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文이 축전 보내고 44억 걷은 단체...유엔 사칭 운영하다 해체
신한·하나·두나무 등서 44억원 걷었는데
끝내 유엔 인증 못 받아 이달 초 해체
‘사단법인 유엔해비타트한국위원회(한국위)’란 단체가 2019년 설립됐다. 문재인 청와대 초대 대변인이었던 박수현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회장을 맡았다. 문 대통령은 ‘유엔해비타트 최초의 단일국가 기구’라며 축전을 보냈고, 유엔 공식 로고를 내걸었다. 신한금융·하나금융 등 기업들은 이를 믿고 기부금 총 44억원을 이 단체에 냈다. 그런 단체가, 사실은 유엔해비타트 본부의 승인도 얻지 않은 상태에서 무단으로 유엔의 이름을 끌어다 써온 것으로 드러나 결국 이달 초 해산됐다.
국회사무처는 지난 2일 제6차 국회조직관리위원회 회의를 열고 사단법인 유엔해비타트한국위원회의 설립 허가 취소를 의결했다. 올해 초 자체 조사에서 한국위가 유엔해비타트 본부의 정식 승인을 받지 않았고, 법인 명칭과 로고 사용 협약도 체결하지 않은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앞서 한국위는 국회사무처의 세 차례 시정조치 요구도 불이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위는 2019년 11월 화려하게 출범했다.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이 단체에 보낸 축전에서 “유엔해비타트 최초의 단일국가 기구가 한국에서 탄생했다”며 “출범을 위해 애써주신 박수현 위원장과 관계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고 했다. 단체는 이 축전을 유엔해비타트 공식 로고와 함께 인터넷 홈페이지에 내걸었다.
출범식엔 야권 거물 정치인들이 대거 참석했다. 문희상 국회의장, 유은혜 부총리, 송영길·홍영표·박지원 의원 등이 출범식장에 걸린 대형 유엔로고 아래에서 한국위를 상징하는 파란색 부채를 펼쳐 들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기업들은 의심하지 않고 이 단체에 줄줄이 돈을 냈다.
암호화폐 거래소 운영사 두나무, 하나은행, 신한금융, 농협은행, 서울주택토지공사, 제네시스 비비큐 등이 2020년엔 총 13억9887만원, 이듬해엔 5억5348만원, 지난해엔 24억5155만원을 냈다. 총액은 44억391만원이었다. 단일 기부금으로는 최대 10억원이 걷혔다.
그런데 지난 8월 한국위가 유엔해비타트 본부의 승인을 의미하는 ‘프로그램 협약’도 없이 공식 대리단체인 것처럼 보이는 명칭과 유엔 로고를 사용해 가며 이와 같은 거액을 모집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이 국회에서 “한국위는 유엔해비타트 본부와 기본협약도 없이 산하 기구인 척 행세했으며 이를 통해 지난 4년간 44억원의 기부금을 받았다”고 밝힌 것이다.
이러한 의혹 제기에 당시 한국위는 “10월에 체결될 유엔해비타트 본부와의 MOU(양해각서)엔 일반인 상대 모금 계획도 포함되어 있어, 로고와 명칭 사용 관련 내용이 반드시 들어갈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국위 초대 회장이었던 박수현 전 의원도 “결코 유엔 산하기구를 사칭한 바 없다”며 10월로 계획된 MOU를 언급했다.
하지만 MOU(Memorandom of Understanding)는 본계약 체결에 앞서 원칙적·기본적인 사항에 대해 합의한 사항을 적는 문서로, 법적 구속력 없는 일종의 가계약 또는 합의문에 불과하다. 한국위 해명은, 그런 MOU조차도 유엔해비타트의 이름과 로고를 내걸고 운영해 온 지 4년이 다 되도록 아직 체결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10월에도 한국위는 본부와 MOU를 체결하지 못했고, 끝내 국회사무처로부터 허가 취소를 당했다.
이 과정에 대한 해명을 듣고자 박수현 전 의원에게 전화를 걸고 문자메시지를 보냈지만 답이 없었다. 한국위 관계자는 “우리가 유엔해비타트 한국위란 명칭과 로고를 사용하는 걸 본부도 다 알고 있었는데, 한 번도 지적이나 제지를 받은 적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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