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넘어선 4·3밀항인의 '고향 사랑'…제주 발전 토대
차별 혐오 고된 노동 속 잊지 않은 고향
4·3으로 초토화 된 제주 땅에 성금 이어져
감귤묘목부터 운동장·전기·수도 설립
"재일 제주인 피 땀 서린 고향 사랑"
재일제주인 1세대 사랑에 제주도 보은
▶ 글 싣는 순서 |
①살아남기 위해 일본으로…제주4·3 디아스포라의 비극 ②4·3 피해 목숨 건 일본 밀항…적발되면 공포의 수용소로 ③"죽을락 살락 일만"…고난 속 꿋꿋이 살아낸 4·3밀항인 ④日 차별과 혐오에…더불어 견디며 삶 도운 '제주공동체' ⑤국경 넘어선 4·3밀항인의 '고향 사랑'…제주 발전 토대 (계속) |
4·3 광풍 속에서 일본으로 밀항한 제주인들.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 일본에 갈 수밖에 없었다. 일본 사회의 차별과 혐오, 고된 노동, 위태로운 삶 속에서도 제주의 어려움을 잊지 않았다. 어렵게 모은 돈을 고향 땅에 기부하는 등 경계를 넘은 고향 사랑이 이어졌다.
어려움 속에서도 잊지 않은 고향
"그때 감정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죠. 4·3 당시 도민 3만여 명이 죽었다고 하는데, '내가 일본에서 신고 온 신발을 신고 제주공항에 내려도 될까. 맨발로 걸어 나갈까' 한참 고민했어요."
김씨는 가족 모두가 공항 대합실에서 기다린다는 말에 뛰쳐나갔다. 두 형님은 김씨가 21살에 밀항해 수십 년간 일본에서만 산 탓에 처음에는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다고 했다. "셋째 형님이 '대중이 아닙니꽈(아닙니까)' 해서 모두 부둥켜안고 울었죠. 한참이나 공항에서 함께 울었어요."
밀항으로 일본에 온 제주인들은 외국인 등록증을 받기 어려워 출국이 한동안 불가능했다. 뒤늦게 등록증을 받더라도 생계를 이어가느라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도 고향 소식은 늘 챙겼다. 지금처럼 휴대전화나 미디어가 발전하지 않은 터라 밀항 온 사람에게 고향 소식을 전해 듣는 것이다.
재일제주인 2세인 고정자 오사카 한인 역사자료관장은 "타국에 있더라도 고향에 대한 마음은 늘 있죠. 제가 어렸을 때 저희 부모님도 그렇고 다들 '고향이 어렵게 사는데 일본에 와서 살고 있다'는 죄책감을 가지신 거 같아요. 고향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든 도우려 했죠"라고 말했다.
감귤·전기·수도…경계 넘은 애향
지난 9일 오후 제주시 영평동 비석거리에서 만난 박명식(93)씨는 취재진에게 '고두선 선생 송덕비(高斗善 先生 頌德碑)'를 안내했다. 故 고두선 씨는 4·3 당시 초토화 작전으로 불 타버린 마을을 뒤로하고 일본으로 밀항했다고 한다. 그 후 1983년 '새마을 성금'으로 고향 땅에 기부했다.
고씨를 기리는 비석에는 '늘 검소한 생활 속에서도 항상 고향을 사모하다 거액을 희사해 이 고장 새마을 사업을 부흥하매 그 공덕을 우러러 여기에 그 뜻을 기립니다'라고 적혀 있다.
그 역시 4·3 이후 밀항했다가 경찰에 걸려 제주로 돌아왔다는 박씨는 "일본에 가서 어렵게 살았어도 고향을 잊지 않고 우리 마을에 기부한 사람이 많았지. 나랑 함께 일본 밀항 간 문원갑이란 사람도 1976년에 마을에 전기를 깔아줬지. 당시 200만 원을 기부했는데 큰돈이지"라고 했다.
제주도에 따르면 제주 발전의 토대를 마련해 준 재일제주인을 기리는 도내 공덕비는 모두 905기에 달한다. 애향운동장부터 오라초등학교, 남녕고등학교, 내도동 마을회관, 용강동 노인회관, 구좌읍 해안가 용천수 정비사업 등 도내 마을 곳곳에 재일제주인의 고향 사랑이 담겨 있다.
특히 먹고 살기 힘들었던 1960년대 말 제주 땅에 감귤 묘목을 보내준 것도 재일 제주인이다. 도민들은 감귤 묘목을 심어 후에 '대학나무'라 불릴 정도로 경제적으로 도움을 얻었다.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 기부도 이어졌다. 올해 9월 향년 95세로 영면한 재일 제주인 사업가 김창인 회장은 2008년 제주대학교에 발전기금 35억 원을 쾌척한 이후 대학에 대한 애정과 관심으로 문화교류관 건립기금, 생명자원과학대학 건립기금 등 지금까지 모두 270억여 원을 기부했다.
경계를 넘나드는 고향사랑과 보은
제주도는 지난 2021년부터 매년 재일제주인 공헌자에 대한 감사패를 수여하고 '공헌자의 밤'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마을회 주관으로 재일제주인 고향 방문 초청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제주대학교에는 재일제주인 역사를 기념하는 재일제주인센터가 들어서 있기도 하다.
이영미 제주도청 평화국제교류과 재외도민팀장은 "일본으로 건너간 제주인의 피와 땀이 없었다면 오늘의 제주는 없었다. 재일제주인 성금으로 신작로를 닦고 마을회관을 건립하고 학교까지 세웠다. 앞으로 제주도는 헌신한 선조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널리 알려 나가려고 한다"고 밝혔다.
손영석 재일제주인센터장은 "재일 제주인의 경우 내가 살았던 마을이 잘되길 바랐던 마음에서 성금이 이뤄졌다. 당신들은 뜯어진 속옷 입으시면서 어렵게 돈을 모아서 마을 도로와 전기를 놓고 학교를 지었다. 국가를 위해 기부한 하와이 등 다른 국가 이주민과 다른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재일 제주인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로는 "재일 제주인이 세운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었고, 도로도 일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산소라는 게 없으면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귀중하지만, 금방 잊어버린다. 재일 제주인의 고향 사랑은 마치 산소와 같다. 도민들에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도민들이 재일 제주인 역사를 기억하면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는 재일동포 후손들이 제주가 낯선 땅이 아니라 선조의 고향사랑이 담긴 땅이라고 서로 연결되지 않을까"라고 덧붙였다.
- 이메일 :jebo@cbs.co.kr
- 카카오톡 :@노컷뉴스
- 사이트 :https://url.kr/b71afn
제주CBS 고상현 기자 kossang@cbs.co.kr
▶ 기자와 카톡 채팅하기▶ 노컷뉴스 영상 구독하기
Copyright © 노컷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풀숲에 가려진 농막…성매매 사이트 사무실이었다
- 3살·생후 2개월 아이 키우면서 담배 피우고 외박…20대 엄마의 방임
- "中유명업체 마라탕서 박쥐 날개가…너무 충격"
- 유승준, '입국비자' 2차전 최종 승소…20년 만에 한국 오나
- 내기 윷놀이하다 이웃 몸에 불지른 60대 35년형…檢, 항소
- 살아남기 위해 일본으로…제주4·3 디아스포라의 비극
- 4·3 피해 목숨 건 일본 밀항…적발되면 공포의 수용소로
- "죽을락 살락 일만"…고난 속 꿋꿋이 살아낸 4·3밀항인
- 日 차별과 혐오에…더불어 견디며 삶 도운 '제주공동체'
- 이-팔, 극적인 2차 휴전 연장…1일 아침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