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넘어선 4·3밀항인의 '고향 사랑'…제주 발전 토대

제주CBS 고상현 기자 2023. 11. 24.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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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경계를 넘어서⑤]고향 사랑
차별 혐오 고된 노동 속 잊지 않은 고향
4·3으로 초토화 된 제주 땅에 성금 이어져
감귤묘목부터 운동장·전기·수도 설립
"재일 제주인 피 땀 서린 고향 사랑"
재일제주인 1세대 사랑에 제주도 보은
편집자 주
제주4·3 당시 군경의 총칼 앞에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사람만 3만여 명. 도민들은 살기 위해 고향 땅을 떠나 일본으로 밀항했다. 먼 타국에서도 차별과 혐오에 맞서 꿋꿋이 삶을 살아냈다. 제주CBS는 일본 오사카 현지에서 70여 년 세월 '유령 같은 존재'였던 그들을 추적했다. 24일은 다섯 번째로 어려움 속에서도 고향에 대한 사랑을 잊지 않았던 제주인 이야기를 전한다
제주시 애향운동장 공덕비. 고상현 기자
▶ 글 싣는 순서
①살아남기 위해 일본으로…제주4·3 디아스포라의 비극
②4·3 피해 목숨 건 일본 밀항…적발되면 공포의 수용소로
③"죽을락 살락 일만"…고난 속 꿋꿋이 살아낸 4·3밀항인
④日 차별과 혐오에…더불어 견디며 삶 도운 '제주공동체'
⑤국경 넘어선 4·3밀항인의 '고향 사랑'…제주 발전 토대
(계속)

4·3 광풍 속에서 일본으로 밀항한 제주인들.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 일본에 갈 수밖에 없었다. 일본 사회의 차별과 혐오, 고된 노동, 위태로운 삶 속에서도 제주의 어려움을 잊지 않았다. 어렵게 모은 돈을 고향 땅에 기부하는 등 경계를 넘은 고향 사랑이 이어졌다.

어려움 속에서도 잊지 않은 고향

무일푼으로 일본 오사카에 와서 지금은 번듯한 공장을 운영하는 김대준(76)씨는 2000년대 초반 처음 제주 땅을 밟았을 때 죄책감과 그리움 등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고 했다. 김씨는 4·3 당시 두 살의 나이에 부모를 모두 잃고 고아로 살다 연좌제로 미래가 막막해지자 일본으로 밀항했다.

"그때 감정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죠. 4·3 당시 도민 3만여 명이 죽었다고 하는데, '내가 일본에서 신고 온 신발을 신고 제주공항에 내려도 될까. 맨발로 걸어 나갈까' 한참 고민했어요."

김씨는 가족 모두가 공항 대합실에서 기다린다는 말에 뛰쳐나갔다. 두 형님은 김씨가 21살에 밀항해 수십 년간 일본에서만 산 탓에 처음에는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다고 했다. "셋째 형님이 '대중이 아닙니꽈(아닙니까)' 해서 모두 부둥켜안고 울었죠. 한참이나 공항에서 함께 울었어요."

고정자 오사카 한인 역사자료관장. 그 뒤로 재일제주인 역사 자료가 전시돼 있다. 고상현 기자


밀항으로 일본에 온 제주인들은 외국인 등록증을 받기 어려워 출국이 한동안 불가능했다. 뒤늦게 등록증을 받더라도 생계를 이어가느라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도 고향 소식은 늘 챙겼다. 지금처럼 휴대전화나 미디어가 발전하지 않은 터라 밀항 온 사람에게 고향 소식을 전해 듣는 것이다.

재일제주인 2세인 고정자 오사카 한인 역사자료관장은 "타국에 있더라도 고향에 대한 마음은 늘 있죠. 제가 어렸을 때 저희 부모님도 그렇고 다들 '고향이 어렵게 사는데 일본에 와서 살고 있다'는 죄책감을 가지신 거 같아요. 고향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든 도우려 했죠"라고 말했다.

감귤·전기·수도…경계 넘은 애향

'일본 속 작은 제주' 오사카 이쿠노구에서 공동체를 일궈낸 제주인. '하루 16시간' 고된 공장 노동 속에서 어렵게 모은 돈을 고향 땅에 기부했다. 4·3으로 초토화 된 제주 땅에 학교와 전기, 수도, 마을회관, 운동장 등을 지을 수 있도록 힘을 보탰다. 국경을 넘은 고향 사랑이 이어진 것이다.

