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성력·기압차 이용한 수액 팩, 재난 현장서 생명 살릴 것"
(지디넷코리아=신영빈 기자)병원에서 수액을 맞을 때 환자 옆에 수액 팩을 걸어둘 수 있는 거치대가 필요하다. 기존 수액 팩은 대부분 중력의 원리로 높이 차를 확보해 수액을 주입한다. 환자를 옮겨야 하거나 거치대를 활용하기 어려울 경우에는 누군가 수액 팩을 높이 들고 있어야 하는 상황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를 개선할 수 있는 발명품이 최근 등장했다.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과와 기계시스템디자인공학과 재학생 4명은 탄성력과 기압차를 활용한 수액 주입 장치 ‘골든 캡슐’을 만들었다.
이 아이디어는 국제 학생 엔지니어링 및 디자인 대회 ‘제임스 다이슨 어워드’에서 출품작 1천970건 가운데 우승작으로 뽑혔다. 한국 팀으로는 첫 우승이다.
대회는 제임스 다이슨 재단이 차세대 인재 양성을 위해 2005년부터 매년 열고 있다. 국내에서는 2016년부터 시작되어 올해로 8회째를 맞았다.
지디넷코리아는 ‘골든 캡슐’을 만든 홍익대학교 학생 4명을 만나 개발 과정과 향후 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골든 캡슐 팀은 산업디자인과 채유진 학생(23)과 백원 학생(26), 기계시스템디자인공학과 김대연 학생(26)과 신영환 학생(25)으로 구성됐다.
■ "기존 수액 팩 문제 찾아나서…현장 의료진 목소리 반영"
골든 캡슐 팀은 재난 현장에서 환자 이송 시 위급한 상황에서 수액 팩을 들고 있어야 하는 불안과 불편함에 주목했다. 기존 수액 팩은 지형이 고르지 않고 험난한 재난 현장에서 사용하기 불편하다는 문제가 있었다.
골든 캡슐 팀은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국내 응급의학과 전문의 1명과 쓰촨성 지진 구조 현장에 참여했던 중국 의료진 3명을 인터뷰하며 문제점을 찾기 시작했다.
이들은 기존 수액 주입 장치의 한계와 문제점 4가지를 꼽았다. 먼저 중력을 사용하기 때문에 높이 차이를 확보해야 하는 점과 험난한 구조 환경에 활용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특히 열악한 환경에서 구조대원이 1L 수액 팩 2~3개를 1시간 동안 혼자 들고 있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또 중력을 이용한 방식은 최대 주입 속도에 한계가 있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수액을 완전히 열어놓은 상태로 투여하는 것을 ‘풀드립(full-drip)’이라고 하는데, 응급 상황에서는 이보다 더 빠른 속도로 수액을 주입해야 할 때도 있었다. 그 때마다 의료진들은 수액 팩을 직접 손으로 쥐어짜며 속도를 확보해야 했다.
마지막으로 재난 현장에서 전력 공급이 어려운 것도 문제점으로 꼽혔다. 기존에 사용되고 있는 수액 관련 의료기기들은 전기 동력을 사용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야외 구조 현장에서 사용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었다.
■ "중력 대신 탄성력·기압차 활용" 아이디어에서 출발
이들은 유체를 무동력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찾기 시작했다. 그 결과 의료용 풍선의 탄성력을 이용하는 솔루션을 개발했다. 골든타임을 지켜준다는 의미로 ‘골든 캡슐’로 이름을 지었다.
골든 캡슐은 환자에게 골든타임인 30분~1시간 동안 안정적인 속도로 균일한 수액 주입이 가능한 것을 실험을 통해 확인했다. 폴대를 활용한 기존 수액 주입 속도와 거의 유사했다. 환자 신체에 무리를 주지 않으면서 주입이 가능한 셈이다. 또한 별도 전원이 필요하지 않고 주입 속도를 조절할 수 있으며, 최대 속도는 기존 수액 팩과 비교해 약 150% 빨라졌다.
홍대 '골든캡슐' 팀 채유진 학생은 “속도 조절 장치를 디자인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공기의 유량 조절로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기 때문에 적절한 공기 유량 조절기가 필요했는데, 사용성이 간편하면서도 오염 문제가 없어야 했다”며 “의료진들이 기존에 사용하던 방법과 크게 달라지면 긴급한 상황에서 제품을 사용할 수 없게 되니, 의료진들에게 친숙하고 직관적인 방법으로 디자인하는 것도 중요했다”고 말했다.
이어 “기존 링거 속도를 조절할 때 쓰는 다양한 레귤레이터(속도 조절 장치)를 연구했고, 그 중 롤러를 밀어 튜브를 압착시키는 방식에서 영감을 얻어 응용했다”며 “이 속도 조절 장치의 경우 현재 위치해 있는 곳보다는 골든 캡슐 전면에 위치하는 것이 사용자 입장에서 더 편리하기 때문에 현재 재설계 중인 프로토타입에는 수정된 버전으로 반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외관 디자인은 의료기기로써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전체적으로 투명한 쉘과 흰색으로 구성했다. 의료진 입장에서 사용성을 고려하기 위해 응급구조 전문가 6명에게 프로토타입에 대한 자문을 받기도 했다.
