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 자동차 삼국지에서 배울 점
레거시 코스트란 용어가 다른 의미를 추가하여 유명해진 것은 2000년대 들어와 미국 자동차 Big3의 의료보험과 퇴직연금 등 과도한 복지비용 때문이다. 그들은 강성 노조인 전미자동차노조(UAW)의 요구에 밀려 퇴직자 및 그 유가족에게 평생 의료보험비와 퇴직연금을 지불하기로 약속했는데, 그것은 천문학적 금액으로 불어나 적자 원인이 되니 이를 레거시 코스트라고 부르게 되었다. 각 회사마다 그 부담 금액이 다르지만, 가장 큰 GM의 경우, 1993년부터 2007년 사이에는 매년 약 10 Billion Dollars (약 11조원)의 레거시 코스트를 부담했다. 이 레거시 코스트 때문에 GM의 영업이익율은 1950년대 평균 8.7%, 1980년대에는 평균 3%, 1990년대에는 평균 1.3%로 점차 줄더니 마침내 2000년대부터는 헤어날 수 없는 적자의 늪에 빠졌다.
2008년 보도에 따르면, 당시 GM에서 현역으로 일하는 생산직 1인이 먹여 살려야 하는 퇴직자의 수가 4.61명이었으니, 결국 GM은 2009년 파산보호를 신청하여 정부 보조금으로 연명해야 하는 신세로 추락하였다. 한 때 전 세계 1위의 자동차 메이커 GM은 보조금 수령 이후 해고 등 여러가지 구조조정 노력을 하며 재활의 수순을 밟고 있지만, 아직도 퇴직자에게 나가는 비용이 현직자에게 지급하는 비용보다 적어도 서너 배 정도는 더 많다 하니 레거시 코스트는 여전히 부담되는 유산이다.
사실 GM 등 Big 3의 몰락은 1979년 유류 파동 때부터 예견된 바였다. 연비 좋은 일본차가 1980년대에 와서 미국으로 몰려 오기 시작했다. 이에 놀란 레이건 정부는 일본에 ‘자발적 수출제한(VER: Voluntary Export Restraint)’을 요구하였다. 이에 일본 자동차업계는 대미 자동차 수출 물량을 1년에 168만대로 ‘자발적으로 제한’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 자동차노조(UAW)와 정부의 강압적 요구에 어쩔 수없이 받는 수입규제를 ‘자발적(Voluntary)’인 것처럼 표현하라고 한 미국의 이기적이고 오만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만일 그것을 사실대로, 미국이 취한 일본산 자동차에 대한 ‘수입규제’라고 표현한다면, 유럽이 미국산 자동차에 대해서도 똑같은 수입규제를 취할 수 있기 때문에 일본이 자발적으로 수출쿼터를 실시하는 형식을 강요한 것이다. 일본의 수출쿼터는 연간 230만대까지 증량되었지만, 미국에서 연비와 품질 다 좋은 일본 차의 수요를 맞추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따라서 도요타 및 일본 자동차 메이커는 미국 현지 공장 설립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에 도요타는 캘리포니아에 GM과 합작으로 1984년 NUMMI라는 이름의 생산공장을 차렸다. 여기에 도요타는TPS(도요타 생산방식; Toyota Production System)를 적용했지만, 기본적으로 생산직이 모두 자동차노조(UAW) 소속 노조원이었기 때문에 TPS가 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TPS는 그것을 실행하는 사람들의 근본적 마음 가짐과 태도 변화 없이는 그 효과를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을 증명한 것이다. 결국 그 공장은 2010 년 GM의 파산보호 신청 직후 문 닫았고, 지금은 테슬라가 인수하여 전기차 공장이 되었다.
합작투자 공장이 도요타의 DNA인 TPS를 실현하는데 적정하지 않다는 것을 느낀 도요타는 켄터키주에 100% 단독으로 투자하여 생산 공장을 짓기로 결정했다. 켄터키 주를 비롯하여 미국의 여러 주가 도요타를 유치하기 위하여 열띤 경합을 벌였다. 자동차공장은 직고용은 3,000여명이지만, 부품업체와 관련 회사들이 동반 진출해서 내는 간접 고용 창출 효과가 여타 업종에 비해 월등히 크기 때문이다. 현재 도요타는 미국내 10곳의 생산 공장을 가지고 있고, 그 직접 고용은 35,000여명이지만, 간접 고용 창출 인원은 총 20만명을 넘는다. 도요타는 1987년부터 생산직 사원 3,000명을 채용하기 시작했는데, 그 때 10만명이 넘는 인파가 지원했다. 그 중 핵심 인원 330명을 우선 선발하여 그들에게 TPS를 체득 시키기 위해 일본 도요타 공장으로 연수를 보냈다.
