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규의 직설]미국 NCAA 대학농구에 빠진 배우→ 알고보니 아들이 명문 팀 코치
미국에서 대학농구가 시작되었다. 남자 대학농구는 프로 스포츠 부럽지 않다. 상위권 대학 남자 농구부의 1년 예산은 1,000만 달러(135억 원 가량) 안팎. 2,800만 달러(380억 원 가량)를 쓰는 학교도 있다. 이 학교의 1년 수입은 방송 중계료 등 3,400만 달러(450억 원). 어마어마하다. 그만큼 높은 인기를 누린다. 대학 미식축구의 인기와 수입은 남자 농구의 몇 배나 된다. 우리나라 대학 스포츠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프로 스포츠도 마찬가지.
■“스포츠에 죽고 못사는 배우”
그런 남자 대학농구가 점차 열기를 더해 가면 사람들은 배우 빌 머레이를 떠올린다. 올해는 언제 쯤 관중석에 나타날까?
그는 ‘고스트버스트’ ‘사랑의 블랙홀’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등의 영화로 우리나라에서도 잘 알려져 있는 명배우며 코미디언. 희극 연기를 하면서도 아무 표정이 없거나 진지한 모습을 보이는 걸로 유명하다. ‘에미’와 ‘골든 글로브’를 두 차례씩 받았다. 뉴욕비평가협회, 전미비평가협회 등 각종 비평가상에서 ‘최우수 남우주연상’을 휩쓸었다. 아카데미 상 후보에 지명되기도 했다. 하지만 머레이는 “스포츠에 죽고 못사는 배우”로 명성이 높다
할리우드 배우들이 프로농구를 관중석에서 응원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주연 배우 잭 니콜슨은 LA 레이커스 시합을 자주 찾는 것으로 유명했다. 시카고 출신 머레이도 마이클 조단이 뛰던 시카고 불스의 열렬 관중이었다.
머레이는 농구뿐 아니라 프로야구와 미식축구 등 시카고의 모든 프로구단들의 매력에 빠졌었다. 한때 시카고 컵스 야구 경기의 초빙 해설자. 2007년 컵스가 중부지구에서 우승했을 때 클럽하우스의 샴페인 파티에 초대받을 정도였다. 2016년 ‘월드시리즈.’ 컵스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 1대0으로 뒤지던 7회 초가 끝난 뒤 그는 관중석에서 일어나 마이크를 잡고 응원의 열변을 토했다.
그런 뒤 ‘나를 야구경기에 데려가 줘(Take me out to the ballgame)’이라는 ‘7이닝 스트레칭’노래를 불러 관중들의 떼창을 이끌었다. 머레이는 프로야구 마이너 리그 구단에 투자도 했다. 그야말로 스포츠 광이다.
■대배우의 아들 사랑
그러나 머레이가 대학농구를 사랑하는 이유는 특별하다. 이혼한 부인이 14세 때부터 홀로 키운 둘째 아들을 응원하기 위해서다. 머레이는 아들이 코치로 있는 코네티컷 대가 올해 3월 미국대학농구선수권 대회에서 다섯 번 째 우승하는 현장을 지켜보았다. 경기가 끝난 뒤에는 코트로 내려가 아들은 물론 감독, 선수들과 더불어 승리의 기쁨을 나눴다.
그는 64강전부터 결승전까지 한 시합도 빠지지 않았다. 텔레비전 중계도 머레이가 관중석에 모습을 드러내면 어김없이 비췄다. 대배우의 대학농구 사랑이 유별나기 때문. 그는 아들이 코치였던 대학들의 홈경기마다 거의 붙박이 관중이었다. 17년째다.
머레이 부자는 여느 연예계 명사들의 부자와는 너무 다르기에 더 큰 관심을 끈다. 연예계 2세들 가운데는 말썽꾸러기들이 수두룩하다. ‘대부’의 말론 브란도 아들은 살인으로 복역했으며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톰 행크스 아들은 마약 중독으로 체포되었다. 그러니 대학 최고 명문 농구부의 코치로 있는 머레이의 아들은 희귀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피는 못 속인다“고 한다. 콩 심은데 콩 나듯 헐리우드 2세들은 부모의 길을 밟는 경우가 많다. 커크 더글러스와 마이클 더글러스 부자, 마틴 신과 두 아들, 클린트 이스트우드 부자 등.
그러나 연예계와 스포츠는 전혀 다른 분야. 미국에서도 유명 연예인 부모를 둔 유명 운동선수는 매우 드물다.
브루스 스프링스틴과 패티 시알파 부부는 가수이자 작곡가·기타 연주가로 ‘록 앤 롤’ 명예의 전당에 함께 올랐다. 스프링스틴은 아카데미 상 이외에 그래미상만 20번이나 받았다. 그들의 딸은 승마 선수로 도쿄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땄다.
