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나무를 중심으로, 모든 나무는 연결돼 있다[북리뷰]
수잔 시마드 지음│김다히 옮김│사이언스북스
나무의 연결성과 소통 연구한
컬럼비아대 수잔 시마드 교수
우드 와이드 웹 ‘WWW’ 이론
‘집단지성’처럼 연결된 나무들
곰팡이 그물 통해 지하서 소통
묘목보다 노숙림 보존이 중요
놀라운 ‘사회적 속성’에 감탄
영화 아바타 제작에도 영감 줘
‘우드 와이드 웹(Wood Wide Web)’. 나무의 연결성과 소통에 관한 연구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저자의 논문을 실으며 ‘네이처’지가 사용한 표현이다.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삼림 생태학 교수인 저자는 인간이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을 통해 정보를 주고받듯이 숲에는 나무와 나무, 나무 개체와 숲 전체를 연결하는 네트워크가 존재하며, 이를 통해 탄소나 질소 같은 영양 물질과 신경 전달 물질이 전달된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러니까 나무들은 수억 년 전부터 자신들만의 ‘WWW’를 만들어 운영해 온 것이다. 그중에서도 저자는 아주 오래된 나무, 이른바 ‘어머니 나무’의 존재와 역할을 발견한 후, 기존 삼림 정책에 반기를 들었다. 저자에 따르면, 성장이 빠른 새 묘목을 심는 것보다 노숙림(老熟林)의 보존이 몇 배는 더 중요하다. 이들이 나무의 자연 재생력을 키우고, 지하의 탄소 저장고를 보호한다. 한마디로 ‘숲의 수호신’이다.
책은 나무의 신비와 숲의 비밀을 풀기 위해 ‘숲의 탐정’처럼 살아온 저자의 삶과 연구 그 자체다. 회색곰이 출몰하는 숲에서 수백 건의 실험을 지속하는 등 끈질기게 조사·연구하고, 숲에 대한 근본 개념과 나무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기 위해 정책 입안자들에 맞서 온 생태학자로서의 여정까지 오롯이 담았다. 여기에 책은 캐나다 서부 험준한 산맥의 벌목회사에서 일했던 저자가 자신을 ‘처형자’로 느꼈던 20대 시절은 물론, 임업을 해 온 집에서 나고 자라 직접 나무를 베고, 급류에 목재를 띄워 보냈으며, 나무 밑동의 부식토를 먹고, 이끼와 버섯이 덮인 통나무 위를 뛰어다녔던 저자의 10대 시절까지 소환하며 점점 깊고 경이로운 숲속으로 우리를 끌어들인다.
“심장이 말라 시들어 가고 있었다.” 대학에서 삼림학을 공부하며, 방학 때면 벌목회사에서 근무하던 저자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그의 주된 업무는 조림지의 묘목이 잘 자라는지 살피고, 오래된 나무를 베기 위해 벌목 범위를 정하는 것이었다. 이를 저자는 “또 한 그루에 사형을 선고했다”고 표현했고, “흙을 주워 먹던 어린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라며 나무에 좀 더 다정하고, 부드럽게 대하던 시절을 떠올린다. 그러다 묘목이 잔뜩 시들어 죽어버린 지역을 조사하다가 문득 정답은 토양에 있지 않을까, 개선책이 있지 않을까, “나무를 향한 골드러시”를 멈출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하고 각성한다. 묘목 뿌리와 토양이 연결된 방식에 주목했던 그는 회사를 그만뒀고, 산림청 조림 관련 정규직 연구자로 채용되면서 본격적으로 연구를 수행해 나간다. 회사에 다닐 때 언급했다가 동료들의 비웃음을 샀던 ‘우드 와이드 웹’ 이론, 즉 나무들이 복잡한 곰팡이 그물을 통해 지하에서 소통한다는 이야기를 끝내 과학적으로 증명했고, 그물의 중심에 있는 오래된 나무를 ‘어머니 나무’라 명명하며, 관련 논문을 두 편이나 발표하기에 이른다. 저자의 연구와 행보는 과학계는 물론, 기존 식물과 자연에 대한 오랜 관념에 도전한 것이기도 한데, 기본적으로는 숲이 나무들의 상호 경쟁으로 성장한다는 굳건한 믿음을 흔들어 놓았다. 또한 이 협력과 매개, 도움의 개념은 2009년 개봉해 전 세계적으로 흥행한 영화 ‘아바타’에 가장 큰 영감을 준 걸로도 유명하다. 무엇보다 생태학자들 사이에서 가장 큰 화두다. ‘나무의 지능’에 대해 이야기하는 제인 구달과 더글러스 에이브럼스 대담집 ‘희망의 책’에서도 저자의 연구가 논의되며, 칼 세이건의 아내이자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을 집필한 앤 드루얀 역시 저자의 연구를 소개하며 숲과 나무를 “우리 행성의 또 다른 지적 생명체”라고 평가한다.
저자는 스스로 야생에서 왔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나무는 내 조상들의 조상이었다”고 경외를 표한다. 나무를 만나고, 관찰하고, 한때 나무를 베는 사람이었다가, 땅의 비밀을 푸는 탐정이 됐고, ‘어머니 나무’를 좇으며 자신도 ‘어머니’로 성장해가던 저자는 병마와 싸울 힘도 숲에서 얻는다. 유방 절제술을 받고 항암 치료를 진행하면서도 늘 몸과 마음은 나무에 있었다. 실험과 연구를 놓지 않았고, 화학 요법이 끝나면 수행하고픈 연구 계획을 세우는 등 점점 더 숲과 하나가 된다. 그 풍경은 저자가 그동안 쌓은 연구 성과를 정책 입안자들 앞에서 강력한 어조로 발표하는 모습만큼이나, 이 책의 하이라이트다. 그는 암의 완치를 판정받으며 “재발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의사의 덤덤한 말에는 두 딸을 떠올리며 ‘어머니 나무’와 자신을 비교한다. 500년, 1000년을 사는 어머니 나무가 있고, 200년, 250년을 살다 갑자기 죽어버리는 어머니 나무도 있다. 저자는 삶과 이별하는 어머니 나무에 대한 풀리지 않는 비밀을 생각한다. 병든 어머니는 남아 있는 탄소를 친족에게 보내 줄까? 그것은 어린나무의 뿌리를 감싸는 진균 거미줄을 통해 새로 돋은 잎까지 무사히 이동할까. 저자의 세심한 관찰과 논리 전개를 따라가다 보면, ‘집단 지성’처럼 연결된 나무의 놀라운 사회적 속성뿐만 아니라 인간 정신의 열정과 성찰이 과연 어디까지 이를 수 있을지, 그 무한함에 감탄하게 된다.
저자는 투병을 끝낸 2015년 숲의 구조와 기능을 조사하는 ‘어머니 나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책은 끝에 독자들을 이 프로젝트에 초대한다. 실질적 행동을 위해 저자의 홈페이지나 관련 사이트를 찾아볼 수도 있지만, 저자가 먼저 제안하는 건 이것이다. 나만의 나무를 찾으라, 나무와 연결되라. 그래서 그 나무와 연결된 또 다른 나무와 연결되라. 그렇게 감각을 열고 확장하는 것으로, 인간도 ‘우드 와이드 웹’의 일원이 될 수 있다. 576쪽, 2만5000원.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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