일본으로 연수 가고자 켄터키 렉싱톤 공항에 나온 직원들은 거의 모두 자동차공장 근무는 처음인 비 노조원이었다. 대부분의 그들은 여권을 처음 만들었고, 비행기는 처음 타보는 사람들이었다. 2003년 우리나라 자동차 회사가 미국 앨라배마에 자동차 공장을 지을 때도 도요타와 똑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생전 처음으로 만져본 여권이 생소한데, 난생 처음 타보는 비행기로 앨라배마 주를 벗어나 한국으로 연수 가게 되니 무척이나 들뜬 상태였다. 그들을 환송하기 위해 가족들이 공항에 나왔다. 시골 공항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로 포옹과 눈물의 도가니였다. 한 달 여의 한국 연수를 가는 남편은 귀국 시까지 부인이 이혼 청구 안하고 잘 기다려 줄지 걱정은 되었지만, 일단은 설레는 경험이었다. 그들은 일본과 한국에서 성실하게 연수 받고 돌아와 각 사의 자동차 생산 기술과 품질 철학을 전파하는 핵심 요원으로 성장하여 지금은 미국 남부의 자동차 산업을 지탱하는 베테랑들이다.
도요타, 혼다 그리고 닛산 등 주요 일본 자동차 메이커의 미국 공장 건설과 운영 경험은 우리나라 자동차 메이커들의 미국 공장 건설과 성공적 운영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거기에는 공통점이 있다. 우선 한국과 일본의 미국 공장은 ‘무 노조 경영’을 회사 정책으로 명기하며, 그것을 모든 임직원들에게 확실하게 각인 시킨다. 전미자동차노조는 이에 대항하여 각 공장에 노조를 결성하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공장 가동 수 십 년째인 아직도 노조는 없다. ‘무 노조 경영’을 위해 한국과 일본의 경영진은 미국 공장 생산직에게 동양적 가치관을 전파하고 있다. 생산직 사원을 미국식으로 ‘Employee, Operator 또는 Associate’라 지칭하지 않고, 같은 팀의 구성원이라는 의미에서 ‘Team Member’ 라고 호칭하며 같은 일을 하는 공동체임을 강조한다. 또 직원들이 노조에게 도움을 요청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도록 복지, 급여 그리고 안전 등에서 회사가 선제적으로 조치한다.
도요타는 아직도 우리가 배울 점이 많은 세계 제1의 자동차 회사이다. 그들은 TPS, JIT 그리고 KAISEN 등 특유의 생산방식과 경영을 고집하지만, 나머지 관리적 측면에서는 철저한 현지화를 강조한다. 도요타는 일본 회사이지만 현지에서는 미국회사 또는 켄터키 회사임을 수없이 강조한다. 혼다도 마찬가지이다. 미국 혼다 법인은 그들의 기업 이미지 광고에서 수년동안 “혼다는 American Company’’임을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그 결과 신세대들은 혼다나 도요타가 당연히 미국 회사이며 미국 브랜드인 것으로 알고 있다. 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이런 점에서 일본 기업보다 약하다. 예를 들어 한국 기업의 주재원들은 특정 지역에 끼리끼리 모여 산다. 1987년 도요타 켄터키 공장의 법인장은 처음부터 60여명의 주재원 가족들이 절대 모여 살지 못하도록 엄명을 내렸다. 일본 주재원은 미국인 이웃을 꼭 두고 그들과 친해지도록 노력할 것을 지시한 것이다. 생산 방식은 자기들 것을 고집하면서도 생활은 철저히 현지화 하는 그들의 노력이 배울 점이다.
2008년 리만 브라더스 사태가 터지고 그 다음해 GM이 레거시 코스트를 감당 못해 파산 보호신청을 했다. 동시에 도요타에게도 시련은 닥쳤다. 2008년 미국 샌디에고에서 도요타 렉서스에 타고 있던 경찰관 가족 4명이 사망한 사고가 시작이었다. 피해자 측은 급 가속(Sudden Unintended Acceleration) 이라고 주장하였으나 도요타 측은 차량의 문제가 아니라 바닥의 매트가 문제였다고 변명하였다. 이로 인해 도요타는 결함 은폐 의혹과 상당한 이미지 손상을 받았다. 또한 1,600만 달러의 과징금을 납부하고 당해 차종에 대한 판매 중지와 리콜을 해야만 했다.
FORD, GM 그리고 도요타가 펼친 미국에서의 삼국지같은 흥미로운 역사에서 우리 기업들이 배워야 할 점은 많다. 우선 3개 회사가 겪은 부침의 역사에서 알아야 할 점은 한 때 잘 나갈 때 그것이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특히 호황일 때 막 퍼준 복지는 레거시 코스트로 부메랑처럼 돌아와 회사를 치명적으로 위험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또 Big 3처럼 이미 자체적으로 경쟁력을 잃은 기업에게 퍼주는 정부의 지원은 별 효과 없이 국민 혈세만 낭비한다는 점이다. 영어에 ‘목을 따는 경쟁(Cut-throat Competition)’이라는 표현이 있듯이 자동차 시장은 사활을 다투는 살벌한 결투장이다. 그런 곳에서 레거시 코스트로 인해 내부로부터 경쟁력을 상실한 기업은 살아남기 어렵다.
[진의환 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니스트/ 소프트랜더스㈜ 고문/ 전 현대자동차 중남미권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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