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중대재해처벌법 전면 시행…건설사들 여전히 '시름'
업계 "제발 미뤄줘" vs 노동계 "유예안 폐기" 팽팽
대형 건설사는 끊이지 않는 사고…내년 시평에 반영
내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 전면 시행을 앞두고 건설업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내년부터 이 법을 적용받는 중소 건설사들(50인 미만)은 사실상 무방비 상태로 전면 시행을 늦춰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재계와 노동계, 여야간 공방이 계속되고 있어 2년 유예 방안을 담은 개정안이 처리될지 주목된다.
이미 적용을 받는 대형 건설사도 난감하긴 마찬가지다. 이 법을 시행한 후 사고가 오히려 증가했고 내년부터 중대재해로 처벌받은 곳의 시공능력평가 점수를 깎는 등의 조치도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소규모 사업장 '2년 유예 개정안' 촉각
중대재해처벌법은 중대재해 사고 예방에 소홀한 사업주에 대해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한다. 2021년 법안 공포 이후 1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지난해부터 상시근로자 50인 이상(공사금액 50억원 이상) 사업장에 적용됐다. 내년 1월 27일부터는 상시근로자 5인 이상 50인 미만(공사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된다.
현재 국회에는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2026년까지 유예하는 내용의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지난 2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될 예정이었으나 무산됐다. 오는 29일 예정된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논의될 가능성은 있다.
중소기업단체협의회는 23일 논평을 내고 "83만이 넘는 소규모 사업장의 절박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국회가 이를 외면하고 논의조차 하지 않은 것은 무책임한 처사"라며 "무리하게 법을 적용하기보다 내실있는 지원대책을 마련하고 실질적으로 중대재해를 예방할 수 있도록 준비기간을 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반면 같은날 기자회견을 연 민주노총과 생명안전행동 등 노동계는 "중대재해 예방대책을 원점으로 되돌리는 노동부를 강력히 규탄한다"며 "적용 유예 연장을 반대하고 개정안 폐기를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야당은 정부가 사과하는 조건으로 추가적인 2년 유예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23일 정책조정회의에서 "정부가 지난 2년 유예기간 일 처리를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공식 사과를 요청한다"며 "2년 연장 후에는 반드시 중대재해처벌법을 모든 기업에 적용한다는 경제단체의 확실한 약속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중소 건설사 "준비 위해선 2~3년 필요해"
논의가 파행을 빚는다면 전면 시행까지 남은 시간은 2개월 남짓인데 전문건설사들은 무방비 상태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건정연)이 최근 전문건설사 781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중대재해처벌법 대응을 위해 안전관리체계 구축, 인력·예산 편성 등의 조치를 취한 기업은 전체의 3.2%에 그쳤다. 전문건설사는 종합건설사로부터 직접 도급 혹은 하도급받아 공사를 수행하는 영세 업체다.
나머지 96.8%는 별다른 조치 없이 종전 상태를 유지했다고 답했다. 준비가 미흡한 이유로는 '방대한 안전보건 의무와 그 내용의 모호함'이 67.2%로 가장 높았다. '비용부담'(24.4%), '전문인력 부족'(8.4%) 순으로 뒤를 이었다.
이들 건설사는 적용대상 제외(51.5%) 또는 3년 유예(26.5%)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김희수 건정연 원장은 "최소 2~3년은 법 적용을 유예하고, 전문건설사가 안전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방안을 찾고 영세 기업 실정에 맞도록 법령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사고 낸 대형 건설사, 정부 눈치만
고용노동부가 이달 발표한 산업재해 현황 통계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누적 산재 사망자는 459명으로 1년 전보다 51명(-10%) 줄었다. 다만 상시근로자 50인 이상(공사금액 50억원 이상) 중 건설업의 경우 사망자가 오히려 15명 늘어난 97명으로 집계됐다. 사고건수도 74건에서 95건으로 28.4% 증가했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는 "올해는 공사금액 100억~800억원의 대규모 현장에서 사고가 많이 났다"며 "처벌 회피를 위한 보여주기식 서류 작업만 하고 실질적인 안전관리는 이뤄지고 있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동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올해 말까지 사망사고가 5건 이상 발생한 건설사의 시공 현장에 대해 일제감독을 실시하고 있다. DL이앤씨와 롯데건설, 현대건설, 대우건설, 한화 건설부문이 대상이다.
국토교통부는 내년부터 '건설산업기본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시행해 시공능력평가 안전·품질 평가비중을 강화한다. 최근 3년간 안전관리수준평가가 매우 우수하면 공사실적액에 2%를 가점하고 미흡과 매우 미흡한 경우 각각 2%, 4%를 감점한다. 중대재해처벌법 유죄 판결을 받는다면 10% 감점된다. 근로자 1만명당 산재 사망자 수(사망사고만인율) 감점폭도 3~5%에서 5∼9%로 확대됐다.
건설사 관계자는 "공사현장에서 최우선인 안전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도 시공능력평가에서 높은 순위를 받는다면 앞뒤가 맞지 않다는 판단인 것으로 보인다"며 "정부 방침에 따라 건설사들은 현장에 스마트 안전기술을 적용하고 안전 교육을 강화하는 등 제도 보완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최명기 교수는 "형사처벌보다는 경제적 패널티를 가해야 실질적인 사고 예방에 힘쓰게 된다"며 "매출액 또는 공사금액에 비례해 벌금을 부과하면 안전교육을 10분 하더라도 더 내실있게 점검할 것"이라고 봤다.
김진수 (jskim@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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