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태 칼럼] 전장의 신
이석태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11월 육군훈련소장이 육군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 중인 공익법무관 임용 예정자들에게 훈련소 내 개신교, 불교, 천주교, 원불교 중 하나를 선택하여 종교 행사에 참여하도록 강제한 조치는 정교분리 원칙에 위배되어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결정했다. 헌법 20조 1항은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2항은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종교의 자유는 특정한 종교를 가지거나 갖지 않을 자유를 포함한다.
훈련소장이 4개 종교 행사 중 하나에 참석하도록 한 것은 이들 종교를 승인하고 장려한 것이자, 여타 종교 또는 무종교보다 선호한다는 점을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헌법상 정교분리 원칙은 국가가 다양한 종교적 신념이나 무신론 등을 인정하여 민주사회의 기초가 되는 다원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4개 종교만을 특정하여 그 행사에 참석하도록 강제한 것은 특정 종교를 우대하는 것으로서 정교분리 원칙상 허용될 수 없다는 요지이다. 이는 국교를 인정하지 않는 데서 오는 당연한 결론이면서도, 헌법 수호 기관인 헌법재판소가 무종교의 자유까지 선언한 점에서 의미가 있다.
몇해 전 어느 서평에서 사람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은 능력보다는 ‘운’이라고 하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예를 들면 어떤 부모 밑에서 또는 어떤 나라에서 태어났는지 혹은 성별이나 인종 등 사람의 삶을 결정하는 항목이 여럿인데, ‘운’의 범주에 넣어야 할 요소 중 어느 쪽에 속하느냐에 따라 개인의 성공 여부가 큰 영향을 받는다는 내용이었다. 저자의 견해에 수긍이 가면서도, 상대적으로 무겁게 여겨진 것은 특정한 종교를 국교로 삼는 경우였다. 이것은 한 개인의 삶이 국가가 정한 종교적 지침에 따라야 한다는 것으로서, 종교와 사상의 자유가 보편적 인권의 하나로 보장되는 현대사회에서 용인되기는 쉽지 않지만, 현실적으로 그렇지 않은 나라가 적지 않은 데 문제가 있다.
1927년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자신이 기독교 신자가 아닌 이유 두가지를 들었다. 하나는 ‘신은 과연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하여 철학적으로 증명하는 게 어렵다는 것이다. 그의 논변을 모두 옮기는 대신 대표적인 예를 하나 들면,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이론으로 ‘제1원인’ 가설이 있다. 부모-자식 사이처럼 모든 것에는 선행 원인이 있는데, 이를 거슬러 올라가면 최종적으로 제1원인에 다다르게 되고 이것이 바로 ‘신’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논리적으로 제1원인 이전에 선행 원인이 없으란 법이 없으므로, 이 명제는 참인지 거짓인지를 분간할 수 없다.
다음으로 성경에 기록된 예수의 행적을 살펴볼 때, 교의에 예사롭지 않은 면이 있고, 도덕적으로도 덕성을 높이 평가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즉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말에서 되풀이되는 ‘영원한 지옥 불’은 중세 때 고문이나 마녀 화형 등을 정당화하는 전범이 되었다. 또 잎이 무성해 다가갔다가 아직 제철이 아니어서 과실을 맺지 못해 먹을 수 없었던 무화과나무에 대하여 “앞으로 아무도 네 열매를 영원히 먹지 않으리라”고 저주한 예수를 소크라테스나 부처보다 낫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한편 신의 전지전능성에 대하여는 논의가 분분하나, 종교철학자들 사이에서는 ‘악’의 문제가 특히 어려운 주제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악’은 도덕적 악뿐만 아니라 천재지변처럼 도덕과 무관한 경우도 해당한다. 전지전능하고 절대 선의 표상인 신이 창조한 세상에서 ‘악’은 왜 존재하는 것일까. 가장 많이 드는 해석은 신이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했고, 그 선택에 따라 악한 행위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만명 희생자를 내고 지금의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부른 2011년 봄 동일본 대지진 때 쓰나미 같은 ‘악’은 개인의 도덕이나 자유의지로 설명이 쉽지 않다.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기 어려운 이런 큰 재해에 맞닥뜨리게 되면 회의적인 사람은 신의 전지전능성에 의문을 갖게 된다. 논자에 따라서는 신과 사람 간의 인식론적 차이를 들어 신의 일을 사람의 잣대로 평가할 수 없다고 하지만, 이는 문제 해결을 각자의 믿음으로 돌리는 비지성적 측면이 있다.
미국의 법철학자 로널드 드워킨의 저서 ‘신이 사라진 세상’에는 아인슈타인의 종교관이 인용되어 있다.
“우리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무엇, 최고의 지혜와 찬란한 아름다움으로 스스로를 드러내지만 우리의 둔한 머리로는 가장 원초적인 형태로만 이해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실제로 존재함을 아는 것, 이 지식, 이 느낌이야말로 진정한 종교의 핵심이다.”
이는 무신론적 종교관을 표현한 것인데, 드워킨에 의하면 종교적 태도는 두가지 판단을 전제로 한다. 첫째는 인간 삶에 객관적인 의미나 중요성이 있다고 본다. 이는 타인에 대한 도덕적 책임은 물론이고, 자기 자신에 대한 윤리적 책임도 받아들여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둘째는 우리가 ‘자연’이라고 부르는 것, 곧 우주 전체와 그것을 구성하는 모든 부분은 그저 사실적 존재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숭고하다는 것이다. 우주는 그 자체로 고유한 가치와 경이로움을 담고 있기에 그는 “종교는 신보다 더 깊다”고 여긴다.
군부독재 시절 이 땅에서 ‘사상의 은사’로 존경받았던 고 리영희 선생은 다섯번 구속되었다. 그는 “종교가 뭐냐?”는 수사관의 질문에 “없다”고 하면 “그럼 공산주의자가 아닌가?”라며 조롱받았다고 한다. 리 선생은 장교로 복무한 6·25 전쟁을 비롯하여 역사적으로 수많은 전쟁에서 한쪽 편의 승리를 위해 기도한 종교인들의 모순된 면을 지적한다. 서로 적대적 상대방이 되는 관계에서 각자의 신은 누구를 위해 ‘전능’을 행사하는 것일까. 전쟁의 결과 승리한 쪽의 신이 이기고 반대쪽의 신은 패배한 것일까. 생전에 종교인들과 깊은 교류를 하면서도 “아직 종교가 없다”고 한 리 선생의 고뇌가 이해된다.
보도에 의하면, 최근 격화되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 과정에서 병원 등이 폭격당해 어린아이들과 무고한 시민들 다수가 사망하였다고 하여 충격을 준다. 이 전장에서 ‘정의의 신’은 어디에, 또는 있기나 한 걸까.
전 헌법재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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