 TV 주역 이승현의 담대한 도전>이라는 책에서 “결혼한 뒤 나와 아내의 갈등 가운데 한 가지는 공부에 대한 나의 미련 때문이었다. 신혼 초에는 많이 부딪쳤다. 거제도의 대우조선해양에서 부산에 있는 대한조선공사로 옮긴 저간의 이유가 바로 청년 시절의 꿈인 공부를 더 하고픈 욕심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결혼을 한 가장에다가 아이들이 태어나자 그런 꿈은 드러내기가 힘들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 후 세계 최대의 해상 구조물을 만들어야 하는 업무가 생겨 미국 출장 프로젝트팀 팀원으로 세계 최고의 엔지니어링 회사인 미국의 벡텔에 가게 된다. 그 곳에서 컴퓨터에 의한 생산 스케줄 관리 방법을 제시해 미국 현지 엔지니어들도 놀라게 한다. 해상 구조물이 알래스카 연안에 세워짐으로써 프로젝트도 성공적으로 끝나 고국으로 돌아왔다. 이러한 그의 실력이 알려져 삼성조선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고, 그는 삼성맨이 되었다. “삼성으로 가서 더 큰 배를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삼성조선으로 이직한 후 조선업에 불황이 시작되었다. 또 한 번 행운의 여신이 그에게 손짓했다. 조선업 출신의 그에게 반도체 통신 부서 배치가 내려지게 된 것이다. 자연스럽게 IT산업 분야로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국산 TV 세계 1등’ 신화 만들어
이때가 1990년대 초였다. 당시 전자산업의 전성기를 맞았던 일본의 주재원으로 나가게 되었다. 일본은 막강한 전자제품 생산 국가였다. 우리나라 전자제품은 매우 뒤처지던 시대였다. 아키하바라에 가면 삼성 제품 역시 한쪽 구석에 처박혀 소외되던 시절이었다.
본사로부터 삼성전자 제품을 고급화시키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어떻게 할까 방법을 찾아 고민하던 중 전자상거래(E-비즈니스)를 주목하게 되었다. 2000년 호랑이 굴인 일본에서 전자 종주국인 일본 업체들을 보란 듯이 제압한 데 이어 본사로 자리를 옮겨 LCD TV 사업화를 책임지는 업무를 주도하며 국산 TV가 세계 1등이 되는 데 커다란 공헌을 했다.
이 대표는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LCD의 종주국 일본 시장에서 삼성이 전자상거래를 성공적으로 진입할 수 있었던 것은 철저한 사전 조사와 이에 따른 준비 덕분이었다고 본다. 그리고 일본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그 첫 번째는 모든 마케팅의 최고급화 전략이었다. 두 번째는 일본 본토 전역으로 24시간 이내에 상품을 배송해 주고 고객 문의에 24시간 대응할 수 있는 콜센터 운영이었으며, 세 번째는 고객이 제품을 직접 체험해 보고 타사 제품과 비교할 수 있도록 홈페이지와 전시장을 마련한 것”이라고 밝혔다.
◇2008년 인팩코리아 창업
2006년 20여 년 동안 청춘을 다 바친 삼성을 떠났다. 잘 나가던 ‘삼성맨’인 그가 사표를 던지게 된 것은 닦아놓은 터를 유지하는 것보다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것이 적성에 맞아서였다. 또한 모든 샐러리맨이 꿈꾸는 것처럼 자신의 회사를 만들고 싶었다. 모든 샐러리맨들의 꿈이기도 한 창업의 기회가 찾아왔고, 2008년 인팩코리아를 창업했다. 인팩코리아는 스마트폰·디지털 TV·자동차 등의 핵심 부품인 초소형 세라믹반도체를 생산해 대기업에 납품했다. 지금은 RF안테나, 인덕터, 과전압보호기, EMI억제필터 등을 제조하고 있다.
금융 위기가 닥치던 시절이다 보니 거래가 이뤄지지 않아 초기 준비한 창업자금이 동나고 말았다. 극단적인 생각까지 들었다. 대표이사 급여도 제로에 가까웠다. 다행히 직원들의 노력으로 오픈마켓을 운영하며 중소·중견기업을 대상으로 판매를 전환해 위기를 모면했다. 그는 “거친 바다를 오갔던 어룡도의 잠재 기억들이 창업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한다.
정준명 전 일본삼성 대표이사(현 법률사무소 상임고문)는 “그(이승현 대표)는 삼성 TV를 세계 1등으로 만든 주역이다. 삼성을 퇴사하고 인팩코리아를 창업했을 때 나는 축사를 했고, 그의 성실함과 치밀함을 알기에 성공을 확신했다”고 말한다. 그는 이어 “윈스턴 처칠은 ‘비관주의자는 어떤 기회 속에서도 어려움을 보고, 낙관주의자는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길을 본다’고 했다”며 이승현 회장의 담대한 도전을 대변하기도 했다.
◇타인을 움직이는 힘은 ‘진심’
실제로 이승현 대표는 직원과 고객의 마음을 헤아리는 경영철학을 지니고 있다. “내 자신을 움직이려면 야심이 있어야 하지만 타인을 움직이려면 진심이 있어야 한다”고 리더의 자질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회사는 직원들이 만족해야 하고 고객들이 필요로 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서울시 외국인투자 자문회의 위원(2018~2020), 한국외국기업협회 회장(2017~2020)을 맡아 정부와 국회에 기업경영 관련 정책 환경 개선을 촉구하는 등 ‘기업하기 좋은 여건 조성’을 위한 노력에도 열정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규제 천국’이라 불립니다. 기업들이 투자 의욕을 잃고 조건 좋은 해외로 나가버립니다. 그 결과 고용률도 매우 낮아지고 맙니다”
실제로 2021년 중소벤처기업부 조사에 따르면 4년간 해외로 나간 기업은 1만 2천개 기업이고 국내로 돌아온 기업은 52개사에 불과했다. 한 기업이 10명씩만 고용한다고 치면 12만개 일자리, 한 기업이 100명씩 고용한다고 치면 120만 일자리가 생기는데 이 일자리들이 모두 사라지게 되는 격이 되고 말았다.
이 대표는 중대재해처벌법도 기업들이 부담스러워 하는 것들 중 하나라고 말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주가 의무를 위반해 사망·중대재해가 일어났을 경우 사업자를 형사 처벌하는 법이다. 이 대표는 “자칫 잘못하면 사업주가 전과자가 될 수 있는 상황”이라며 “경영자들이 서로 법적 대표를 안 맡으려는 웃지 못 할 해프닝도 일어나고 있다”며 기업들의 분위기를 전한다. “처벌 중심의 기업 규제를 완화해서 기업가들이 안심하고 기분좋게 투자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기업 투자 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중인 그는 최고경영자로서 풍요로운 국민경제를 위해 헌신해 오고 있다. 이 대표의 일대기를 따라가다 보면 대한민국 변화와 경제발전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오랜 기업 활동의 경험과 사회를 바라보는 예리한 철학이 충만한 시기에 이르러 공정하고 행복한 세상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에 한때 서울특별시장 후보로 나서면서 서울시 균형 발전의 구조적 기초를 마련하는 등 다양한 정책을 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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