지난 9일 오후 제주시 영평동 비석거리에서 만난 박명식(93)씨는 취재진에게 '고두선 선생 송덕비(高斗善 先生 頌德碑)'를 안내했다. 故 고두선 씨는 4·3 당시 초토화 작전으로 불 타버린 마을을 뒤로하고 일본으로 밀항했다고 한다. 그 후 1983년 '새마을 성금'으로 고향 땅에 기부했다.

고씨를 기리는 비석에는 '늘 검소한 생활 속에서도 항상 고향을 사모하다 거액을 희사해 이 고장 새마을 사업을 부흥하매 그 공덕을 우러러 여기에 그 뜻을 기립니다'라고 적혀 있다.

제주시 영평동 비석거리. 박명식(93)씨가 재일제주인 공덕비를 가리키고 있다. 고상현 기자


그 역시 4·3 이후 밀항했다가 경찰에 걸려 제주로 돌아왔다는 박씨는 "일본에 가서 어렵게 살았어도 고향을 잊지 않고 우리 마을에 기부한 사람이 많았지. 나랑 함께 일본 밀항 간 문원갑이란 사람도 1976년에 마을에 전기를 깔아줬지. 당시 200만 원을 기부했는데 큰돈이지"라고 했다.

제주도에 따르면 제주 발전의 토대를 마련해 준 재일제주인을 기리는 도내 공덕비는 모두 905기에 달한다. 애향운동장부터 오라초등학교, 남녕고등학교, 내도동 마을회관, 용강동 노인회관, 구좌읍 해안가 용천수 정비사업 등 도내 마을 곳곳에 재일제주인의 고향 사랑이 담겨 있다.

특히 먹고 살기 힘들었던 1960년대 말 제주 땅에 감귤 묘목을 보내준 것도 재일 제주인이다. 도민들은 감귤 묘목을 심어 후에 '대학나무'라 불릴 정도로 경제적으로 도움을 얻었다.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 기부도 이어졌다. 올해 9월 향년 95세로 영면한 재일 제주인 사업가 김창인 회장은 2008년 제주대학교에 발전기금 35억 원을 쾌척한 이후 대학에 대한 애정과 관심으로 문화교류관 건립기금, 생명자원과학대학 건립기금 등 지금까지 모두 270억여 원을 기부했다.

재일제주인 故 김창인 회장. 제주대학교 제공

경계를 넘나드는 고향사랑과 보은

국경을 넘은 재일제주인의 고향사랑을 잊지 않으려는 움직임도 제주에서 이어지고 있다. '오늘날 제주발전의 토대를 마련해 준 재일제주인의 고향 사랑을 기억하고 보답'하려는 것이다.

제주도는 지난 2021년부터 매년 재일제주인 공헌자에 대한 감사패를 수여하고 '공헌자의 밤'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마을회 주관으로 재일제주인 고향 방문 초청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제주대학교에는 재일제주인 역사를 기념하는 재일제주인센터가 들어서 있기도 하다.

이영미 제주도청 평화국제교류과 재외도민팀장은 "일본으로 건너간 제주인의 피와 땀이 없었다면 오늘의 제주는 없었다. 재일제주인 성금으로 신작로를 닦고 마을회관을 건립하고 학교까지 세웠다. 앞으로 제주도는 헌신한 선조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널리 알려 나가려고 한다"고 밝혔다.

지난 4월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재일제주인 공헌자의 밤' 모습. 제주도 제공


손영석 재일제주인센터장은 "재일 제주인의 경우 내가 살았던 마을이 잘되길 바랐던 마음에서 성금이 이뤄졌다. 당신들은 뜯어진 속옷 입으시면서 어렵게 돈을 모아서 마을 도로와 전기를 놓고 학교를 지었다. 국가를 위해 기부한 하와이 등 다른 국가 이주민과 다른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재일 제주인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로는 "재일 제주인이 세운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었고, 도로도 일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산소라는 게 없으면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귀중하지만, 금방 잊어버린다. 재일 제주인의 고향 사랑은 마치 산소와 같다. 도민들에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도민들이 재일 제주인 역사를 기억하면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는 재일동포 후손들이 제주가 낯선 땅이 아니라 선조의 고향사랑이 담긴 땅이라고 서로 연결되지 않을까"라고 덧붙였다.

제주시 오라초등학교에 세워진 재일제주인 공덕비. 고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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