그 결과 기존 수액의 점적관 역할을 대신해줄 속도 가시화 장치를 더해 현재 주입 상황을 파악하는 데 용이하도록 개선했다. 또 풍선의 크기가 매우 천천히 줄어들어 주입량을 한눈에 파악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쉘 외부에 눈금 그래픽을 양방향으로 추가했다.
의료진이 실제로 라인을 잡을 때(수액을 놓을 때) 취하는 자세를 관찰한 후, 롤러 위치를 의료진이 다루기 편한 쪽으로 옮겼다. 수액 종류를 나타내는 용어를 큰 타이포로 쉘 외부에 적어 수액의 구분도 용이하게 했다. 풍선의 색깔 또한 포도당은 주황색으로, 생리식염수는 파란색으로 바꿨다.
■ "상용화 목표로 추가 연구·개선 진행 중"
골든 캡슐 팀은 제품을 상용화할 계획으로 개선 작업을 진행 중이다. 지금까지 작동 원리에 대한 기술적인 검증을 완료했고, 의료진들을 대상으로 사용성 검증을 마친 상태다. 이를 바탕으로 개선점을 반영해 추가 연구와 임상시험을 진행할 예정이다.
신영환 학생은 “골든 캡슐은 의료 기기이기 때문에 공신력 있는 협회, 단체, 기관 등으로부터 인증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골든 캡슐을 제품화하기 위해서는 실제 사람을 대상으로 연구해야 하기 때문에 생명윤리위원회(IRB) 승인 절차를 밟고 있다”며 “우선 정맥 혈압과 유사한 조건을 가진 모델로 실험을 진행한 뒤, 추후 IRB 승인 이후 임상시험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신영환 학생은 “진공 밀폐성 보장이나 보관기한, 인체 안전성 등 제품 상용화를 위해서는 더욱 면밀하게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많다”며 “프로젝트를 계속해서 진행하면서 상용화까지 차근차근 단계를 밟고 싶다”고 전했다.
골든 캡슐 팀은 발명품에 어떤 소재를 써야 할지, 단가는 어떻게 낮출 수 있을지 등 다방면으로 고민을 지속하고 있었다.
백원 학생은 “투명 쉘, 플라스틱 부품, 탄성체에 어떤 소재를 사용할지 구체적인 재료는 아직 정하지 못했다”며 “의료기기인 만큼 추후 의료 전문가 자문과 검증을 받아 확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품 단가와 관련해서는 “골든 캡슐은 플라스틱 부품이 들어가기 때문에 기존에 비닐로만 이뤄진 수액 팩보다 생산 단가는 다소 비싸진다. 다만 기존 링거는 팩뿐만 아니라 폴대, 레귤레이터 등 장비가 필요했던 것과 달리 골든 캡슐은 다른 장치가 필요하지 않다”며 “초기 투자 비용에서 큰 차이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골든 캡슐은 제품 가운데를 기점으로 양쪽으로 분리할 수 있다”며 “환자와 직접 접촉한 풍선 등 부품만 버리고, 플라스틱 부분은 수거·소독해 재사용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여러 전공 시너지로 개발 과정 어려움 극복"
채유진 학생은 기획 단계를 떠올리며 “팀원들에게 처음으로 이 디자인 컨셉을 제안했을 때 모두 반신반의했다. 디자인과 공학의 융합을 공부해왔기에 누구나 인정할 결과물을 선보이고 싶었다”고 말했다.
골든 캡슐 팀 4명은 모두 디자인 엔지니어링을 융합전공으로 공부하고 있다. 디자인과 공학과 학생들로 구성된 덕에 각 분야 전문성을 발명품에 녹여낼 수 있었다.
김대연 학생은 “의료 현장에서 사용되는 기기이다 보니 정량적 근거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했다”며 “이 근거를 확보해가는 과정에서 팀에서 각 전공에 따른 전문성을 발휘해 성과를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일례로 풍선에서 분출되는 물의 양을 측정하기 위해 저울을 썼는데, 수천 프레임을 수기로 기록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엔지니어 팀에서 저울 숫자를 자동으로 읽어 엑셀 데이터로 변환해줄 수 있는 매트랩 코드를 개발했고, 디자인팀은 애프터이펙트를 활용해 매트랩에 들어갈 이미지를 정제하는 이미지 프로세싱을 진행했다”며 “그 결과 숫자 데이터 수천 장을 빠른 시간 안에 효율적으로 정제하고, 정확한 그래프를 그려낼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채유진 학생은 “제품을 제작하는 데에 있어서 디자인과 엔지니어링은 모두 꼭 필요한 요소”라며 “제품을 세상에 탄생할 수 있게 해주는 본질적인 기능은 엔지니어링이 담당하지만, 결국 그 발명품이 인간의 삶에 스며들기 위해서는 디자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영빈 기자(burger@zd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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