덴절 워싱턴은 아카데미상 두 번, 골든 글로브 상을 세 번이나 받은 명배우 겸 감독. 대학 시절 야구선수로 활약했다. 그의 아들도 아버지를 이어 운동선수가 되었다. 프로 미식축구 세인트루이스 램스(LA램스)에 연습생으로 입단한 뒤 2부 리그에서 3년을 뛰다 그만 두었다. 결국 아버지의 뒤를 이어 배우가 되었다.
이들과는 경우가 다르지만 연예계로 전향한 프로 운동선수의 자식 가운데 미국 국가대표가 있다. 데니스 로드맨은 프로농구 전설의 센터. 그러나 한 동안 배우 등 연예인으로 크게 활약했다. 김정은의 초청으로 북한은 4번이나 방문해 세계의 화제가 된 인물.
딸은 프로축구, 아들은 대학농구 선수다. 21세인 트리니티 로드맨은 미국 여자프로축구 사상 가장 어린 나이인 18세 때 프로에 뽑혔다. 21년 ‘올해의 젊은 여자 축구선수’ 상을 받았으며 22년 국가대표에 발탁되었다. 올해 월드컵에도 나갔다. 현재 미국에서 가장 높은 연봉을 받는 여자 축구선수다.
어머니는 데니스의 세 번 째 결혼 상대. 부모 이혼 뒤 3세, 4세이던 남매는 어머니 손에서 자랐다. 아버지와는 아주 서먹한 사이. 21년 데니스가 딸의 축구 시합을 구경 오면서 부녀 사이에 약간의 따스함이 돌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나의 인생에 어떤 역할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에게 쏟아지는 관심이 너무 힘들었다...그러나 (시합에 온) 오늘, 아버지는 사람이다. 나도 사람이다. 그는 나의 아버지요 나는 결코 변할 수 없는 그의 작은 딸이다.”
■미국 최고의 젊은 코치로 뽑힌 아들
머레이의 아들 루크는 39세지만 벌써 17년 경력의 코치. 그는 뛰어난 선수가 아니었다. 고교 시절 아예 코치가 되기로 결심했다.
루크는 아버지의 영화를 사랑한다. 그러나 할리우드에서 일하는 것은 결코 그의 꿈이 아니었다. 루크가 농구 코치가 되는 꿈을 꾸게 만든 것은 아버지의 다함없는 스포츠 사랑이었다. 헤어져 살았지만 아버지는 가끔 어린 루크를 체육관에 데려다 주었다. 한참 연습을 지켜보다 다시 집까지 바래다는 자식 사랑도 ‘코치 루크’를 만든 힘이었다.
루크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지도자 세계에 뛰어들었다. 루이빌 대, 재비어 대 등 상위권 대학을 거쳐 3년 전 코네티컷 대 코치가 되었다. 코치로서는 미국 최정상에 오른 것. 그는 상대 전력 분석과 선수 충원을 가장 잘 하는 코치 가운데 한명으로 꼽힌다. 스포츠 전문 방송 ESPN이 선정한 40세 이하 코치 상위 10명에 올랐다. 머지않아 감독이 될 것이란 예상이다.
2011년 다른 대학에서도 그를 코치로 뽑았던 코네티컷 대 감독은 루크가 빌 머레이의 아들인 것을 알았을 때 믿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는 “빌의 명성은 다른 차원”이라며 “(누가 얘기하지 않으면) 루크가 세계적 배우의 아들인 것을 결코 알 수 없다. 루크는 인생에서 자신만의 길을 개척했다. 여기까지 오면서 너무 너무 열심히 노력했다. 여느 아버지와는 다른 차원에 있는 아버지의 명성에 자신을 연결시키지 않았다”고 말했다.
루크는 “아버지만큼 나는 재밌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초록색 반바지에 모피 조끼를 입고 어그 부츠를 신은 채 경기장에 나타나는 아버지보다는 옷차림 감각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루크도 두 편의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그의 친형도 영화배우를 했으나 곧 접었다. 이제는 뉴욕에서 고급식당을 운영하는 유명 요리사다.
할리우드는 워낙 시끄럽고 문제가 많은 곳. 2세들이 온전하게 성장하기에 쉽지 않다. 빌 머레이도 많은 문제를 일으켰었다. 그래서 아버지와 전혀 다른 분야에서 더할 나위 없이 모범인생을 사는 아들이 돋보이는 것이다. 대학농구를 사랑하는 이들은 하루빨리 관중석의 빌 머레이 보기를 기다린다.
◆손태규 교수는 현재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로 재직중이다. 한국일보 기자 출신으로 스포츠, 특히 미국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많다. 앞으로 매주 마이데일리를 통해 해박한 지식을 전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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